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잡으러♪ 얼음을 깰까요♬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고기를 잡으러♪
얼음을 깰까요♬ 유독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추위 때문이다. 체질이나 식습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마른 사람이 뚱뚱한 사람보다 추위를 더 탄다고 한다. 움직일 때 살찐 사람이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해 열을 더 내기 때문이다. 마른 사람이든 덜 마른 사람이든,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드물게 추운 겨울이 되고 있다. 오랜만에 겪는 이런 을씨년스런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즐겨보는 게 좋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아니라 ‘피할 수 있어도 즐기자’다. 추우면 추울수록, 얼음이 얼면 얼수록 즐기면 되고, 즐길수록 몸은 더 따뜻해진다. 꽝꽝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즐기는 고기잡이 삼매경으로 추위를 날려 보자.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서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우리 땅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은 강줄기야말로 애·어른 구분 없는 훌륭한 사철 놀이터이자, 맛과 영양이 빼어난 민물고기들을 숨긴 보물창고였다. 옛사람들은 겨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물고기잡이를 즐기며 추위를 견뎠다.
이런 즐거운 전통을 받들어, 최근 겨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행사가 얼음낚시를 주제로 내건 겨울축제들이다. 추위 따윈 아랑곳없이 겨울 맛을 제대로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축제장의 얼어붙은 강물로 모여든다. 축제장의 얼음낚시란, 널찍하게 정비된 강에 얼음을 얼리고 하루에 수천, 수만 마리씩 양식한 물고기를 푼 뒤 얼음구멍을 뚫고 낚시질을 해 잡아가게 하는 방식이다. 편의시설·안전시설·보온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어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과 연인들의 겨울 체험여행으로 알맞다. 30~50㎝급 대어를 낚는 손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낚시에 빠져들게 된다. 전통썰매·눈썰매·스케이트 등 갖가지 겨울놀이를 즐길 수 있는 얼음판도 마련돼 있다. 잡은 고기를 즉석에서 요리해 주는 등 음식 체험관도 다채롭다.
자연 속에서 전통 방식으로 즐기는 고기잡이 체험도 가능하다. 너른 강을 낀 산골 마을들에선 지금도 주민들이 모여 독특한 방식으로 겨울 고기잡이를 즐기는 곳이 많다. 떡메·작살 등을 이용한 전통 고기잡이 방식이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겨울 고기잡이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겨울 강 나들이에 보온과 안전사고 대비는 기본. 아무리 강 전체에 두꺼운 얼음이 얼었더라도 깊은 곳, 외진 곳을 찾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강물이 한쪽만 얼어 있는 경우엔 얼음판에 절대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술안주론 모닥불에 구워먹는 고기가 최고래요”
마흔다섯살 동갑내기 네 친구의 겨울 낚시 소풍, 언 강물 위에서 추억은 방울방울
얼어붙은 강을 걷는다. 투명한 얼음 밑 깊은 강바닥이 훤하다. 유리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쩡, 뚜두둥, 따닥, 텅 …. 멀리서 가까이서 얼음판을 울리는 청아한 소리. 얼음 갈라지는 소리다.
“어이, 여서부터 시작해 볼까? ”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강. 주민 넷이 섶다리 상류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모였다. 모처럼 나선 겨울 천렵, 모두들 다소 흥분된 표정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밥 먹듯이 물고기잡이를 함께 즐겨온 초·중·고교 동기동창들이다.
여름철 잠수부들이 싹쓸이해 가니 고기 구경 어렵네
마흔다섯 중년 넷은 오랜만의 겨울 천렵을 위해 전날 세 가지 도구를 준비했다. 굵직한 나무 밑동을 잘라 만든 떡메, 식사용 포크의 끝을 날카롭게 갈아 물푸레나무 장대 끝에 붙들어맨 작살, 그리고 역시 장대에 낀 곡괭이다.
“야야, 니 일루 와서 여 함 찍어봐라. 여 돌 밑에 꺽지 안 나오면 내 책임진다.”
영월읍 자동차 판매회사에 다니는 한태영씨가 물속의 커다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천리에서 다하누촌 정육점을 하는 박상준씨가 능숙하게 떡메를 내리쳐 얼음을 뚫었다. 얼음 파편이 튀며 지름 10여㎝의 구멍을 뚫리자, 박씨는 곡괭이로 구멍을 넓히고 손으로 얼음조각을 걷어냈다.
“돌 살살 일쿼봐라!”(들어올려라)
한씨가 얼음구멍에 곡괭이를 집어넣어 돌을 들자, 숨어 있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움직임이 둔해 멀리 달아나지는 못한다.
“야, 저 동자개 어디 가는지 잘 봐둬. 꺽지부터 작살 들어간다.”
휴가를 내 고향을 찾은 부천 사는 홍사근씨가 작살을 들고 가장 큰 꺽지를 쫓았다. 도망다니던 꺽지가 멈춘 곳에 한씨가 다시 떡메를 내리쳐 얼음구멍을 뚫고, 홍씨는 작살 끝의 날카로운 포크로 꺽지를 겨눴다. 지친 꺽지는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작살 끝에 찍혀 올라왔다.
“불쌍해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느이들 잔인한 건 똑같다니까!”
