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맥주 범인은 탄산수?
[매거진 esc]
10종 블라인드 테이스팅, 양대 맥주회사의 과점이 맛 향상 발목 잡는다
“밍밍하다.”(waterly)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 한국판은 한국 맥주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부분 이 평가에 동의한다. 한국 맥주에 대한 폄하는 “수입산이 맛있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국 맥주는 정말 밍밍한가? 브루마스터(맥주 양조 전문가)에게 한국 맥주를 포함해 열 종류의 병맥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상표를 가리고 맛을 평가하는 것)해 달라고 부탁했다.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이 운영하는 하우스맥주 전문점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의 오진영(32·위 사진) 브루마스터가 ‘악역’을 담당했다. 그는 독일의 월드 브루잉 아카데미에서 맥주 양조 과정을 수료한 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다. 맥주는 서울시내 할인점에서 구입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지난달 26일 오후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에서 진행했다.
수입산이 맛있다는 건 편견일까
공정한 비교를 위해 열 종류 모두 라거 스타일로 구입했다. ‘라거’란 색이 맑고 맛이 깨끗한 하면 발효 맥주를 가리킨다. 평가 기준은 색·향·거품의 조밀도와 지속도·바디(머금었을 때 묵직하게 느껴지는 정도)·맛·청량감·피니시(끝맛) 등이다. 향의 경우 맥아향·홉(쌉쌀한 맛을 내기 위해 맥주에 첨가하는 꽃)향을 주로 본다. 거품 입자가 촘촘하고 오래 지속되는 게 좋다. 거품은 맥주가 공기와 닿는 것을 막아 산화를 방지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맥주가 산화하면 시큼한 맛이 난다. 다음은 오진영 브루마스터의 품평이다.
하이트 맥스 그중 괜찮네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5번과 7번을 인상적인 맥주로 꼽았다. 9번과 10번도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나머지는 그런저런 평을 받았으며, 3번과 6번에 대한 평가가 가혹했다. 1번 칭다오, 2번 하이네켄, 3번 하이트, 4번 버드와이저, 5번 필스너 우르켈, 6번 카스, 7번 벡스, 8번 하이트 맥스, 9번 코로나 엑스트라, 10번 아사히 슈퍼드라이다.(왼쪽사진 촬영 뒤 다시 순서를 바꿨다.) 칭다오는 중국, 하이네켄은 네덜란드 맥주이며,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 맥주다. 벡스·코로나·아사히는 각각 독일·멕시코·일본 맥주다. 국내 맥주 가운데는 하이트 맥스가 가장 나은 평을 받았다.
똑같은 라거인데 왜 이런 품질 차이가 생길까? 우선 맥아 사용량이다. 80~90%는 맥아를 쓰고 나머지 부족한 전분은 옥수수·쌀 전분으로 보충해 만든 제품이 있다. 맥아가 비싸기 때문에 단가를 낮추려는 게 목적이다. 옥수수·쌀을 쓰면 좀더 가볍고(라이트 바디) 깔끔한 맛이 난다. 홉을 적정량 사용해 쌉쌀한 풍미를 내야 좋은 맥주다. 그러나 홉은 킬로그램당 수만원에 이르는 고가인 탓에 어떤 맥주회사는 홉향을 인위적으로 주입한다.
한국 맥주는 왜 밍밍한 걸까? 취재 결과 ‘워털리’(waterly)라는 표현처럼, 정말 물을 섞는 것으로 밝혀졌다. 라거 스타일 맥주는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4~5도 안팎이다. 맥주 발효 과정에서 8~9도 정도의 고알코올로 발효시킨 뒤 여과 과정에서 탄산수를 섞어 도수를 4~5도에 맞추는 공법이 ‘하이 그래비티 브루잉’(High Gravity Brewing)이다. 국내 업체 둘 다 이 공법을 사용한다. 하이트맥주는 지난달 24일 “하이 그래비티 브루잉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하이트맥주는 “이 공법이 질을 떨어뜨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공법은 공정별 용량을 증대시키고 에너지 절감 효과 등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대부분의 맥주회사에서 고농도 사입(HGB)을 실시한다. 하이트는 효모 사용량과 공정 조정 등을 통해 노멀 브루잉(Normal brewing)과 품질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품질관리를 한다”고 덧붙였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오비맥주 공장 직원도 “이 공법을 사용하지만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맥주업체들이 모두 이 공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롯데아사히 주류는 “아사히는 하이 그래비티 양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생산성 향상이 용이하지만, 향과 맛 등 특징을 끌어내기 어려워 오리지널 그래비티(자연적인 양조 방법) 제조법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도 하이 그래비티 공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독일은 ‘맥주는 물·맥아·홉·효모로만 만든다’는 ‘맥주 순수령’이 지켜지며, 탄산수는 이물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 맥주가 밍밍한 게 탄산수를 섞는 공법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공법으로 만들어진 맥주도 질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맥주 맛이 떨어지는 게 하이 그래비티 공법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맥주 맛을 좋게 하려고 사용하는 공법이 아닌 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맥주 선택에도 다양성의 미덕을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한국 맥주의 수준이 높아지려면 두 국내 맥주회사의 과점을 보호하는 현행 주세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하우스맥주 전문점에서 병입한 뒤 판매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마트·백화점 납품 등 유통은 여전히 금지된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마이크로 브루어리(소규모 맥주양조장)의 경우 하이트나 오비와 달리 여과·살균 작업을 거치지 않아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동일 법인으로밖에 맥주를 공급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령, 누군가 생맥주집을 차린 뒤 오킴스의 맥주를 공급받고 싶어도 같은 법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맥주 전문가 마이클 잭슨이 저서에 종종 인용했던 다음 문구를 떠올리는 맥주 애호가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불친절한 나라다.
“비브 라 디페랑스!”(Vive la difference·다양성 만세!)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유부남과의 연애 “내가 이럴 줄 몰랐어요”
▶ 대법원장 “젊은 법관 의욕 꺾지 말라” 묘한 여운
▶ [공지영 에세이] 그 친구 전화 받을까 말까
▶ 전태일 어머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 등록금 동결 왜 안하나…재학생 ‘부글부글’
| |
거품 입자가 적당히 촘촘하고 거품이 오래 지속해야 좋은 맥주다.
| |
▶ 유부남과의 연애 “내가 이럴 줄 몰랐어요”
▶ 대법원장 “젊은 법관 의욕 꺾지 말라” 묘한 여운
▶ [공지영 에세이] 그 친구 전화 받을까 말까
▶ 전태일 어머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 등록금 동결 왜 안하나…재학생 ‘부글부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4/0427/53_17141809656088_20240424503672.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