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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이 드라마의 유산

등록 2009-07-29 18:44수정 2009-08-01 10:43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지난 일요일 <찬란한 유산>(에스비에스)이 최고시청률 47.1%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독한 캐릭터와 신들린 연기는 덜했지만 이 드라마를 만나 행복해하는 연기자들과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끝을 풍성하게 했다. <10 아시아> (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찬란한 유산>을 분석했다.

47% 시청률이 부끄럽지 않았던 ‘찬란한 유산’의 매력
가족·사회 구성원 돌아보게 하는 가장 상식적인 드라마

백은하(이하 백) 시청률 50%의 시대는 갔다고들 한다. 대박 드라마도 30% 정도의 시청률이 나오는데 <찬란한 유산>은 47%의 시청률이 나왔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공헌자이자 수혜자는 이승기(선우환 역)다. <소문난 칠공주>의 연기를 제외하곤 이승기를 <1박2일>의 ‘허당 승기’ 혹은 예능인으로 생각했지, 그가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자질이나 그 이상의 인간적인 호감과 매력을 간과한 면이 있었다. <1박2일>에 동시 출연하며 만들어낸 시너지가 <찬유>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박2일>에서 선우환의 연기를 스스로 패러디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찬유>의 캐릭터가 본인에게 있는 모습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어 보였다.

최지은(이하 최) 사실 <찬유>라는 작품에 기대가 크지 않았던 건 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고, 설정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아서였다. 의붓자매의 시샘과 음모는 몇 년 주기로 한 번씩 나오는 아이템이다. 집안이 망하고 캔디풍 여자 주인공에 부잣집 도련님이면서 약간 구준표 같은,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남자 주인공까지. 그렇게 새로운 건 없었다.

키다리 아저씨 나오고.

막장 설정이 없는 ‘착한 드라마’로 호평받은 <찬란한 유산>(에스비에스).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막장 설정이 없는 ‘착한 드라마’로 호평받은 <찬란한 유산>(에스비에스).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캔디풍 여주인공에 구준표 닮은 남주인공까지

겉으로 보면 클리셰가 많은 드라마였다. 초반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점점 <찬유>를 본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착한 드라마라고 미화하는 경향도 있었다. 사실 <찬유>가 대단히 진일보한 드라마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렇게 착한 드라마라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정 면에서 기존 드라마들의 정석들, 이를테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배치들을 안전하게 해놓은 면도 컸다. 그간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보는 이유를 잊게 하는 드라마였다면 <찬유>는 시청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드라마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식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이승기·한효주 효과가 더해지면서 실질적인 시청률 상승이 가능했다.

<찬유>를 쓴 소현경 작가는 장르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이야기를 막 쓰지 않는 작가다. 최소한의 상식을 어떤 식으로 녹여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는 작가다. <찬유> 안에서도 장애인 문제, 재혼 가정 문제, 부잣집 할머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 방침, 상속의 문제 등이 나왔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드라마 속에 잘 뿌려진 것 같다. 기존 드라마에서 할머니란 존재는 누군가의 결혼을 반대하는 식의 비합리적인 존재였는데, <찬유>에선 남자 어른이 없는 대신에 할머니가 집안의 어른으로서 냉철하고 올바른 판단을 했다.

이 드라마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다. 은성이 아버지도 박탈된 자격과 위치를 은성(한효주)이 다시 복원시켜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고. 선우환도 할머니의 총결정 아니면 은성의 어떤 선동 전에는 자기 의지라는 게 거의 없었던 캐릭터다. 주체적인 남자는 집사님 캐릭터 정도일까?(웃음)

집사님이 남자 중의 남자다.

집사님이 자기의 의지를 끝까지 갖고 간다. 구조적인 면에서는 회장님 아래에서 모든 걸 서포트하는 존재지만. <찬유>에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역이 있었다. 남자들보다 현명하게 상황 파악을 하면서 덜 세속적인 지점을 할머니가 보여줬고. 모든 드라마에서 차용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굉장히 적절하게, 영리하게 배치한 면이 있다. 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찾자면, 대사나 휘몰아쳐 가는 연출력보다는 영리한 배치에서 오는 구성력이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접근이 어렵지 않아서 이만큼의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 거다.

편성이라는 게 무시 못할 부분인 건 확실하다. 주말에 맞는 이야기가 있고, 예능도 월요일용, 수요일용 다르다. <찬유>는 이승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승기 볼 수 있고, 집사님과 유지인의 로맨스가 나오는 와중에 회사를 뺏으려는 음모도 전개되고. 로맨스에 약간의 서스펜스와 약간의 신파 같은 것들까지 교묘하게 배치를 해놓았다. 시청률이 높으려면 부동층이 있어야 하는데, 이승기라는 카드로 <1박2일> 팬도 잡을 수 있었다.

