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까말’ ‘흠좀무’ ‘지못미’…인터넷 폐인용어의 생로병사.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솔까말’ ‘흠좀무’ ‘지못미’…인터넷 폐인용어의 생로병사
폐인용어, 즉 인터넷 조어는 통신용어이자 유행어다. “솔까말, 흠좀무.” 이 알쏭달쏭한 여섯 글자에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라는 긴 속뜻이 축약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니, 빨리 집으로 내려오라”를 “부친 위독, 급래”로 줄여 타전하던 과거 전보 문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과 수고로움을 덜겠다는 경제적 고려는, 어느덧 말 줄임을 넘어 ‘ㄱㅅ(감사)’, ‘ㅇㅇ(응)’ 등 초성만으로도 능히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폐인용어들은 단지 통신상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솔까말’이니 ‘지못미’ 식의 축약어들은 한편으로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나 ‘UB통신’(유언비어 통신)과 같은 이른바 쌍팔년도 유행어들과 궤를 같이한다. 과거에는 이 유행어들이 ‘은어’라는 이름으로 세간에서만 통용될 뿐이었다면 인터넷 시대의 조어들은 시나브로 온/오프라인 매체의 벽을 허물고 있다.
폐인용어의 속성에 대하여 언어사회학자들은 신속성(Speedy), 완화(Softening), 전문화(Specialized)의 3S 법칙을 거론한다. ‘신속성’이란 바로 통신용어의 속성. ‘완화’는 비속어의 소통을 위해 표현을 부드럽게 바꾸는 행태를 말한다. 여성의 가슴을 ‘슴가’로, 에로틱한 표현을 통칭하여 ‘므흣’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문화’는 한때 특정 분야에서만 통용되던 단어가 점차 대중적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시사문제에도 게임용어가
2009년 현재 웹을 풍미하고 있는 인터넷 조어들의 트렌드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전문적인 어휘들의 증가 추세를 꼽을 수 있다. 커뮤니티 게시판, 포털의 뉴스 댓글, 미니홈피, 블로그 등으로 개인이 글을 남길 수 있는 인터넷상의 통로들이 확대된 후 특정 동호회에서 쓰이던 낱말들이 다른 경로로 유입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덕분에 이제 누리꾼들은 정치 시사 문제를 논하면서도 온라인 게임 용어인 ‘팀킬’(자기편을 해하는 행위)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쓰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 용어였던 ‘츤데레’(겉으로는 쌀쌀맞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문화의 추세로 점차 장벽이 사라져 가는 온라인의 언어들은 국경 또한 넘나든다. 즉 외래어의 비중이나 외국에서 유입된 인터넷 조어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 또한 최근 폐인용어들의 주목할 만한 동향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앞선 보기의 ‘츤데레’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려진 일본어가 고스란히 쓰이는 경우도 많고, ‘OTL’(좌절)이나 ‘뉴비’(신입회원)와 같이 외국의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텍스티콘(자판의 텍스트로 만든 이모티콘)이나 조어도 자유롭게 활용되고 있다.
언어의 사회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폐인용어들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2000년대 초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디시 어’들, ‘아’이나 ‘뷁’과 같은 의미 불명의 외계어들은 어느덧 웹상에서 과거의 언어들로 치부된다.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다는 저주’라는 뜻의 단어 ‘방법’도 이제 쓰는 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회화체 어미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2000년대 중반의 ‘하삼체’를 어설프게 썼다가는 노인네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소멸되어 가는 폐인용어들의 예라면(사실 ‘폐인’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원래의 의미를 잃거나 용법 자체가 달라진 사례도 있다. 게시물 내용에 첨부하는 이미지 파일을 뜻하는 ‘짤방’은 원래 ‘짤림(잘림) 방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 인사이드’의 게시판 격인 ‘갤러리’에는 반드시 게시물에 이미지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 게시물은 삭제당했다. ‘글이 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시 인사이드 이용자들은 게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함께 올려야 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짤방’은 이미지 파일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그 의미가 굳어졌다.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한국의 인터넷 역사 속에서, 폐인용어들도 어느덧 그 나름의 독자적인 흐름을 가지게 된 셈이다. 빨라지는 전파속도, 흐려지는 온·오프라인 경계
이제 폐인용어들은 인터넷에만 갇히지 않는다. 웹상에서 널리 통용되는 낱말의 경우, 아주 짧은 시차만 둔 채로 오프라인의 매체에서 활용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오프라인 매체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주력으로 삼기 시작한 이후부터 본격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온라인 어휘의 오프라인 유입 과정에서는 곡해와 와전 등 적지 않은 서걱거림이 존재한다. 경기 중 사고에 대해 분노한 특정 프로야구팀의 팬들을 향해 ‘열폭’이라는 인터넷 조어를 기사의 제목으로 뽑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던 어느 일간지의 경우가 그 보기다. 해당 기자는 ‘열폭’을 ‘분노 폭발’의 의미로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원뜻은 ‘열등감 폭발’이었다. 이런 곡해의 밑바탕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표준어와 은어 사이에 선을 긋고 직시하지 않으려 했던 낡은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다. 온라인 문화가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 이제는 그 반쪽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321@empal.com
인터넷 폐인용어의 생로병사.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언어의 사회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폐인용어들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2000년대 초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디시 어’들, ‘아’이나 ‘뷁’과 같은 의미 불명의 외계어들은 어느덧 웹상에서 과거의 언어들로 치부된다.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다는 저주’라는 뜻의 단어 ‘방법’도 이제 쓰는 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회화체 어미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2000년대 중반의 ‘하삼체’를 어설프게 썼다가는 노인네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소멸되어 가는 폐인용어들의 예라면(사실 ‘폐인’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원래의 의미를 잃거나 용법 자체가 달라진 사례도 있다. 게시물 내용에 첨부하는 이미지 파일을 뜻하는 ‘짤방’은 원래 ‘짤림(잘림) 방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 인사이드’의 게시판 격인 ‘갤러리’에는 반드시 게시물에 이미지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 게시물은 삭제당했다. ‘글이 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시 인사이드 이용자들은 게시물에 사진이나 그림을 함께 올려야 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짤방’은 이미지 파일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그 의미가 굳어졌다.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한국의 인터넷 역사 속에서, 폐인용어들도 어느덧 그 나름의 독자적인 흐름을 가지게 된 셈이다. 빨라지는 전파속도, 흐려지는 온·오프라인 경계
빨라지는 전파속도, 흐려지는 온·오프라인 경계.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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