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한국방송·이하 <남자>)의 부제는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다. 다 큰 남자 일곱명이 모여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에 뛰어든다. 어떤 모습일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오른쪽 사진)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스스로를 “철이 덜 든 남자”라고 표현하는 신원호 피디(아래 사진)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신원호 피디가 털어놓는 아저씨의 귀여움
허약남 김태원, 반듯한 이정진, 식상한 주제도 맛깔나게 비벼내는 힘
정석희(이하 정) 발동 걸리기까지 시간 걸리는 게 있는가 하면 첫 회 딱 봐서 감이 오는 프로가 있다. <남자>는 첫 회에서 미션도 발표되기 전 이외수와 출연자들이 대화 나눌 때부터 재밌었다. 얼마나 부담을 갖고 시작했나?
신원호 피디(이하 원) 그냥 하던 엠시들과 했으면 덜 했을 텐데, 이경규라는 큰 카드를 갖고 움직이려니 부담이 컸다. 이렇게 회의 많이 하고 코너 들어간 건 처음이다.
빅카드 이경규 부담 커
신광호(이하 신) 이경규라는 카드가 반가웠나, 부담이었나?
원 반반이었다. 프로만 생각하면 그야말로 ‘생큐’지. 까탈스럽다는 소문에 대한 공포도 있었다. 어떻게 컨트롤하면서 진행해가야 하나 부담스러웠다. 지금 보면 왜 그런 소문이 났나 싶을 정도로 열려 있다.
정 김국진이랑 <붕어빵>을 하면서 이경규의 태도가 바뀐 것 같다. 이경규가 버럭 호통 치는 거 시청자들은 더 이상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확 변하기는 힘들 텐데 연륜 있는 이외수가 붙어서 초반 상쇄 효과가 있었다. 프로에서 미션의 멘토가 등장하는 장치가 좋았다.
원 이경규가 한국방송에 왔으면 달라진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경규가 1인자에서 2인자로 내려오는 포인트를 잡았다. 물론 <남자> 전체를 끌어가는 일을 안 보이게 하지만, 표면적으로 1인자는 아니라는 걸 출연자들이 다 받아들인 거다.
정 청혼과 병영 체험에서 두 번 멘토를 겪고 나니까 육아 체험 아이템에서 멘토였던 꼬마 사랑이에게도 다정하게 잘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른바 아저씨들 데리고 이렇게 프로를 만든다는 게 스스로 놀랍진 않은가?
원 내가 약간 반골 성향이 있다(웃음). 저쪽에서 아줌마 이야기하고, 여기저기 남자 엠시투성이인데 남자 이야기를 하는 데는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앞에 가면 나뿐 아니라 남자들이 다 약하고 귀여워진다. 주어진 역 때문에 강한 척들 하는 거지. 아저씨들도 굉장히 귀여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구수하고 칙칙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올 수 있는 거다. 이 한가운데는 이경규의 변신이 있다.
정 <남자>는 시청자 편에서 조목조목 보게 만든다. 미역국 끓이면서 조미료 넣으면 안 된다는 김국진이나, 아기 기저귀 못 가는 김성민 대신 직접 제작진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제작진이 융통성 있게 재미의 선을 지키는 것 같다.
원 아기 키우기 미션에선 처음엔 김성민이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기저귀를 못 갈더라. 애가 녹초가 될 거 같아서 지켜보다 올라가서 내가 직접 갈았다. 딴 프로에선 아기 키우기의 이쁜 모습만 주로 나가는 거 같다. 진짜 애 키우는 게 때론 지옥 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정 김성민의 재치가 돋보인다. 그야말로 김성민의 재발견이다.
원 그 정도인 줄은 나도 몰랐다. 재미있고 위트 있는 정도로만 알았지. ‘여걸 파이브’에 나왔을 때 시청률도 좋았고, 아줌마들도 좋아했다. 그걸 기억하고 만났는데 수다가 장난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큰일 났다! 어떻게 눌러야 하지? 했다. 뇌가 너무 해맑은 거지(웃음). 진짜 생각나는 대로 순수하게 막 던지는 사람이다. 요샌 한 방이라서, 누가 ‘비호감’이라 하면 확 궁지에 몰린다. 첫 방송 나가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했다. 한데 이런 캐릭터는 친구 중에 한 명쯤 있기 마련 아닌가?
신 있기는 마련인데, 그게 김성민일 줄은 몰랐던 거다(웃음). 처음엔 설정으로 잡은 건가 싶었다.
원 실제로 시청자들이 그렇게 보면 어쩌나 고민했다. ‘저건 설정’이라고 하면 믿기 힘들어지니까. 김성민은 연기면 연기, 예능이면 예능 뭐든 열심히 한다. “형, 지금 이 모냥으로 보이는데 멀쩡한 모습, 드라마 연기톤으로 보여주면 안 될까?” 하면 이것만은 거부한다. 연기에 대한 철학이 투철한 거다.
김성민, 혼자 <해안선> 찍니?
신 해병대 병영 체험에서도 혼자 박수치고 왜 저러나 싶었다.
원 진짜 해병대를 가고 싶었다고 하더라.
정 정말 진흙탕에서 필사적이었다.
원 혼자 <해안선> 찍고 있더라구(웃음).
