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참신하거나 식상했던 설 연휴 프로그램
시들지 않은 중년들 카리스마에 짝짝짝 중견 엔터테이너는 어떻게 부활하는가. 지난 설 연휴 프로그램의 성과는 중견 개그맨과 작가, 배우 등 중견의 힘을 확인해 준 것이다. 설 특집으로 편성된 한국방송의 <미남들의 수다>에서 지금까지 <미녀들의 수다>를 거쳐 간 수많은 남자 패널들을 합친 것보다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 박미선과, <전원일기>의 작가와 배우들이 다시 뭉친 문화방송의 <쑥부쟁이>가 그 주인공들이다. 방송 3사의 설 연휴 프로그램 총평과 버라이어티쇼에서 빛나는 중견들의 카리스마에 대해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드라마·시나리오 작가인 조진국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설 특집 프로그램은 문화방송이 새로운 스타일은 많이 개발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도 그렇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맛보기용으로 방영한 ‘넌센스왕’도 참신했다. 요새는 방송 형식도 인터넷에 영향을 받는 게, ‘넌센스왕’은 마치 인터넷 댓글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패널들이 참신한 답변을 받아치는 구성이다. 그 답변들이 재기 발랄하지가 않아 프로그램이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조진국 지난 추석 때 좋은 반응을 얻어 이번에 한국방송에서 다시 한 <안나의 실수>도 인터넷을 떠도는 실수담이나 웃긴 이야기들을 방송으로 옮겨놓은 형식이다. <안나의 실수>뿐 아니라 <미남들의 수다>처럼 한국방송은 저번 연휴 때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들을 시즌식으로 다시 보여준 것 같다. 아슬아슬한 선 잘 넘나들던 이효리
정 제일 구태의연했던 건 에스비에스다. <대격돌 빅스타 명장면>이나 <스타 한 소절 노래방> 같은 게 가장 식상한 특집 포맷 아닌가. 하지만 진짜 너무한 건 <무한도전>과 <1박2일>을 특집이랍시고 밤낮으로 재방송을 틀어준 거지.
조 발칙한 시도가 재미있었던 건 <우리 결혼했어요>다. 일단 새롭고, 안전주의에다 시청률 중심인 방송사가 뭔가를 개발했다는 것도 사주고 싶다.
정 좋은 프로그램은 보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이 프로도, 저 커플의 누구는 나 같다거나 남편 같다거나, 내가 저런 사람하고 살았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우리 딸 시집가면 저 꼴 나겠구나, 그런 몰입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조 인터넷에서 최고로 뜬 건,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서울대 얼짱 아닌가. 학력이 중요하지 않은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여전히 주목의 요소가 된다는 게 좀 의외이기도 하다.
정 서울대 얼짱이라는 타이틀로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 프로그램의 진짜 주인공은 이효리 아닌가. 진짜 버라이어티쇼의 귀재라고 칭할 만하더라.
조 맞다. 사실 출연자들의 교감이나 이야기는 별 재미가 없었는데 이효리의 진행 솜씨가 프로를 살렸다. 어떤 출연자에게도 잘 맞추고, 막 뒤에 가서 남자의 손을 만져본다거나 허벅지를 보여달라거나 이런 행동이 사실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데, 애교 있게 넘어가면서 진행했다. 근데 바꿔 생각해보면 저게 남자니까 괜찮지 여자 출연자들에게 허벅지를 보여달라거나 이러면 진짜 큰일 날 일 아닌가.
정 일본에 기무라 다쿠야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산다쿠>에서 비슷한 포맷의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여자도 그렇게 한다. 기무라 다쿠야가 자신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는데 가슴이라고 하면 가슴 골을 클로즈업하는 식이다. 또 여기서는 50살 넘은 개그맨의 파트너로 20대 초반의 여자가 나오기도 한다. 나이 차도 그렇고 노출도 그렇고, 한국에서라면 난리 날 일이다.
조 문화적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남녀의 성적 표현에 관한 사회의식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거기에는 들여다 보면 까다로운 성적인 코드나 역전현상이 있는데 이효리가 하면 어떤 불편함이 분명 중화되는 게 있다.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 나와서 남자들에게 들이대면 불편할 때도 있는데 이효리는 그 아슬아슬한 선을 잘 넘어간다고 할까.
이계인과 이미숙, 두 가지 경우의 차이
정 가만 보면 남자 연예인들에게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예쁘고 어린 여자 연예인들이 아니라 이경실, 조혜련, 정선희 같은 특정 인물들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효리가 유일하게 그런 걸 하니까 용납이 되는 거다. 그게 도리어 묘한 매력이 되기도 하고.
조 그런데 진짜 겹치기 출연이 장난이 아니더라. 조형기나, 홍경민이나 재치 있는 연예인들은 연휴 때마다 모시기 전쟁이 치열한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식상해진다. 새로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평소 근엄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진 중년 배우가 나와서 새롭고 발랄한 면을 보여준다거나 그렇게 기대를 배신하는 재미가 있어야지. 이계인이나 김종서도 그렇게 뜨지 않았나.
