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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마법은 ‘소통’이었더냐

등록 2008-07-02 17:30수정 2008-07-03 15:26

너 어제 그 경기 봤어?
너 어제 그 경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 경기 봤어?
전 세계 팬들의 새벽잠 뺏은 유로 2008
그 감동적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말한다

점심시간 회사 동료들과 함께하는 식탁 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 또 틈틈이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메신저 창에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연예인 얘기만큼이나 자주 올라오는 단골 소재는 축구다. 그래서 이번호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너 어제 그거 봤어?’ 대신 축구 대담 ‘너 어제 그 경기 봤어?’를 싣기로 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수많은 이들의 새벽잠을 빼앗고 결국 스페인의 승리로 끝난 ‘유로 2008’에 대해 <스포탈 코리아> 서형욱 편집장과 축구평론가 정윤수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유로 2008에서 다시 한번 마법을 발휘한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승리의 길목에 있었던 감독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이들과 거꾸로 가는 우리 대표팀 감독에는 우려를 표했다.

서형욱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한 달 있다 왔더니 시차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결승전 중계까지는 시차가 맞아서 좋았는데 지금은 정신이 없다. 현지에서 본 수많은 경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러시아 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이다. 러시아 팀 자체가 주요 대회에서 대패를 자주 당하는 팀이다. 점수 차이가 두 골 이상 벌어지면 끝이다. 터키의 정반대에 놓여 있다. 터키는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지만, 러시아는 끝나기 전에 끝날 수 있는 팀이다. 히딩크 감독을 보고 싶어서 러시아·스페인전에 갔다. 스위스에서 자동차를 몰고 6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그런데 너무 못했다. 히딩크 감독이 진맥은 잘했는데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해 공격 기회를 놓쳤다.

정윤수 이 경기에서 러시아가 4 대 1로 졌다. 0 대 0에서 첫 골을 허용하고 나서 역시 무너졌다.

스페인이 라울을 뺀 건 탁월한 결단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고 희망적인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러시아는 그리스전에서 승리를 했다. 그 다음부터 아르샤빈이 돌아오면서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러시아-네덜란드전은 길이 남을 경기다. 당연히 누구나 네덜란드가 앞선다고 생각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장에서 인터뷰를 했다. 네덜란드 판 바스텐 감독이 들어와 패배를 인정했다. 그 다음에 히딩크 감독이 절룩거리면서 들어오는데 전세계 모든 기자들이 박수를 쳤다.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히딩크 감독은 역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 사람이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이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축구는 모순의 스포츠다. 모든 것이 불균형 속에서 팀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것이고, 불완전성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거다. 이번 유로 2008은 히딩크 감독 등 몇몇 감독을 중심으로 경기를 봤다. 나중에는 우승팀이 스페인이었지만 어떤 한계점을 통과하면 감독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감독의 역량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도 있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최대치가 어디인지를 보여줬다.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끈 아라고네스 감독(위). 사진 AP연합.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끈 아라고네스 감독(위). 사진 AP연합.
러시아는 조별 리그 세 경기만을 기대했는데, 아르샤빈은 유럽축구연맹(UEFA) 징계로 두 경기 결장이 이미 예정된 선수였다. 그럼에도 히딩크 감독은 아르샤빈을 선택했다. 아르샤빈은 히딩크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출전한 세 번째 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선수가 가진 걸 뽑아낼 수 있는 감독이 히딩크다. 우승까지 가려면 감독의 역량이 정말 중요하다. 네덜란드 수비수 불라루즈는 경기 직전에 갓 태어난 딸을 잃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검은색 완장을 차고 뛰었다. 불라루즈는 경기 준비도 못 했을 텐데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했다. 선수가 뛰겠다고 하니까 감독은 내보내면서 사기를 올리려고 했겠지만 결국 오른쪽은 뚫렸다. 판 바스텐 감독이 냉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스페인의 아라고네스 감독은 우리 예전 대표팀으로 치면 홍명보나 황선홍이나 다름없는 선수를 뺐다. 10년 동안 스페인을 대표해온 라울을 일찌감치 뺐다고 한다. 라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려는 관습 자체를 거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인가 라울을 묵묵히 벤치에 앉혀 놓은 것도 본 적이 있다. 젊은 피를 중심으로 수혈을 했다. 그런 결단성과 선수에 대한 장악과 신뢰가 동시에 들어가는 게 필요하다.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승리까지 가는 감독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런 힘이 있다.

