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과학수사 요원이 찍는 범죄사진의 모든 것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과학수사 요원이 찍는 범죄사진의 모든 것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과학수사 요원이 찍는 범죄사진의 모든 것
1983년 9월21일 미국 네브래스카 벨뷰. 바스락 소리도 저승사자의 자장가처럼 들릴 만큼 음침한 숲. 묶인 상태로 사지가 절단된 13살 대니 조 에벌이 발견되었다. 12월2일 13살 크리스토퍼 월든도 같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연쇄살인범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추적 끝에 용의자 존 주버트를 잡았다. 범행을 부인하던 주버트는 경찰이 내미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무너졌다. 에벌을 묶었던 끈이었다. 주버트의 캠핑용구에 같은 끈이 있었다. 이 밧줄은 한국에 있는 매우 희귀한 끈이었다.
1996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 여자가 끈에 묶인 채 머리가 찢어져 있었다. 동작경찰서 감식반이 까만색 007 가방을 들고 출동했다. 감식반 경찰들은 사진부터 찍었다. 문고리, 방 안, 피해자의 몸, 묶인 끈 등. 옥상에서 피해자를 묶었던 끈과 유사한 빨랫줄을 발견하고 찍는다. 두 사진을 확대해서 그 자국을 비교했더니 정확히 일치했다. 그 사진들은 범인 검거에 중요한 몫을 했다.
경찰들은 범죄현장에 도착하면 사진부터 찍는다. 이들은 과학수사요원들이다. 미국 드라마 의 길 그리섬이나 맥 테일러 반장들이다. 이들이 현장을 찍고 감식을 끝내기 전엔 그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다. 증거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안 된다. 21세기는 과학수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범죄사진(forensic photography, crime photography)은 과학수사요원이 찍는 범죄현장 사진과 범인의 얼굴을 식별하는 얼굴사진을 말한다. 후자가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면 실제 범인을 잡는 일에는 현장사진이 중요하다. 현장사진은 사건 발생 이후 목격자나 감식요원의 기억을 되살리고, 증거물과 현장의 상호관계를 보여준다.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등 범인을 잡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래서 범죄사진은 일반적인 사진 찍기와 다르다.
사진 찍는 이의 예술적인 감수성이나 느낌이 들어가면 안 된다. 형사든 판사든 검사든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이어야 한다. 사진은 흔들려서도 안 되고 찍힌 피사체는 모두 초점이 잘 맞아야 한다. 아웃포커스 사진(주 피사체만 초점이 맞고 배경은 뿌연 사진.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찍는 기법)은 생각도 못한다. 다만 방화현장에서 미세한 발화지점을 찍을 때만 예외다. 7년차 베테랑 수사요원인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진수(40) 경사는 조리개 4.0~5.6, 셔터속도 1/60초 이상, 감도 200~800으로 사진을 찍는다.
외부에서 내부로, 위에서 아래로, 원경에서 근경으로
이런 이유로 현장은 늘 빛이 넉넉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1986년 김상현(54<30FB>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현장3팀장) 경사가 출동한 사건 현장은 지하실이었다. 자린고비 같은 주인에게 공사비를 받지 못한 한 수리공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이었다. 마치 토굴 같은 곳에서도 증거를 잡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그가 꺼낸 것은 휴대용 조명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학수사요원들의 가방에는 엘이디(발광다이오드) 조명부터 각종 크고 작은 조명들이 있다. 전소된 어두운 화재현장에서도 조명은 유용하다. 과학수사요원의 사진 촬영에는 원칙이 있다. 먼저 범행현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사진을 찍는다. 미국은 항공사진을 찍기도 한다. 다음으로 범행현장 들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프레임을 넓게 찍다가 점차 좁혀 들어간다. 마치 파노라마사진을 찍는 듯하다. 외부에서 내부로, 위에서 아래로, 원경에서 근경으로 찍는다. 근접사진도 찍는다. 한 장은 있는 그대로 찍고, 다른 한 장은 자를 대고 찍어 그 크기를 남긴다. 필름과 피사체가 평행한 상태로 찍어서 증거가 왜곡되어 보이지 않게 한다. 혈흔, 족적(범인이 남긴 발자국), 흉기 등은 수거하기 전에 찍는다. 특히 거울, 비닐장판 등과 같은 반사물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어두운 밤에는 삼각대를 사용한다. 절도는 침입구, 도주로, 피해품 등을 찍고, 살인사건은 피해자 신체부터 실랑이한 흔적까지 꼼꼼히 찍는다. 