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울트라 설탕 대접 커피

등록 2009-03-25 21:36

울트라 설탕 대접 커피. 크룹스 제공
울트라 설탕 대접 커피. 크룹스 제공
[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너 고춧가루 커피 마셔 봤어?” 커피에 계핏가루를 뿌린 후 한 모금 마시려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커피에 고춧가루 한 스푼을 넣어 내려 마시니 알싸하니 맛이 괜찮다는 거다.

커피 취향만큼 다양한 게 또 있을까? 나의 커피 취향은 아메리카노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맛났던 커피는 내 취향과는 영 딴판인 커피다. 몇 년 전, 초겨울 어느 날 직장 동기와 나는 휴가 길에 올랐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쌓인 눈으로 빙판길로 변해 갔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친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고 차창 밖으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운행을 포기하고 마을로 차를 돌렸다. 마침 마당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대문을 잠그시던 할머니와 마주친 우리는 쭈뼛대며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했다. 할머니는 흔쾌히 우리를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셨다.

“가만… 촌이라 뭐 줄 게 있어야지. 도시 처녀들은 커피 좋아하지?” 잠시 후 할머니가 커피 대접을 들고 들어오셨다. 뜨거운 김이 훌훌 나는 커피 대접을 양손에 감싸 쥐고 몇 모금 들이켜자 추위와 피곤과 배고픔과 긴장이 한순간에 녹아 없어지고 온몸이 따뜻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가 있었다니! 나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냉면 국물을 들이켜듯 대접을 들고 커피를 다 마셨다.

짐작하건대 설탕과 커피크림이 밥숟가락으로 두세 스푼은 들어간, 진하고 달착지근한 다방 커피였다. 절대로 설탕을 넣어 마시지 않았던 나의 커피 취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달리 나는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고 이튿날,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할머니 몰래 이불 밑에 약간의 숙박비를 넣어두고 집을 나섰다. 외지인에게 선뜻 잠자리를 제공해 주신 할머니의 정이 담긴 울트라 설탕 대접 커피! 최고급 원두에 숙련된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가 그보다 더 맛있었을까?

오늘 오후엔 대접에 설탕을 잔뜩 넣은 할머니식 대접 커피나 한잔해야겠다. 그리고 고춧가루 커피를 마시는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너 대접 커피라고 먹어 봤니?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

오영근/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