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자전거 전문숍 ‘르벨로’.
[매거진 esc]
프레임·기능·재질에 따라 진화하는 자전거 디자인의 세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 스트라이다 자전거의 이 자신만만한 광고 문구는 자전거를 향한 세간의 낭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세 바퀴 달린 유년의 추억부터 첫사랑의 설렘, 새벽에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자전거는 고급 세단 승용차가 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남긴다. 도형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평가받는 삼각형의 탈것은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걸까?
구치·벤츠·앙드레 김 자전거까지 디자인 붐
최근 자전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구가 확대되면서, 자전거 디자인 관련 이슈도 다양해지고 있다. 성능에 민감한 마니아층의 경우는 다르지만 최근 대중에게 자전거 디자인은 하나의 패션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외국 유명 브랜드인 샤넬·구치·벤츠가 자전거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하나같이 ‘럭셔리’, ‘명품’ 패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초콜릿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구치 자전거엔 ‘GG’ 로고가 빛나고, 샤넬 자전거엔 샤넬백이 뒷부분에 달려 있어 천만원대를 호가한다. 모두 자전거 전문 브랜드가 아닌 만큼 운송수단으로서의 세부적인 성능과 프레임 대신,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자전거에 투영했다. 베엠베(BMW)는 산악경주용, 투어링, 도시형 크루즈형 자전거 등 기능을 세분화해 자동차 업체가 놓치기 쉬운 친환경적 이미지를 보완했다.
국내 자전거 기업인 ‘삼천리 자전거’가 최근 출시한 ‘앙드레 김 자전거’도 자전거 디자인의 붐을 보여주는 예다. ‘앙드레 김 자전거’는 오렌지 꽃무늬, 아이스크림 분홍색 꽃무늬, 짙은 색 용무늬가 프레임과 안장, 핸들 그립에 올라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천리 자전거’ 쪽은 “앙드레 김의 독창적이고 화려한 디자인이 만나 자전거를 운동용품이나 놀이기구에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말했다. 속옷에서 교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품들을 디자인한 앙드레 김의 독자적(!) 디자인인 꽃과 용무늬, 밝은 색채감각이 낯설지 않다.
최근 일부 자전거 디자인이 ‘패션 자전거’라는 애칭을 붙일 만큼 소비 취향을 모호하게 내세운 반면, 자전거 마니아로 알려진 반이정 미술평론가의 디자인에 대한 견해는 분명하다. 그는 “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전거는 내 몸과 함께 동력을 가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굉장한 쾌감을 준다. 내 몸과 자전거가 함께 구동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내 자전거 디자인의 상황은 너무 몰취향하다. 저작권이 있는 스트라이다를 베껴 디자인한 짝퉁도 넘쳐날 뿐 아니라, 앙드레 김이라는 유명인 이름만 붙인다고 괜찮은 자전거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전거 생활>의 한동옥 편집장도 “최근 국내에서 관심받는 일부 자전거 디자인은 자전거에 옷을 입히거나 잠시 화장하는 식의 효과에 불과하다. 자전거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재질과 프레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눈에 띄는 로고와 색상이 전부가 아니라 철, 알루미늄을 지나 카본이 재질로 쓰이면서 기하학적인 프레임이 늘고 있는 맥락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젊은 라이더들이 자발적으로 튜닝(tuning)을 한 자전거에서도 개성이 묻어난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수입 자전거 매장인 ‘르벨로’에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안장과 그립, 자전거 단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 홍대 앞 등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픽시 자전거(Fixed Gear Bike)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기어가 고정된 픽시 자전거는 브레이크와 케이블을 없앨 수 있어서 미니멀리즘한 자전거 몸통만 남는다. 심플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는 스스로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더욱 매혹적이다. 자전거의 미적 평가가 시각적 형태에 대한 감상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전거 디자인을 자전거 기능과 뗄 수 없다는 건 디자이너들에겐 하나의 불문율이다. ‘몰턴’ 등 외국 자전거 디자인은 기본 프로토타입을 차츰 발전시키고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디자인적 가치를 다양한 기능으로 확대시킨다. 100% 수작업으로 매년 25대가량의 소량만 생산되는 ‘앨릭스 몰턴’은 영국인 몰턴 박사의 섬세한 프레임이 공예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발랄한 하늘색의 ‘비에스엠 아르9’(BSM R9)도 “달리는 느낌은 스포츠카, 사용 용이성은 미니벨로같이”라는 몰턴 박사의 사상을 기초로 만들어진 미니벨로다. 환경 테스트를 거친 이탈리아의 ‘아비치’ 자전거는 ‘브룩스’ 소가죽 안장을 사용했고 그립 역시 생고무를 쓰는 등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의 최소화를 보여준다. 덴마크의 ‘트리오바이크’는 아이들과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가족용 제품이다. 앞부분을 떼고 붙이기 손쉽게 해, 자전거와 유모차로 수시로 분리할 수 있다.
기능 다양화 리어카·유모차와도 결합
국내외 디자인 업계에서도 자전거 디자인은 뜨거운 이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레드돗’(reddot) 디자인 경연대회 운송기기 부문에서 오너러블(honorable) 수상을 한 ‘발트마이스터 바이크’는 기존 자전거 디자인의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없앴다. 기본 프레임을 나무로 수제 제작해 가죽, 티타늄 재질이 세련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 ‘아이에프(iF) 2009 레저/라이프 스타일’ 부문 골드를 수상한 ‘퍼시픽 사이클’도 자전거가 접히면서 자동으로 바퀴가 한데 모아지도록 설계했다. 최근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에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상을 수상한 조인수(청주대 산업디자인과 4)씨의 ‘농촌지역을 위한 신개념 이동수단’도 자전거 형태를 빌려오되 화물칸으로 쓸 수 있는 리어카를 자전거 뒤편에 결합시켰다. 젊은 디자이너인 조인수씨는 “자전거 앞부분을 접어 리어카처럼 끌고 다니면서 물건을 저장하면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단 데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에 출품된 ‘농촌지역을 위한 신개념 이동수단’.(한국디자인진흥원 제공)
왼쪽부터 견고한 프레임으로 유명한 ‘몰턴 TSR20’.(르벨로 제공)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바이오메가MN’.(르벨로 제공) 친환경 자전거로 알려진 ‘아비치’.(르벨로 제공)
왼쪽부터 덴마크의 ‘트리오바이크’.(르벨로 제공) ‘BMW 투어링 바이크’.(BMW 제공) ‘비에스엠 아르9’ 자전거.(르벨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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