정신력의 승리를 보여준 터키-체코전

스페인 축구의 중심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있고, 그 중심에는 라울이 있다. 지단이나 피구도 라울 눈밖에 나면 어려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라울이 10년 동안 대표팀 중심에서 활약하면서 스페인은 한 번도 8강 이상을 가본 적이 없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라울이 지단처럼 팀을 장악하고 전술의 핵심이 되지도 않고, 벤치에 앉혀 놓는다고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 라울을 빼기 시작했다. 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만 해보지 않아서 레알을 싫어해서 그렇다고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수들이 라울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패스를 통해 치고 나가는, 체구는 작지만 부딪히지 않고 경기를 하는 지금의 스페인 축구를 만들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경기는 독일과 터키의 경기였다. 독일과 터키의 경기에는 역사적인 맥락도 있다. 터키 한가운데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흐른다. 그 해협을 두고 이쪽은 아시아이고 이쪽은 유럽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역사성도 있지만 20세기에는 터키의 많은 이주민들이 독일에서 살고 있다. 터키 나름의 설움이 있는데다가, 터키가 자기네 나라에 있는 소수 민족을 탄압해서 유럽의 인권단체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터키 청년 한 명에게는 이런 이중 삼중의 이미지와 편견이 있다. 유럽은 터키를 배척하고 경멸하려는 인식이 스포츠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드러난다. 그런 외적인 것들이 투영된 것이 독일-터키전이었다.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 AP연합.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 AP연합.
아군이 하나도 없었던 터키는 모든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어서 이겼다. 터키-체코 경기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후반전에서 터키가 지고 있었는데, 부심의 깃발이 부러져서 교체를 해야 했다. 2 대 0으로 지고 있어서 다급했던 터키 선수들은 직접 깃발을 들고 뛰어서 심판에게 가져다줬다.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그런 정신력으로 경기를 했다. 2 대 0에서 2 대 2가 되고 결국 터키가 승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보통 축구에서 투지와 정신력이 전부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힘을 발휘하는 것은 정신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시간을 1초라도 더 벌고 싶은 선수와 한마디라도 전술적인 지도를 더 얘기하고 싶은 감독이 모여서 축구라는 하나의 경기가 완성되는 것 같다.

허정무 감독이 배워야 할 점은

유로 2008과 히딩크 감독을 보면서 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선수 쪽에서는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느낌, 설령 내가 실수를 해도 그 실수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돌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 각 팀들의 분위기를 보면 감독들이 군림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알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속에서 소통한다.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는 거꾸로 40∼50대 감독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 인터뷰를 보면 수비수가 없고 공격수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 감독이 자기가 못 해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게 말을 하면 선수들이 감독을 신뢰할 수 없다. 소통을 통해 오해가 생기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간에 문제가 있다.

지금 대표팀 선수들 중에는 히딩크 시대를 겪었던 선수들도 있다. 또 히딩크를 겪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축구를 하는 젊은 선수들은 소통이 자유로운 활기찬 풍토에서 살아간다. 팀 전체를 운영해 나가는 분위기나 흐름에서 상명하복이나 엄격한 위계질서, 모든 책임을 선수들이 져야 하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감독으로서 팀 전체를 봐야 하지 않을까.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최고의 선수

“러시아의 아르샤빈을 꼽겠다.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팀들이 전체적으로 조직력이 강조되면서 패스를 위주로 경기를 풀어갔다. 그런데 아르샤빈은 이런 흐름에 반하는 선수였다. 혼자 경기를 이끌어갔다. 네덜란드를 격파할 때는 마라도나를 보는 듯했다. 혼자서 현대 축구에서 사라진 그런 장면을 재현했다. 그런 모습이 향수를 자극했다. 스웨덴전과 네덜란드전, 단 두 경기였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다.”(서형욱)

“스페인의 비야. 러시아 전에서 헤트트릭을 했고, 유로 2008 득점왕이 됐다. 골을 넣어야 할 때도 넣었고, 골을 넣지 않을 때도 움직임이 좋았다. 축구는 개인종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체력과 감독의 지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경기에서 화룡점정하는 것은 선수의 개인기다. 비야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줬다.”(정윤수)

■ 최악의 순간

“체코와 터키의 경기에서 최고의 골키퍼 체흐가 골을 놓치며 동점골을 허용한 순간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체코 축구의 전성기가 끝나는 순간이었고, 세계 최고인 ‘첼시’의 골키퍼 체흐가 특급 골키퍼 그룹에서 이탈하는 순간이기도 했다.”(서형욱)

“독일·터키전의 중계가 중단됐던 순간이었다. 위성 송출 시스템 어디에 어떻게 문제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명승부에 가까웠던 독일·터키 경기가 도중에 끊겼다. 희비극이 교차했던 경기를 중간 중간 관찰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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