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매거진 esc]
요절한 사진가 박건희 기리는 ‘박건희문화재단’,
작가 숨결 살아있는 ‘대안공간 건희’ 박건희문화재단의 전시 공간, ‘대안공간 건희’(서울 종로구 종로6가)는 생뚱맞은 곳에 있다.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중앙여관이라는 오래된 여관이 눈에 띄는데 그 앞에 덩그러니 있다. 낮은 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마당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돌아오지 않은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유골을 닮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한옥 방에서 걸린 몇 장의 사진들이 늦은 오후 이곳을 찾은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낡은 처마, 부서지는 담장 곳곳에 ‘박건희’란 이름이 유령처럼 떠돈다.
전시 공간 앞마당엔 쓸쓸한 바람소리가
이곳은 요절한 사진가 박건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사진 전문 문화재단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박씨와 함께 만들었던 공동 창업자 이재웅씨와 이택경씨가 사재를 털어 2001년에 만들었다. 올해로 8회를 맞는 다음작가상은 윤정미·김윤호 같은 젊은 사진가들을 배출하며 사진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사진가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는 이재웅씨의 의지가 반영되었다. 이런 이씨의 생각은 고교 동창이기도 했던 박건희씨의 생전의 모습에 닿아 있다.
사진가 박건희씨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이십대에 두 번의 개인전을 열 만큼 촉망받는 작가였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후에는 사이트에 버추얼 갤러리(virtual gallery)를 만들어 인터넷 사진의 세계를 열었고,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박씨는 창업한 지 1년 만에 심장마비로 28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교 동창으로 졸업 후에는 별 만남이 없던 이재웅씨와 박건희씨는 1993년 프랑스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한 사람은 인지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 사람은 자신의 예술적인 한계를 넘기 위해 파리를 찾았다. 당시 박건희씨는 사진 발표의 장으로서 인터넷 공간에 관심을 가졌다. 상호 소통이 이루어지는 열린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이미 인식할 만큼 그는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이재웅씨는 “매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사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으로 박씨를 기억한다. “사진이나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그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사진가 한정식을 비롯해 사진계 원로들이 아쉬워하는 박건희의 사진은 한마디로 침울하다. 우리는 그의 앵글 안에서 예리한 칼에 베인 섬뜩함과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심연을 본다. 34살에 타계한 가수 김정호의 노래를 듣고 사람들은 그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말하지만 박건희의 사진 속에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다. 선이 뭉개진 채 도시의 담들을 방황하는 검은 고양이는 기댈 곳 없는 박건희 자신이다. 군대에서 찍은 사진은 솜털보다 더 보드랍고 비눗방울만큼 여린 예술가의 고통이 처절하게 느껴져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고통에 동참하게 만든다. 그의 유작집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사진인데 붉은 피가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인 시리즈에 맞닿으면 파우스트의 지옥의 한가운데 앉아 있어 망자들의 서러움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 같아 섬뜩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결국 우리 모두도 죽음에 닿아 있다.
신인 사진가 지원으로 되살아난 작가 정신
박씨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사진평론가 박평종씨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청년으로 기억한다. 박씨는 그의 작품을 “암울한 세계에서 기쁨을 보려는 나태함을 이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농도 진한 암울함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한국 사진계에서 보지 못한 어둠의 미학을 그는 일궈냈다. 휘버스의 노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처럼 친구는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 사이로 떠오르”고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 떠나”갔지만 “흙 속에서 영원히” 빛나는 이유는 그의 사진과 그를 잇는 우리 시대 젊은 사진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작가상은 작품 공모를 통해 40살 이하의 젊은 신인 사진가들에게 3천만원의 지원금과 전시 기회를 제공한다. 5월18일부터 제8회 다음작가상을 공모할 예정이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작품사진 박건희문화재단 제공
작가 숨결 살아있는 ‘대안공간 건희’ 박건희문화재단의 전시 공간, ‘대안공간 건희’(서울 종로구 종로6가)는 생뚱맞은 곳에 있다.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중앙여관이라는 오래된 여관이 눈에 띄는데 그 앞에 덩그러니 있다. 낮은 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마당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돌아오지 않은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유골을 닮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한옥 방에서 걸린 몇 장의 사진들이 늦은 오후 이곳을 찾은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낡은 처마, 부서지는 담장 곳곳에 ‘박건희’란 이름이 유령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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