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 디자인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도시는 욕망의 산물이다.
서울이 보기 싫은 못생긴 도시라고? 아름다운 도시여서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은 아니니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그 책임을 누구한테 돌려야 하는 것일까?
서울을 못생긴 도시로 규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로 으레 무미건조한 아파트들과 난립한 간판들을 꼽는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멋없게 짓는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회사를 비난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파트나 설계하는 건축가를 규탄해야 하는 것일까? 또는 그런 아파트나 간판을 허가해 주는 공무원을 욕해야 할까? 아파트나 간판을 법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정부나 국회의원에게 책임이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구성원들의 욕망에 따라 발전하고 진화한다. 지금 서울의 모습은(혹은 특징 없는 지방 도시들의 모습은) 누구도 아닌 바로 그 구성원들의 의식수준으로 결정된다.
길을 지나는 아무나 붙잡고 질문을 한다고 치자. ‘선물을 줄 테니 하나를 고르세요. 10억원짜리 강남의 아파트와 같은 가격의 평창동 단독주택입니다.’ 북한산 기슭의 맑은 공기와 한적함이 어우러진 편안한 동네인 평창동은 매력적인 곳임이 분명하다. 단독주택이라면 마당에서 강아지가 뛰어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남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와 아파트라는 한국인 주거형태 선호도 1위의 조합이 주는 유혹이 그냥 흘려보내기에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이 물음에 평창동 단독주택이라고 답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수가 과반을 넘는 날이 오면, 그 때쯤엔 우리의 도시도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판도 마찬가지다. 물론 삼청동길이나 가로수길 같은 요즘 뜨는 동네에서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간판들이 예쁜 디자인으로 거리를 장식해 간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네 간판 문화는 크고, 화려하고, 밝은 것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 간판들이 없어지려면? 답은 간단하다. 크거나 화려하기만 해서 튀는 간판을 달아놓은 가게로 사람들이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가령 커다란 간판을 달아놓은 식당의 예를 든다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저 집은 간판만 크게 해놓은 것을 보니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맛도 또한 없겠구나’ 하고 인식하면 된다.
사실 서울이 좀더 멋진 도시가 되길 바라는 나로서도 당당하게 비판만 하고 있을 자격은 없다. 솔직히 누가 강남의 아파트와 평창동 주택 중에 하나를 준다고 하면, ‘강남의 아파트로 돈을 좀 벌어서 판 다음에 그 돈으로 내가 살 집을 지어야지’ 따위로 결정을 내릴 것 같다. 낯선 동네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밥을 사먹어야 할 때, 큼지막한 간판이 걸린 집에 먼저 눈이 가게 되고 결국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나니 이미 나 역시 서울의 지저분한 간판 문화에 대한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도시는 우리에게 내재된 욕망에 따라 디자인된다. 결론은 쉽다. 우리의 욕망이 좀더 정갈하게 가꿔지고 좀더 이타적으로 변모한다면 우리의 도시들도 정돈되고 공공적으로 바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오영욱/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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