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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남친과 헤어지고 듬직한 남편감 만났는데…

등록 2008-03-05 19:02수정 2008-03-08 17:21

결혼은 거래다, 아서라
결혼은 거래다, 아서라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소울메이트 남친과 헤어지고 듬직한 새 남편감 만났는데 통하질 않아서…

갓 서른이 된 직장 여성입니다. 얼마 전 남친과 헤어졌습니다. 섬세하고 모든 면에서 잘 통해 소울메이트라 여기며 부모 반대 무릅쓰고 7년 열애했던 뮤지션 지망생이었지만, 2년 전 제 남동생의 죽음 후부터, 듬직한 남편 데려다 가족의 빈자리를 메워 놓아야겠단 강박관념이 생기더군요. 2년을 끌다, 새 남자 만났습니다. 솔직하겠습니다. 사시 패스해서 군법무관 3년차. 곧 판검사 될 사람이라 멋져 보이는 것도 있었고 연말연시 분위기에 초반 한 달은 둥둥 떠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매일 밤 고민합니다. 저랑 너무 다르거든요. 매번 불같은 연애했던 저랑 달리 연애경험 한번 없는 그. 문화와 사교가 중요한 저와는 달리 독서·여행·영화·공연 경험은 물론 사진조차 찍어본 적도 없는 무취향의 그. 친구도 없고 주말엔 집에만 있으며 절 좋아한다는 말 이외엔 화제 자체가 없습니다. 통화해도 할 말이 없어요. 정말 많이 답답합니다. 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끌리고 심지어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날 버리지 않을 거란 희한한 확신까지 듭니다. 하지만 최근엔 하도 답답해 옛 남친을 만나 하소연까지 합니다. 이 통하지 않는 느낌, 불통, 고쳐질까요? 정들기 전에 정리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론 고쳐져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거든요 …. 어쩌면 좋나요.

A 0. 감성적 교감은 충만했으나 사회적으로 취약했던 남친과 이별 후, 직업적 안정과 지위 갖췄으나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는 새 남자, 만났다. 과연 새 남자와 맺어질 수 있겠냐. 듬직한 남편감인데 소통이 전혀 안 된다 이거지. 거 문제는 큰 문젤세. 뭐가 문젠가. 따져 보자.

1. 먼저 일반론 하나. 결혼, 잡소리 다 걷어치우고 알맹이만 보자. 대체 왜 하나. 혼자서는, 불완전해서, 하는 거다. 정서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사회경제적으로든. 그 맥락에서 결혼은 본질적으로 거래다. 제 존재의 불완전을 상대의 자산으로 보정하는 거다. 하여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대차 대조 한다. 상대의 보유 자산이 과연 내게 교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타산을 속물적이라 타박하는 건 착각이다. 정작 비탄해 할 것은 그렇게 교환 가치를 지닌 것들의 목록이, 우리 사회에선, 천박할 정도로 단조롭고 물질편향이란 사실일 뿐. 애초 호혜적 이문 없는 관계란 지속 불가능한 게 자연의 법칙이다.

2. 이제 당신 이야기. 우선 듬직한 남편 들여 가족 내 상실감 보상받으려 했던 당신의 강박은, 납득할 만한 애도반응이요, 방어기제다. 그렇게 가족을 복원하려는 데, 옛 남친이 바로 그 가족으로부터 인증받지 못해 왔단 사실은 중대한 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거고. 새 남자에게, 스스로도 의아할, 상당한 호감 느낀 것 또한 당연하다. 옛 남친의 결격 사유가 곧 새 남자의 셀링포인트니까. 더구나 새 남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극히 단선적이라는 건 그 남자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거고, 그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삶에서 상당한 미덕이 된다. 당신이 배신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인 거고. 그렇게 당신이 옛 남친과 이별하고 새 남자에 끌리는 건, 우여곡절이야 왜 없었겠냐만, 자연스러운 프로세스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3. 결혼은 언제 실패하나. 거래에 실패할 때 실패한다. 역시 이해타산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었어야 했단 식의 주말드라마는 낭만적이긴 하나, 착각이다. 실패는 타산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 타산의 목록이 잘못됐던 데 있는 거다. 자신에게 교환가치가 있는 게 뭔지 스스로도 몰랐던 게지. 지가 언제 행복한지도 모르면서 남들 목록만 베끼고 자빠져 있는 인생이 태반이니까. 결혼의 불행은 그러니까 거래, 해서가 아니라 그 거래에, 실패해서 오는 거다. 고로 결혼의 지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주고받는 것, 그 교환 목록의 밸런스다. 그 거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결혼도 무너진다.

그런데. 그렇게 손해나는 결혼보다 더 불행한 게 있다. 아예 거래할 게 없는 결혼이다. 당신 경우 보자. 물론 판검사란 직위, 관계에 대한 로열티란 덕목은 훌륭한 교환가치 지닌다. 근데 당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들의 목록 전체가 그 두 가지만으로, 통합결제 되는 건가.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그럴 수 있단 오해, 많이들 한다. 하지만 결혼은 에피소드 한두 개로 매듭 나는 단막극이 아니다. 마뜩한 결론도 없이 평생 틀어놔야 할 연속극이라고. 그 무지막지한 주야장천 평생생활극에서 당신과 그 사이엔 서로 주고받을 것들의 목록이 너무 적다. 취향이 다른 건 좋다. 하지만 취향을 의지로 만들어낼 순 없는 거다. 화제의 부족이나 대화의 절대량도 사실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소통이 안 될 때 진짜 문제는 화제가 부족한 게 아니라 외롭다는 거다. 불통은 독백보다 외롭다. 아서라.

PS - 거래에 실패한 결혼의 결말은 그래서, 고독이다. 그 삶의 공복감은 밥으로는, 안 채워지고.

김어준 방송인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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