정 내가 나이 든 시청자라 그런지 나이 든 배우들이 버라이어티쇼에 나와서 놀림을 당하는 것 같은 상황을 보는 게 과히 기분 좋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이계인도 재미있긴 하지만 본인은 상황을 잘 이해 못하면서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조 그 자체를 캐릭터로 만들면서 스스로도 즐기는 거 아닐까. 오락 프로그램 아닌가.
정 전반적으로 버라이어티쇼에서 나이 든 사람은 주책 없고, 말귀 못 알아듣고 그런 이미지로 자꾸 반복돼 소비되는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이라고 망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얼마 전 <야심만만>과 <놀러와>에 나왔던 이미숙은 망가지고 웃기면서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조 요새 중견 게스트 중의 최고는 누가 뭐라 해도 박미선이다. <미남들의 수다>에서도 진짜 잘하더라. 얼굴 한번 더 들이밀려고 안간힘 쓰지 않고 방송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게 연륜도 묻어나고 재치나 순발력도 젊은 게스트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정 완전히 일당백이지. <미녀들의 수다>를 거친 남자 패널 모두를 합쳐도 박미선 한 명보다 못하다. 박미선이 <미녀들의 수다>에 고정 패널로 나오면 안 될까. 사실 이 프로가 논란이 되는 게 남자들은 둔할 수 있는 여자들의 미묘한 문제들이 등장할 때인데. 박미선 같은 ‘언니’가 버티고 있으면 프로그램 전체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조 요새 다시 물 만난 고기처럼 기량을 발휘하는 박미선을 보면 이성미도 그립고, 김보화도 그리워진다. 이들과 이경실 같은 여성 트리오는 진짜 어디에 갖다놔도 자기 몫을 120% 달성하는 실력자들 아닌가. 그런데 지난 연휴 특집의 작품상은 <쑥부쟁이>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쑥부쟁이> 보는 내내 울었다네
정 반응이 좋아서 재편집해 바로 재방송 들어간다더라. 각본 좋지, 연출 좋지, 연기 좋지, 우리야 언제 봐도 감동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명절만 되면 부모님 앞에서 보기 민망하게 효를 강요한다는 시선도 있다.
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보는 내내 울었다. 혼자 봤기에 망정이지 누가 옆에서 같이 봤으면 어쩔 뻔했어(웃음). 사실 부모 재산 가지고 싸우는 자식이나 못된 며느리나 뻔한 드라마의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 게 작가의 인간적인 면이 배어나와서 절절했다. 예전에 김정수 작가가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정 특집 드라마 중에 가끔 명작이 나오는데 올해도 한 작품 건졌다. 또다른 명작을 보려면 추석 때까지 두 계절을 더 기다려야 하나. 연휴가 끝나니까 역시 곧바로 다음 연휴가 기다려지는구나(웃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시들지 않은 중년들 카리스마에 짝짝짝 중견 엔터테이너는 어떻게 부활하는가. 지난 설 연휴 프로그램의 성과는 중견 개그맨과 작가, 배우 등 중견의 힘을 확인해 준 것이다. 설 특집으로 편성된 한국방송의 <미남들의 수다>에서 지금까지 <미녀들의 수다>를 거쳐 간 수많은 남자 패널들을 합친 것보다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 박미선과, <전원일기>의 작가와 배우들이 다시 뭉친 문화방송의 <쑥부쟁이>가 그 주인공들이다. 방송 3사의 설 연휴 프로그램 총평과 버라이어티쇼에서 빛나는 중견들의 카리스마에 대해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드라마·시나리오 작가인 조진국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설 특집 프로그램은 문화방송이 새로운 스타일은 많이 개발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도 그렇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맛보기용으로 방영한 ‘넌센스왕’도 참신했다. 요새는 방송 형식도 인터넷에 영향을 받는 게, ‘넌센스왕’은 마치 인터넷 댓글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패널들이 참신한 답변을 받아치는 구성이다. 그 답변들이 재기 발랄하지가 않아 프로그램이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조진국 지난 추석 때 좋은 반응을 얻어 이번에 한국방송에서 다시 한 <안나의 실수>도 인터넷을 떠도는 실수담이나 웃긴 이야기들을 방송으로 옮겨놓은 형식이다. <안나의 실수>뿐 아니라 <미남들의 수다>처럼 한국방송은 저번 연휴 때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들을 시즌식으로 다시 보여준 것 같다. 아슬아슬한 선 잘 넘나들던 이효리

설날 연휴 특집 프로그램 가운데 돋보였던 〈우리 결혼했어요〉. 문화방송 제공.

최근 중견 개그맨 박미선의 활동이 눈부시다. 한국방송 제공.

〈쑥부쟁이〉.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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