<찬란한 유산>(에스비에스).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찬란한 유산>(에스비에스).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한효주는 그간 참 잘될 것 같은데 잘 안되는 케이스였다. <봄의 왈츠>에서는 한류 여스타자리를 꿰찰 수 있는 태생적인 이익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도 극중 존재감도 약했다. 그 이후 독립영화라든지 작고 큰 작품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나왔다. 이 친구가 매력이 있구나 생각했던 게 대한항공 광고 시에프 촬영 과정을 다큐로 만든 걸 본 이후였다. 청순하고, 좀 작고, 얌전하게만 생각했는데 다큐에서는 실제로 명랑하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괜찮은 본성이 보였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명랑함과, 남자들이 봤을 때 딱 정신줄 놓게 만들면서 꼭 한번 사귀어보고 싶은 느낌! 은성이가 극단적으로 자기 감성을 드러내야 하는 게 있었는데, 외모는 풋풋하지만, 실제로는 4~5년 연기 경력의 내공이 발휘됐다. 선우환이 극중 맥거핀 같은 거라면,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건 고은성인 것 같았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명랑함

막판 로맨스들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행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캐릭터와 연기가 기본적으로 받쳐줘서 설득력 있었다. 이승기가 <소문난 칠공주>에서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또 이런 역이면 부잣집 철부지에 막무가내 아들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선우환 안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까 믿음이 생겼다. 캔디 캐릭터는 너무 진부하고 다 써버린 캐릭터인데 한효주가 연기를 하니까 때 지났다거나 부담스러운 느낌도 없었다. 준세와 선우환을 ‘어장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았던 건 은성 캐릭터와 본인의 매력 때문이었다.

‘어장 관리’하고 있을 때 준세가 보여줬던 공명정대함이랄까. 이런 게 은성을 악녀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미 준세는 자기 인생에 대한 기둥이 박혀 있어서 어른스러운 남자의 느낌이 있었다.

배수빈도 <찬유>를 통해 포지셔닝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표 집사도 그렇고 점장님 역의 백승현도 여기저기 조연으로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연기를 보여줬다. 문채원도 요즘 보기 힘든 통통해 보이는 볼이 참 매력이다. 엄마랑 어렵게 살았고 사연도 많은, 거짓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는 전형적인 악녀인데 이 사람이 이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제대로 된 어른, 이런 할머니가 필요해

결과론적으로 ‘배우들이 좋았어’란 말을 하는데 이건 시청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어도 들었을 거다. 각각의 캐릭터가 배우들에게 좋은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엄격한 아줌마와 할머니 역을 했던 반효정은 여기서도 대쪽 같은 여장부, 사업가로서 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로 등장했다. 은성이를 대할 때의 느낌은 왜 저런 애가 우리 집에는 없나 하는 눈빛이었고 환이는 엄격하게 가르치려 했고. 제대로 된 어른의 느낌이 있었다. 사소한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노력은 아무한테서나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외모적으로나 지금까지의 커리어에서 반듯한 이미지를 지켜온 반효정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장점이었다. 한 몸으로 자웅동체, 이상적인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다. 김미숙은 <사랑해 울지마>에서 다운그레이드된 역을 맡긴 했지만 늘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찬유>에선 모든 계략을 만들고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악녀였다.

드라마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은 김미숙의 모습과 흡사하다. 남을 속여서라도 돈을 얻고, 딸내미는 부잣집에 시집보내야겠고. 김미숙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게 더 재밌었다. 좀더 우악스럽고 악역을 맡았던 분들이 했다면 그런 효과가 나진 않았을 거다.

김미숙과 문채원은 신데렐라 계모다. <찬유> 속의 여성 페어는 서로 많이 닮아 있다. 문채원과 김미숙이 그렇고, 유지인과 유지인 딸이 그렇고, 할머니와 은성이가 그랬다. 페어가 갖고 있던 유사성이 신구세대의 특성을 보여줬다. 마지막 회는 이상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런 결말이 이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은 밑바닥이어서 씁쓸한 마음도 드는 일요일이었다.

이렇게 끝나서 좋았다

이별 장소

“은성과 선우환이 헤어지는 장소가 공항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 좋았다. 많은 엔딩신들이 쓸데없이 공항에서 엇갈리고 하는데, <찬유>에서는 버스에서 뛰어내리면서 바로 만나주는 이 시원시원함! 이게 마지막회의 미덕이었다.”(백은하)

승미와 선우환의 동침

“승미가 선우환과 술 마신 뒤 하룻밤 잔 다음에 책임지라고 소리치지 않은 것. 정말 다행이었다. 극중 승미 모녀가 했던 일을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한데, 최소한 그러지 않는 품위를 지켜서 좋았다!”(최지은)

이렇게 끝나서 아쉬웠다

유산 상속

“문제는 대한민국 그 누구도 유산 상속을 <찬유>처럼 이렇게는 안 해준다는 거. 장 회장 할머니 같은 회장님은 없다는 씁쓸함. 선우환은 공채 원서를 내는데 누구 아들은 낙하산을 탄다는 현실.”(최지은)

해피엔딩

“이상적으로 끝나고 나니, 막상 이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이 아쉽다.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했던, 즐겁고도 씁쓸했던 해피엔딩.”(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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