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퀸스데이 등 여심 사로잡은 2009 프로야구장 신풍속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여인천하·퀸스데이 등 여심 사로잡은 2009 프로야구장 신풍속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손종혁(41)씨는 올해 모처럼 야구장을 찾았다. 2000년 이후 성적이 부진하여 잠시 등을 돌렸던 고향 연고팀이 최근 들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 그런데 대학 졸업 이후 15년여 만에 다시 찾은 야구장은 손씨가 예전에 알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별로 많지도 않은 관중들이 뿔뿔이 흩어져 앉아 몰래 들여온 소주를 마시며 선수들에게 욕이 섞인 고함을 내지르던 과거의 풍경은 이제 없었다. 평일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응원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젊은 여성 관중들이 절반 가까이 들어차 있는 풍경에 찬탄을 금치 못한 손씨. 야구장에서 데이트하자고 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 맞았던 학창시절의 기억이 격세지감을 불러온 까닭이다. 도대체 그사이 야구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으니 올해로 28년째. 그간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80년대에 태어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 야구장을 처음 찾았던 이들도 어느덧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들이 구매력을 가지면서 프로야구 관중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첫째 분석이다.
지표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200만명대를 유지하던 프로야구 관중 수가 갑자기 늘어난 때가 2005년으로, 그해의 관중 수는 총 338만명. 야구위 홍보팀의 이진형 부장은 “바로 그 무렵부터 여성팬들의 유입도 늘었고 응원문화 또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2006년까지 300만 수준을 유지하던 관중 수는 2007년에 400만명을 돌파했고, 마침내 작년에는 526만명이 들어 1995년 이래 13년 만에 프로야구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시즌이 3분의 2가량 진행된 2009년 7월12일 현재까지 347만명이 경기장을 찾아 올해도 500만 관중은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수유실·놀이기구까지… “여성 관중 40% 넘을 것”
각 구단의 인식 변화도 관중 문화 변화에 한몫했다. 2000년 엘지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가 각각 자신들의 홈경기장인 잠실구장과 대전 한밭구장에 대한 위탁관리 계약을 해당 자치단체와 맺었다. 경기가 있는 날마다 일일 임대의 형태로 구장을 빌려 써야 했던 과거와 달리 각 구단이 구장을 장기 임대하여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경기장 위탁관리 계약을 맺은 구단들은 관중을 한명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관중석을 안락하게 바꾸었고, 수유실과 놀이기구 등 가족 단위 관중들을 위한 부대시설도 새롭게 만들었으며,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구단 상품 매장 등 상업시설들도 입점시켰다. 뒤이어 인천 연고의 에스케이 와이번스와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도 각각 인천 문학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에 대한 위탁관리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경기장 위탁관리가 구단의 프로야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였고, 그렇게 마련된 질 좋은 서비스는 이전까지 ‘난폭하고 불결한 곳’으로 인식되던 야구장을 새로운 스포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경기장의 변화와 관중의 세대교체 시기가 맞아떨어진 셈. 특히 경기장과 서비스의 변화는 여성 관중들의 폭발적인 증가세에 크게 기여했다. 엘지 트윈스 마케팅팀의 이한승씨는 “예전에 여성 관중들은 주로 남자들 손에 이끌려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끼리 모여서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관중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응답지 같은 것만 봐도 여성 관중이 40%는 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개인 피켓·선수 응원가 등 창의적 응원 봇물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가 젊은 여성 관중의 증가로 이어졌고 그 증가세는 구단의 재투자라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 특히 올해 들어 여성 팬만을 위한 각 구단의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다. 두산 베어스는 매월 홈경기가 있는 특정 목요일을 ‘퀸스데이’로 지정해 여성 관중 입장권 할인 혜택을 비롯해 그날만은 여성 팬들을 위한 이벤트들을 제공한다. 한화 이글스도 ‘여인천하’라는 별칭이 붙은 여성 관중의 날에는 모든 여성 관객에게 협찬사의 제품을 무료로 주고 있으며 엘지 트윈스 또한 여성만을 위한 그라운드 초청 이벤트를 열고 있다.
여성 관중의 유입과 함께 개인이 만든 피켓, 펼침막 응원 등 90년대까지의 야구장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창의적인 응원도 활발해졌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을 때면 야유가 쏟아지거나 심지어 경기장에 오물을 던지던 불쾌한 광경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승패와는 관계없이 각 구단과 선수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맥주 한잔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야구장을 떠나는 것이 현장에서 야구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수 응원가 합창 등 열정적으로 변모한 관중들의 응원문화는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 강민호씨는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개사한 강민호 응원가를 들으며 타석에 들어설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운을 느낀다”고 말한다. 몇몇 노후화된 구장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렇듯 개선되어가고 있는 시설과 서비스, 달라진 관중문화, 그리고 그에 힘입어 해마다 향상된 기량으로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치고 있는 각 팀의 모습이라면 꿈이라 불리던 600만 관중 시대도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야구장으로 피서가자
여인천하·퀸스데이 등 여심 사로잡은 2009 프로야구장 신풍속도
각 구단의 인식 변화도 관중 문화 변화에 한몫했다. 2000년 엘지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가 각각 자신들의 홈경기장인 잠실구장과 대전 한밭구장에 대한 위탁관리 계약을 해당 자치단체와 맺었다. 경기가 있는 날마다 일일 임대의 형태로 구장을 빌려 써야 했던 과거와 달리 각 구단이 구장을 장기 임대하여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경기장 위탁관리 계약을 맺은 구단들은 관중을 한명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관중석을 안락하게 바꾸었고, 수유실과 놀이기구 등 가족 단위 관중들을 위한 부대시설도 새롭게 만들었으며,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구단 상품 매장 등 상업시설들도 입점시켰다. 뒤이어 인천 연고의 에스케이 와이번스와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도 각각 인천 문학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에 대한 위탁관리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경기장 위탁관리가 구단의 프로야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였고, 그렇게 마련된 질 좋은 서비스는 이전까지 ‘난폭하고 불결한 곳’으로 인식되던 야구장을 새로운 스포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말하자면 경기장의 변화와 관중의 세대교체 시기가 맞아떨어진 셈. 특히 경기장과 서비스의 변화는 여성 관중들의 폭발적인 증가세에 크게 기여했다. 엘지 트윈스 마케팅팀의 이한승씨는 “예전에 여성 관중들은 주로 남자들 손에 이끌려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끼리 모여서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관중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응답지 같은 것만 봐도 여성 관중이 40%는 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개인 피켓·선수 응원가 등 창의적 응원 봇물
야구장으로 피서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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