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입문1 : 인생은 비정규직이야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스무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인생의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저는 올해 꽃다운 스무살 사회과학부 예비 여대생입니다. 말이 좋아 꽃다운 스무살이지 실상 저는 그리 꽃답지도 않습니다. 여하튼, 이제 대학생인데 저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갈피도 제 자신에 대한 갈피도요. 막연하게나마 꿈이라고는 좋은 사람이 되자인데 그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도 어떤 소신이 있어야 할 듯한데 저는 이렇다 저렇다 할 저만의 관점이 없습니다.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귀는 습자지 귀처럼 얇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남들 다 갖고 있는 취미도 없습니다. 어떤 한 분야를 좋아하고 그 세계를 안다는 것이 상당히 부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뭔가 자율적으로 하기보다는 의지하려 드는 편입니다. 이렇게 상담을 요청하는 것도 그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해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공무원, 교사 한다고 할까 봐 두렵습니다. 상담 내용이 두서없긴 하지만 부탁드려요.
A 0. 대학생인데, 어른행세 해야 할 거 같은데 관점, 소신부재하고 진로는커녕 내가 누군지도 갈피가 안 잡혀요.
아, 망연자실에 요령부득. 이런 소린데. 우선 이것부터. 당신 정상이야. 우리나라서, 그 나이에, 아는 척 떠든다. 조또 모르면서 하는 소리야. TV서 본 거+남들 이야기.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재능은 뭐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교육이 그거 하란 건데. 하여 서른 넘어서도 자신이 누군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 수두룩해요. 게다가 구체적 진로, 지금 고민할 필요 없어요. 순서, 한참 멀었어. 지금은 뭘 알아야 하는지만 알면 돼. 뭐냐. 자, 오늘은 쿨한 어른 되자면 반드시 습득해야 할 거 몇 개만 친절하게, 읊어 보자고.
1. 첫번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머릿속에 그려봐. ‘나’는 점이야. 점, 수학시간에 배웠지. 1차원. 여기에 ‘너’가 등장하면 둘 사이 선이 그어지고 선 모이면 면 생기지. ‘나’와 ‘나’로 인한 관계의 평면. 2차원. 쉽지. 여태 당신 삶은 대체로 이 2차원 안에서 해결되는 삶이었어. 근데 ‘나’와 ‘너’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그’가 등장한다. ‘나’로 인한 x축과 ‘너’로 인한 y축이 만든 평면과 만나지 않는 공간에 ‘그’가 출현한다. 이제 ‘그’ 위치 표하자면 z축이 필요하겠지. 3차원. 1-1. 이제 그 입체망에서 ‘그’가 존재하는 z축으로 이동해 x축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다 생각해봐. ‘그’의 좌표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지. 그 능력을 자기객관화라 한다. 어른과 아이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능력이야. 지성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거든. 이게 안 되면 어른, 아냐. 이건 주름살처럼 절로 안 생겨요. 이두박근처럼 획득해야 하는 거라고. 어떻게. 내 평면으로부터 벗어나. 등짝 붙일 공간만 있어도 집, 나와. 졸업 전까지 최대한 자주 이 나라 떠. 어떻게든 내 평면 밖으로 나가. 그렇게 나와 다른 걸 조우한 분량이 충분히 축적되면, 어느 순간 그게 돼. 1-2. 이게 되면 다음 중요한 건, ‘물끄러미’ 파트. 바라보되, 물끄러미, 바라보기. 이건 뭐냐. (아, 씨바 설명할 거 많네.) 이건 시큰둥하란 건데 시니컬하곤 달라요. 길 가는 데 쾅, 차사고 났어. 돌아봐. 사람 다쳤으면,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지 뭐, 무덤덤 씨부린다. 이건 시니컬. 반면, 쾅 했어. 안 돌아봐. 다치진 말아야 할 텐데. 그러고 그냥 가. 이거, 시큰둥. 이제 그 차사고가 내 인생의 도로에서 났다 생각해봐. 느낌 오나. 삶의 통증 대부분은 지만 힘든 줄 알아서 지가 만드는 거야. 억울해서. 더구나 지가 너무 중요한 줄 알아요. 그래서 북받쳐. 하지만 이, 시큰둥, 되잖아. 그럼 자기 인생 가지고 소설 안 써. 자기가 누군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 담백해진다고. 당연히 관점도 클리어해지지. 자, 여기까지가 자기 객관화 패키지.