신 김국진과 이윤석은 버라이어티 웃음 포인트를 잘 안다. 뭔가 터진다 싶으면 때론 밀어보려는 게 보여서 조금 부자연스럽게도 느껴진다. 김태원은 정말 본모습이 나오더라.
원 정말 센 캐릭터다. 사실 현장에선 매번 이번 주 태원이 형 또 안 보이겠다 싶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구석에서 한마디씩 던진 걸 긁어모으다 보면 너무 재밌다.
정 다 남자들인데 촬영 분위기는 어떤가?
원 동성끼리 모아놓으면 자기 모습을 훨씬 편하게 보여주는 게 있다. 아저씨들끼리 서로 정말 좋아한다. 태원이 형 없으면 경규 형이 자꾸 찾는다.
정 캐릭터들이 있는데 트렌디한 윤형빈이 오히려 어정쩡하다.
원 멤버를 에피소드 중심에 세워보는 걸 생각하고 있다. 지금 억지로 일곱명의 캐릭터를 잡아주려는 의도는 없다. 경규 형과 국진이 형은 워낙 자연스럽고. 김성민은 원래 ‘그 모냥’이니까(웃음). 어찌 보면 제작진이 방관하는 게 있다.
신 굳이 <무한도전>과 비교하자면, 거기선 얄짤없이 미션을 수행하는 것에 반해 <남자>에서 미션은 다소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미션을 좀더 격하게 할 생각은 없나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원 태원이 형만 해도 운동이라는 걸 전혀 안 해서 해병대 체험에서 뛰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다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못할 놈은 못하고 할 놈은 해도 되지 않나 싶다. 방만하게 간다.
정 이정진의 느낌도 좋다. 최선을 다하잖아. 금연 미션 때도 끊을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던데. 자기 몫을 따박따박한다.
원 버라이어티에 물들지 않아서 좋다. 금연하라는 미션에 다들 흥분하는데 이 친구는 견딜 수 있다고 하더라. 못 견디는 척해! 주문할 수도 없고 ‘정진이 어쩌려고 하지?’ 했는데, 오히려 신선했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갔을 때 안 보던 느낌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엔 계획대로 1, 2가 가면 3도 연출대로 가야지 했다. 그런데 이젠 1, 2가 계획대로 가면 3이 출연자들 멋대로 갔을 때 더 자연스러운 맛이 나온다는 걸 안다.
금연, 육아체험, 해병대 체험 등 일곱 남자들의 못 말리는 도전기를 보여주는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한국방송 제공
신 아직 초반이지만 반응은 어떤가? 이런 반응에 얼마나 영향 받는지도 궁금한데.
원 성과로 보자면 아직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했던 페이스보다 치고 나온 게 있다. 어떤 촬영은 힘들게 끌고 가야 하는 게 있고, 때론 끌려가는 게 있는데, 지금 우린 서로 재밌어한다.
정 출연자들 본인이 해보고 싶은 걸 나눠도 재밌을 것 같다. 직접 그들의 리스트를 채우고 지워가 보는 거다.
원 사실 두 번째 결혼이나, 꽃중년 아이템은 다 남성성을 허물어뜨리는 쪽에 가깝다. 준비하면서 시중에 나온 ‘죽기 전에, 40세 전에, 30세 전에 꼭 해봐야 할’이란 제목을 단 책들을 뒤져봤다. 들춰보면 이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봐야 하는 걸 적어 놨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자>는 꼭 해봐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건강한 가학’ 정도를 생각했다. 소원에 가까운 버킷 리스트(bucket list)와는 그런 점에서 다른 거다. 여기선 해볼 만한 일인데 서로 해보면 괴로운 거! 그래도 재밌는 걸 한다.
건강한 가학으로 괴롭지만 즐겁게
정 <남자>는 어디선가 했던 아이템도 식상하지 않게 다루는 것 같다. 금연이나 군대 체험도 예능에서 많이 본 건데 <남자>는 출연자들의 인간미에 주목해서 봤다.
원 우리가 완전 다르게 만드는 건 아닐 거다. 금연침 맞는 건 남들이 수천 번 했던 건데, 이 아저씨들이 하면 다른 게 나오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은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다. 앞으로는 아저씨들의 판타지를 동화 같은 느낌으로 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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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호 피디가 말하는
“이 남자들 고생 좀 했다” ‘금연’편
“금연 미션을 비밀로 하다 딱 발표했을 때, 다들 ‘머엉’했다. 리액션이 최고여서 녹화 재밌겠다 싶었는데, 다음날 오후 6~7시간을 금단 현상에 괴로워하더라. 웃길 생각은 아무도 안 하고(웃음). 녹화 끝난 후 이렇게 고생했는데, 진짜 금연하겠다던 남자들 결국엔 다시 피우더라.”
■ 신원호 피디가 말하는
“이 남자 좀 의외였다”
‘남자, 그리고 두 번 결혼하기’편
“태원이 형이 머뭇거릴 줄 알았는데 사랑을 적극 표현하는데 그걸 보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못한다고 해야 방송에선 재밌을 텐데 아, 왜 우실까? 싶었던 거지. 이 남자 의외의 사랑 표현에 시청자들 닭살 아닐까 걱정했지만 많은 분들이 태원이 형 부부의 히스토리에 감동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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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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