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디자이너 지에프엑스(GFX), 부창조, 강박사, 일러스트레이터 천소가 작업한 윕.
[매거진 esc]
작가에 따라 디자인 바뀌는 국내 최초 플랫폼 토이 ‘윕’을 위한 협업 프로젝트 실험 중
여기 정체불명의 장난감이 있다. 뽀얀 피부를 가진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뒤쪽에 스위치를 숨긴 책상 스탠드 같기도 하고,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에 등장하는 우울증 걸린 로봇 마빈의 친구쯤 되는 로봇 같기도 하다. 사람인지 물건인지 로봇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이 장난감은 국내 최초의 플랫폼 토이 ‘윕’(ouip)이다.
둥근 머리는 360도 돌아간답니다
윕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플랫폼 토이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플랫폼 토이란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인데 참여하는 디자이너나 작가에 따라 디자인이 바뀌는 장난감을 말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플랫폼 토이로는 세계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아온 일본 ‘메디콤’의 베어브릭과 큐브릭,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을 가진 홍콩 ‘토이투알’의 퀴, 플랫폼 토이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미국 ‘키드로봇’의 더니 등이 있다. 최고의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해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베어브릭과 퀴, 더니는 장난감과 예술이 만났다는 의미에서 아트 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윕은 국내에서 처음 제작된 ‘메이드 인 코리아’ 플랫폼 토이다. 윕을 만든 이들은 ‘델리토이즈’의 이재혁씨와 조영민씨다.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며 수년간 수천 점의 장난감을 수집해 온 이 둘은 지난해 손을 잡고 플랫폼 토이를 만들기로 했다. “플랫폼 토이와 피규어 등 장난감을 모으면서 우리에게도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담긴 플랫폼 토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플랫폼 토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에 가깝거든요.”
어떤 형태의 플랫폼 토이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이재혁씨가 5년 전에 디자인한 적이 있는 전구 형태의 장난감이 떠올랐다.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전구 모양 그림을 그리잖아요. 아이디어가 중요한 플랫폼 토이에 전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예전에 만들었던 장난감을 기본으로 해서 전구를 닮은 플랫폼 토이를 디자인했어요.” 이름도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감탄사처럼 내뱉는 말 ‘그래!’의 불어인 ‘위’(oui)에 플랫폼 토이의 피(p)를 붙여 윕이라고 붙였다. 동물의 형태를 빌린 베어브릭이나 퀴, 더니와 달리 윕은 사람의 형태에 가깝다.
윕의 가장 큰 특징은 둥근 머리가 360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다른 플랫폼 토이보다 캔버스가 더 넓은 셈이다. 머리가 돌아가는 대신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전구의 둥근 디자인을 살리다 보니 골반을 만들 수가 없어 움직이는 다리는 포기했다. 물론 팔은 움직인다. 산통 끝에 윕은 지난 5월 세상에 나왔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두 윕 유어셀프’(Do Ouip Yourself)라는 문구가 상자에 쓰여진 디아이와이(DIY) 형태의 윕은 처음에 150개를 한정으로 제작했고, 추가로 500개를 더 제작해 현재 판매 중이다. DIY 형태…처음엔 150개만 한정 제작
이재혁씨와 조영민씨가 윕을 내놓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국내 젊은 디자이너·작가들과 함께한 협업 프로젝트다. 국내 작가 25명을 섭외한 다음, 윕을 2개씩 전달해 각자 원하는 윕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표현된 윕이 나왔어요. 저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윕을 해석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요.”
디자이너 김시환씨와 손정민씨, 아트 디렉터 부창조씨와 탁소(TAKSO)씨는 각자 자신의 디자인 색깔이 잘 드러나는 윕을 만들었고, 미술 작가 임국씨와 일러스트레이터 천소씨도 자신의 작업 연장선에 있는 윕을 만들었다. 의상 디자이너 강박사와 이현수씨는 힙합 옷을 입은 장난꾸러기 윕을 만들었고, 피규어 아티스트 황찬석씨는 윕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다른 인형을 넣었다. 윕의 머리를 음반으로 이해하고 그 위에 턴테이블을 달아놓은 360사운드의 디제이 진무씨와 머리 대신 진짜 전구를 부착한 프리랜스 컨설턴트 김진우씨의 윕도 눈길을 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스티키 몬스터 랩’ 아트 디렉터 부창조씨는 “평면 작업이 아닌 독특한 입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플랫폼 토이의 큰 장점”이라며 “생각이 열려 있고 자유로운 국내 젊은 디자이너에게 이런 작업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천소씨는 “플랫폼 토이는 형태가 있는 캔버스라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흥미를 준다”며 “작가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아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는 디아이와이 형태로 나온 것도 재밌다”고 설명했다.
서울 홍대앞과 가회동에서 전시회도
‘윕 러브스 아티스트’(Ouip Loves Artist)라고 이름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델리토이즈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또 다음달 7일까지는 홍대앞 상상마당 3층 아트마켓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한 윕이 전시된다.
델리토이즈는 앞으로도 국내 젊은 디자이너와 작가를 찾아 계속 협업 프로젝트를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멋진 플랫폼 토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들이 국내에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해요. 협업을 통해 제작한 플랫폼 토이를 외국의 장난감 전시회나 박람회 등에 선보이면서 윕을 알리고, 또 윕을 통해 국내 작가들을 알릴 예정이에요. 반응이 좋은 작품은 한정판으로 제작해 판매할 수도 있구요. 지금 당장 상업적인 성공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좋은 디자이너와 작가를 만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봐요. 윕이 국내 젊은 디자이너와 작가의 창의적인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됐으면 합니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아이와이(DIY) 형태로 출시된 윕.
(아래)‘윕 러브스 아티스트’ 전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델리토이즈 갤러리 모습.
(아래)‘윕 러브스 아티스트’ 전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델리토이즈 갤러리 모습.
윕의 가장 큰 특징은 둥근 머리가 360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다른 플랫폼 토이보다 캔버스가 더 넓은 셈이다. 머리가 돌아가는 대신 다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전구의 둥근 디자인을 살리다 보니 골반을 만들 수가 없어 움직이는 다리는 포기했다. 물론 팔은 움직인다. 산통 끝에 윕은 지난 5월 세상에 나왔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두 윕 유어셀프’(Do Ouip Yourself)라는 문구가 상자에 쓰여진 디아이와이(DIY) 형태의 윕은 처음에 150개를 한정으로 제작했고, 추가로 500개를 더 제작해 현재 판매 중이다. DIY 형태…처음엔 150개만 한정 제작
윕을 든 델리토이즈 이재혁 실장.
대표적인 플랫폼 토이인 일본 메디콤의 베어브릭(왼쪽)과 홍콩 토이투알의 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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