2. 뭐야, 지면 다 됐네. 어머, 어떡해. 나, 너무 친절했나봐. 할 수 없다. 진로 이야긴 본질적 원칙만 이야기하자. 앞으로 직업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텐데, 한 가지만 명심해. 인생이, 비정규직이야. 삶에 보직이란 없는 거라고. 직업 따위에 지레 포섭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거 닥치는 대로 덤벼서 최대한 이것저것 다 해봐. 그러다 문득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개미군체의 병정개미는 되지 말라고.
3.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제 하고 싶은 것 좇으며 살면 되는 거냐. 거기 스타일이 있어야 해. 복식이든 행동이든 삶의 패턴이든. 그 모든 게 멋대가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어. 다 멋지자고 하는 건데 말야. 그럼 스타일은 어떻게. 담 시간에.
PS - 뭔 소린지 모르겠거든 일단 외워. 오늘은 여기서 안녕, 아가씨.
김어준 방송인
고민상담은 gmin@hani.co.kr
1. 첫번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머릿속에 그려봐. ‘나’는 점이야. 점, 수학시간에 배웠지. 1차원. 여기에 ‘너’가 등장하면 둘 사이 선이 그어지고 선 모이면 면 생기지. ‘나’와 ‘나’로 인한 관계의 평면. 2차원. 쉽지. 여태 당신 삶은 대체로 이 2차원 안에서 해결되는 삶이었어. 근데 ‘나’와 ‘너’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그’가 등장한다. ‘나’로 인한 x축과 ‘너’로 인한 y축이 만든 평면과 만나지 않는 공간에 ‘그’가 출현한다. 이제 ‘그’ 위치 표하자면 z축이 필요하겠지. 3차원. 1-1. 이제 그 입체망에서 ‘그’가 존재하는 z축으로 이동해 x축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다 생각해봐. ‘그’의 좌표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지. 그 능력을 자기객관화라 한다. 어른과 아이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능력이야. 지성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거든. 이게 안 되면 어른, 아냐. 이건 주름살처럼 절로 안 생겨요. 이두박근처럼 획득해야 하는 거라고. 어떻게. 내 평면으로부터 벗어나. 등짝 붙일 공간만 있어도 집, 나와. 졸업 전까지 최대한 자주 이 나라 떠. 어떻게든 내 평면 밖으로 나가. 그렇게 나와 다른 걸 조우한 분량이 충분히 축적되면, 어느 순간 그게 돼. 1-2. 이게 되면 다음 중요한 건, ‘물끄러미’ 파트. 바라보되, 물끄러미, 바라보기. 이건 뭐냐. (아, 씨바 설명할 거 많네.) 이건 시큰둥하란 건데 시니컬하곤 달라요. 길 가는 데 쾅, 차사고 났어. 돌아봐. 사람 다쳤으면,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지 뭐, 무덤덤 씨부린다. 이건 시니컬. 반면, 쾅 했어. 안 돌아봐. 다치진 말아야 할 텐데. 그러고 그냥 가. 이거, 시큰둥. 이제 그 차사고가 내 인생의 도로에서 났다 생각해봐. 느낌 오나. 삶의 통증 대부분은 지만 힘든 줄 알아서 지가 만드는 거야. 억울해서. 더구나 지가 너무 중요한 줄 알아요. 그래서 북받쳐. 하지만 이, 시큰둥, 되잖아. 그럼 자기 인생 가지고 소설 안 써. 자기가 누군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 담백해진다고. 당연히 관점도 클리어해지지. 자, 여기까지가 자기 객관화 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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