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용의 부활〉(2008)
[매거진 Esc] 김중혁의 액션시대
단 한번도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고 하면, 혀를 내두르는 남자들이 많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삼국지 완독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세 장을 넘기지 못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주인공도 많아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중간 중간 넘겨 보면 전쟁과 권력과 암투 얘기뿐이었다. 지루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길고 지루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로 보면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삼국지)을 보러 갔다. 그 긴 분량을 과연 한 편의 영화에 압축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도 들었지만 압축판으로라도 삼국지를 체험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만큼이나 지루했다. 널리 알려진 삼국지와도 다른 점이 많았다. 당연히 유비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류더화(유덕화)는 조자룡이었고, 보나 마나 장비 역일 것이라 생각했던 훙진바오(홍금보)는 나평안이라는,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한, 그러나 이름만큼이나 평안한 인물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것은 ‘명예’라는 명분이었다. 영화 속 남자들은 명예를 지키려고 목숨을 버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명예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마지막 혈전을 앞두고 조자룡 앞에 부하들이 무릎을 꿇었다. 조자룡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지 못할망정 불명예스럽게 죽게 할 수 없다”. 전쟁영화에서 100번 넘게 들어본 듯한 상투적인 문구다. 전쟁에 나간 부하는 죽으면서 이렇게 외친다. “촉나라 만세!”
이렇게 치열한 애국심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칼에 찔리면 아플 테고, 아프면 억울하고, 억울하면 집 생각날 텐데 나라의 만세를 염원하다니, 진정 사내대장부들의 삶이란 나처럼 하찮은 시정잡배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인 모양이다. 정녕 삼국지의 세계가 그러한 것이라면 다시는 삼국지 완독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명장’이라는 영화가 새삼 떠오른다. <삼국지>에 비한다면 <명장>은 걸작이었다. <명장> 속에는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의 고뇌가 있었다. 명예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그러나 전쟁에서의 명예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 있었다. 두 영화의 관점이 이렇게 다르니 액션 장면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명장>의 액션은 절절하고 처참하지만 <삼국지>의 액션 장면은 기교와 스케일만을 강조한 것이었다. <명장>의 액션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개인의 사투가 보이지만, <삼국지>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죽고 싶어 하는 철부지 남자들의 치기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류더화는 두 영화 모두에 출연했다. <명장>에서는 눈부신 연기를 펼쳤지만 <삼국지>에서는 연기 대신 백발만 눈부셨다.
김중혁 객원기자 vonnegu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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