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보다 스티로폼 박스
[매거진 esc] 지마켓과 함께하는 시골 밥상 공모전
아이들이 먹을 소박한 이 상을 날마다 차리는 일은 제 일상의 한 부분입니다. 혼자서 오래 생활했지만 사 먹는 음식에 익숙해 제대로 할 수 있는 음식 한 가지 없이 결혼하게 되었고, 주말부부를 하느라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연년생 자녀를 두고 휴직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늘 음식을 사 먹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달라진 환경에서 우울해하고 있을 때 시골에서 오신 부모님이 스티로폼 박스에 촘촘히 심은 파와 무를 주고 가셨습니다. 애들 키우기도 힘든데 파까지 키우라는 거냐며 짜증을 부렸지만 부모님께서는 “파는 독해서 대충 키워도 잘 살 거다”라고 하셨죠. 까맣게 잊고 있다 한참 뒤 보니 파는 겉 부분이 누렇게 말라 있었어요. 혹시나 하고 물을 주고 놔뒀더니 가운데에서 새로운 대가 올라오더군요. 그게 너무 신기해서 그때부터 한 가지씩 키우기 시작해 지금은 베란다 구석구석, 집 안 곳곳에 먹을거리를 키우고 있답니다.
채소를 키울 때는 화분보다 흰색 스티로폼 재활용 박스를 주로 이용하는데 밑에 구멍만 몇 개 뚫어 주면 그만입니다. 스티로폼 박스는 키우기 쉬운 대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단점이 있어, 베란다의 빨래 건조대를 최대한 내려 가벼운 건 위에 올려 두고 무거운 건 아래에 놓아 이중으로 키울 수 있게 했어요. 파는 가을쯤 심어 두면 겨우내 잘라 먹을 수 있고, 무는 밭이 아니라 크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무청을 말려서 시래기로 먹을 수 있었어요. 미나리는 햇빛이 드는 주방 창턱 같은 곳에서 물만 갈아 주면 쉽게 키울 수 있고 보기에도 좋아요.
주의할 건 토마토나 딸기 모종을 사서 키울 때 작은 열매라도 달려 있지 않은 건 열매를 보기 힘들답니다. 도시에서는 인공수정을 하지 않으면 열매가 안 열리는 걸 몰랐던 전 방울토마토가 열매는 맺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키만 커지는 걸 보고 ‘토마토가 맞나’ 의심했죠. 이젠 제법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를 돕겠다며 작은 물뿌리개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과 텃밭 가꾸는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권수경/서울 동작구 대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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