홍씨의 부인이자 동창인 주영희씨가 혀를 차자 홍씨가 맞받았다.
“얼레, 궈 놓으면 젤 먼저 대들어 먹어치울 사람이 누군데? 고기나 줘 담으셔.”
네 명의 동기동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음판 위를 오가며 고기잡이에 푹 빠져들었다. 강물도 얼음판도 물고기도 네 친구도 모두 3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했다. 넷은 웃고 떠들고 말다툼하며 옛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주씨의 비닐봉지엔 어느새 꺽지·동자개·돌고기·돌마자·모래무지 등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박상준씨가 나뭇조각들을 모아 불을 지피며 말했다.
“옛날엔요. 양은솥에 강물 퍼서 고기 넣고 고추장 풀고, 파·양파·김치·감자·라면 뭐 기냥 가져온 건 다 때려 쳐넣고 끓여먹었대니까요. 그래두 술안주론 나뭇가지에 껴서 구워먹는 게 최고래요.”
박씨가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동안, 홍씨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와 고기에 꿰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네 친구의 입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 강에선 끊임없이 깊고 낮은 울림의 청아한 선율이 이어졌다.
고기 잡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소주잔을 돌리던 한씨가 말했다.
“지금 얼음 두께 5~6㎝ 정도인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강 전체가 얼어 있어 좀처럼 깨지지 않아요. 만약 강물 한쪽이 덜 얼었다면 들어가선 안 됩니다.”
투명하면서도 두꺼운 얼음은 흐르던 강물이 처음 얼어붙을 때 주로 나타난다. 녹다가 얼기를 반복하며 여러 차례 얼어붙은 얼음은 기포가 생기면서 탁해진다고 한다. 주천강 주민들이 첫얼음이 얼 무렵 주로 하던 고기잡이가 잉어몰이였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잉어를 발견하면 얼음판을 두드려, 추위로 움직임이 둔해진 잉어가 지칠 때까지 몰아붙인다. 지친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떡메로 구멍을 뚫고 작살을 던져 잉어를 잡아올렸다.
“여름에 잠수부 애들이 작살질로 싹쓸이해 가니, 고기가 남아나나 어디. 잉어는 이제 저 아래 3급수에나 가야 나온다래대.”
옛날엔 도랑 안에 고기가 우수수 쌓였더랬는데
박씨가 정육점에서 가져온 쇠고기 등심을 물고기와 함께 구우며 푸념처럼 말하자,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얘들하고 겨울마다 이런 농기구로 얼음에서 물고기 몰고 구멍 뚫어 고기를 잡았걸랑요. 대대로 전해온 겨울놀이래요.”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깊은 물에선 1m 넘는 잉어나 50~60㎝ 되는 날치(끄리)도 흔하게 잡혔다니까요.” “니들 ‘섶’으루 고기잡던 거 생각나니? 돌로 보 막아놓구 도랑 맨들어 그 끝에 솔가지 덮어두면 고기가 거기 떨어져 쌓였잖아.”
네 친구들은 구운 물고기와 쇠고기를 안주 삼아 추억을 더듬었다. 강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며 마을의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언 강물이 맞장구치듯 요란하게 얼음 풀리는 소리를 냈다.
영월/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얼음을 깰까요♬ 유독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추위 때문이다. 체질이나 식습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마른 사람이 뚱뚱한 사람보다 추위를 더 탄다고 한다. 움직일 때 살찐 사람이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해 열을 더 내기 때문이다. 마른 사람이든 덜 마른 사람이든,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드물게 추운 겨울이 되고 있다. 오랜만에 겪는 이런 을씨년스런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즐겨보는 게 좋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아니라 ‘피할 수 있어도 즐기자’다. 추우면 추울수록, 얼음이 얼면 얼수록 즐기면 되고, 즐길수록 몸은 더 따뜻해진다. 꽝꽝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즐기는 고기잡이 삼매경으로 추위를 날려 보자.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서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우리 땅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은 강줄기야말로 애·어른 구분 없는 훌륭한 사철 놀이터이자, 맛과 영양이 빼어난 민물고기들을 숨긴 보물창고였다. 옛사람들은 겨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물고기잡이를 즐기며 추위를 견뎠다.

전통썰매·눈썰매·스케이트 등 갖가지 겨울놀이를 즐길 수 있는 얼음판도 마련돼 있다.

자연 속에서 전통 방식으로 즐기는 고기잡이 체험도 가능하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강가에 모닥불을 피웠다. “불에 너무 가깝게 대지 말랬지. 다 타버리면 뭘 먹냐.” 주천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흔다섯 동갑내기들이 잡은 물고기를 굽고 있다.

주천리 주민들은 겨울이면 얼음구멍을 뚫고 작살질로 물고기를 잡는다.

박상준(왼쪽)씨가 낙엽송으로 만든 떡메로 얼음구멍을 뚫고 있다.

작살로 찍어 올린 물고기들.

석쇠에서 꺽지·동자개·모래무지·돌마자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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