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언제 가도 재밌는 스테디셀러다. 신라 별궁이 있었던 안압지.
[매거진 esc]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끌리는 여행 4 - 패키지편
편안한 버스·고급스런 호텔·넉넉한 먹거리와 함께한 3박4일 우리 강산
편안한 버스·고급스런 호텔·넉넉한 먹거리와 함께한 3박4일 우리 강산
누구나 한번쯤 전국일주, 세계일주, 우주여행 등을 꿈꿔봤을 것이다. 아니라고? 뭐, 나는 그렇다. 어렸을 때는 전국일주를 꿈꿨고, 20대에는 세계일주를 소망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우주여행도 해보고 싶다.
문제는 어렸을 때처럼 무작정, 무계획적으로 떠나는 일주는 싫다는 거다. 손가락으로 트럭(자가용보다는 왠지 안전할 것 같아서)을 세워 히치하이킹을 해본 적도 있고, 절에서 하룻밤(템플스테이가 아니라) 신세를 진 적도 있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좀 편안하게 다니고 싶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엎어지면 백사장이
베테랑 기사가 운전해주는 편안한 버스를 타고, 그럴듯한 호텔에 머물며, 그 지역의 소문난 음식도 두루 맛보면서 다니고 싶다면? 방법은 있다. 전국일주 패키지여행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름도 거창하게 ‘고품격’이다. 패키지여행의 명품이랄까? 명품이라고 해서 눈이 뒤집어질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호텔 예약하고, 자가용 끌고 가는 것보다 저렴하다. 부모님을 위한 효도여행으로도 좋고, 부모님을 모신다는 핑계로 같이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자, 마음 한쪽에 치워놓았던 전국일주의 꿈을 꺼내라. 혹 아는가, 다음은 세계일주가 될지 ….
전국일주 패키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내가 택한 건 일주가 아니라 절반만 도는 동부권 일주였다. 6박7일이라는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또다른 이유는 한번에 끝내버리기가 좀 아쉬워서였다. 맛있는 곶감을 서랍 속에 감춰두고 야금야금 꺼내 먹는 심정인 셈.
첫 여행지는 경남 진주. 진주 한정식으로 입과 위를 달랜 다음 진주성으로 향했다. 촉석루 아래 작은 문을 지나 의암으로 내려가니 남강 물줄기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바로 그 현장이다. 의기사에서 논개 영정을 들여다보고, 촉석루 마루에도 잠시 올라본다. 박물관까지 돌아볼 만큼 시간이 넉넉했으면 좋으련만, 진주성대첩의 주인공 김시민 장군 동상 앞을 지나 공북문을 빠져나왔다.
버스는 부산으로 향한다. 광안대교를 지나니 금세 해운대다. 해운대 동쪽 끝에서 출발해 동백섬을 옆에 끼고, 오륙도를 돌아, 광안대교를 감상하는 유람선을 탈 차례다. 바람이 많이 불어 오륙도까지 나가지 못하고 대신 광안대교와 아펙 정상회담 장소였던 누리마루는 실컷 구경했다.
점심도 좋았는데 저녁은 훌륭했다. 1인분씩 개인 접시에 담겨 나오는 회정식은 싱싱한 회도 좋았고, 시원한 해운대 전망까지 더해 일품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저녁이니 소주도 한잔 곁들이고 ….
드디어 숙소에 도착. 해운대에서도 최고 전망과 위치를 자랑하는 웨스틴 조선호텔이다. 비록 오션뷰는 아니었지만 엘리베이터와 계단 몇 개만 내려가면 해운대 모래밭을 맨발로 걸을 수 있었다. 그냥 자기가 아까워 저녁에 한 번,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에 또 한 번 해운대 산책을 즐겼다.
호텔에서 잔다는 의미는 아침에 호텔 뷔페를 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종류의 빵, 다양한 샐러드, 밥과 국은 물론 죽과 수프도 있고, 커피와 주스와 과일까지 … 나는 호텔 뷔페가 좋다. 외국여행을 갈 때면 천천히 누리고픈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늘 아슬아슬하게 토스트에 빵에 과일 몇 조각으로 지나치는 게 또한 이것이지만.
의외로 재밌는 견학, 골리앗 크레인까지
일행 가운데 꼴찌로 짐을 실으니 버스는 달맞이언덕을 지나 울산으로 향한다. 줄곧 해안선을 따라가느라 창밖 풍경에 지루할 짬이 없다.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을 둘러봤다. 이 나이에 웬 견학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엄청난 규모의 배들이 만들어지는 현장과 민중가요에 자주 등장하던 그 골리앗 크레인이 바로 내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다음은 흔히 대왕암으로 불리는 감포 앞바다의 문무왕수중릉이다. 바다의 용이 되어서라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을 수장한 곳이다. 철 지난 바닷가는 쓸쓸하고 외로웠는데 대왕암 주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괜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신라 고도 경주는 발길 닿는 데마다 옛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역사도시 경주에서도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불국사에서는 제법 여유롭게 돌아볼 시간을 준다.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 극락전과 복돼지, 청운교와 백운교 등 기념사진을 남겨야 할 곳도 많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은 절이다.
에밀레종과 신라시대 주요 보물이 전시된 경주국립박물관과 신라의 별궁이 있었던 안압지, 왕들의 무덤인 대릉원 등도 차례로 방문했다. 문무왕수중릉에서 대릉원에 이르기까지 신라와 통일신라 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가이드는 바빴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의 기억을 더듬느라 덩달아 나도 바빴다. 볼거리가 많아 하루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경주는 스테디셀러인가 보다.
고백하자면, 안동은 내 고향이다. 하회마을, 도산서원은 학창 시절 소풍 장소였다. 그럼에도 갈 때마다 카메라에 담아 올 게 있다. 계절이 다르거나, 날씨가 다르거나, 하다못해 찾는 시간대가 다르니 번번이 다르게 느껴진다. 한 번도 시시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낀 적이 없다. 문을 반 정도 열어 놓은 초가집이나 담장 위에 소담하게 핀 능소화, 텃밭에 키 큰 옥수수며 빛바랜 입춘대길 글자가 정겹고 푸근하다. 민박이 많아지고, 식당이며 기념품가게, 매표소가 거슬리긴 하지만 세월을 견디며 고풍스럽게 지켜온 고택들과 골목길 걷는 맛에 비하자면 눈감아줄 만하다.
도산서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워낙에 고목이라 그런지 나무들도 그대로인 듯 보인다. 퇴계 선생이 손수 지었다는 도산서당 마루(암서헌)에 앉으면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더위를 식혀준다. 도산서당 동쪽 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자락을 오르면 서원 전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포인트가 나오니 시도해 볼 것.
아직은 따가운 오후 햇살에 지친 승객들이 일부는 잠을 청하고, 일부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데, 버스가 낙동강 상류를 거슬러 청량산 앞을 지나간다. 빼어나다고는 못 하지만 잠시 머물고 싶은 경치다.
오늘 일정도 이제 태백 황지연못 한 군데만 남았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는 태백 시내 한가운데 있다. 유독 물빛이 푸르고 밑에서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게 보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저녁은 한우구이. 횡성 한우가 요즘 인기인데 태백 한우도 그에 비할 만한 맛이다. 해가 떨어지고 도착한 정선 강원랜드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카지노 때문이리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관계로 카지노는 패스. 어떤 이는 이 깊은 산골의 밤을 홀딱 새고 있겠지.
풍경 속을 달리는 레일 바이크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레일 바이크 개장 시간에 맞춰야 해서 출발도 빨랐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아우라지다. 구절리에서 아우라지에 이르는 7.2㎞ 철로 위에 네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게 레일바이크다.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코스인데다 수동으로 페달을 밟아야 하는 거라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터널을 지나고, 철교를 건너고, 강을 따라 달리는 동안 마치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설악산 오색약수와 주전골. 계곡가 바위틈에서 약수가 솟는다는 게 신기하다. 쇳물 맛이 느껴지는 것이 달지는 않지만 위장병, 피부병에 효력이 있다니 한 컵씩 꼭 마실 것. 주전골은 남설악에서도 가장 계곡이 큰 곳으로 자연휴식년제로 20년간 통제됐다가 개방된 지 4년밖에 안 됐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오색약수에서 되돌아 나와야 했다.
나흘 동안에 우리 땅의 절반을 일주했다. 유쾌한 스위스 아줌마 아저씨들과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미국 동포 어르신들, 칠순 기념으로 오신 노부부,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싶던 젊은 할머니 4인방 덕분에 여행은 즐거웠다. 다음 세계일주 길에 스위스에서, 미국에서 그들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르겠다.
글·사진=김숙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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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앞바다의 문무암수중릉.
안동 도산서원.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태백시내에서 만난 황지연못.
남설악에서 가장 넓은 주전골.
정선 레일바이크.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강을 따라 달린다.
설악산 가기 전 들른 양양 하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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