강도는 피해 물품이 있었던 곳을 찍어야 하고, 화재는 발화점을 찾아 찍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수사요원들은 1년에 2~3번 신발가게로 출동을 한다. 신제품 신발들을 찍어서 자료로 남긴다. 범인의 족적을 발견했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신발 신제품 모두 찍어 족적 확인 자료로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 과학수사팀 정윤택(34) 경장은 자살사건인 경우 사진을 찍다 보면 타살로 확인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목을 맨 자살일 경우 V자가 나기 마련인데 자국이 수평이면 타살일 확률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변을 찍기도 했다. “범행 현장에서 대변을 보고 가는 범인이 있다. 범인들은 그렇게 하면 잡히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단다. 움직이는 피사체가 없어 쉬울 듯해 보이지만 어려움은 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진수 경사는 “짧은 시간 중요한 사진을 모두 찍어야 한다. 혹시 빼놓는 것이 있을까” 하는 심적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재촬영은 없다. 이렇게 찍은 100~150장의 사진은 커다란 두 권의 앨범이 되어 한 권은 과학수사계에 보관하고, 한 권은 사건 해결 형사에게 넘긴다. 이들이 사용하는 카메라<30FB>필름 이야기도 재미있다. 초기엔 필름카메라와 흑백필름을 썼다. 경찰서마다 암실이 있어서 과학수사요원들이 직접 현상하고 인화를 했다. 90년대 넘어오면서 후지 컬러필름을 넣어 사용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렌즈는 50㎜ 단렌즈와 28~105㎜, 18~35㎜ 줌렌즈를 쓴다. 접사기능이 있는 렌즈다. 색도 중요하다. 피사체가 선명하게 나오게 하기 위해 갖가지 색 필터를 사용한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처럼 엽기적인 사건이 늘면서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학수사요원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전국에 약 750여명이 있다. 그중에서 강력사건이 많은 서울은 31개 일선 경찰서에 91명,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46명이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경우 사건이 터지면 현장팀 5명과 범죄분석팀 2명, 검시팀 2명이 출동한다. 이들의 수는 26명이다. 범죄분석팀과 검시팀은 유전공학 등을 전공한 일반인들 중에서 특채를 한 경찰들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현장팀이 한다. 3교대로 24시간 운영된다. 한번 맡은 사건은 감식이 끝날 때까지 다른 팀이 맡지 않는다. 24시간 꼬박 일하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매년 과학수사요원을 지원하는 경찰관들은 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벽에는 커다란 글씨가 붙어 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Every Crime leaves a Trace) 과학수사요원들은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 추적자들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현장3팀 과학수사요원들.
이런 이유로 현장은 늘 빛이 넉넉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1986년 김상현(54<30FB>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현장3팀장) 경사가 출동한 사건 현장은 지하실이었다. 자린고비 같은 주인에게 공사비를 받지 못한 한 수리공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이었다. 마치 토굴 같은 곳에서도 증거를 잡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그가 꺼낸 것은 휴대용 조명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학수사요원들의 가방에는 엘이디(발광다이오드) 조명부터 각종 크고 작은 조명들이 있다. 전소된 어두운 화재현장에서도 조명은 유용하다. 과학수사요원의 사진 촬영에는 원칙이 있다. 먼저 범행현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사진을 찍는다. 미국은 항공사진을 찍기도 한다. 다음으로 범행현장 들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프레임을 넓게 찍다가 점차 좁혀 들어간다. 마치 파노라마사진을 찍는 듯하다. 외부에서 내부로, 위에서 아래로, 원경에서 근경으로 찍는다. 근접사진도 찍는다. 한 장은 있는 그대로 찍고, 다른 한 장은 자를 대고 찍어 그 크기를 남긴다. 필름과 피사체가 평행한 상태로 찍어서 증거가 왜곡되어 보이지 않게 한다. 혈흔, 족적(범인이 남긴 발자국), 흉기 등은 수거하기 전에 찍는다. 특히 거울, 비닐장판 등과 같은 반사물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어두운 밤에는 삼각대를 사용한다. 절도는 침입구, 도주로, 피해품 등을 찍고, 살인사건은 피해자 신체부터 실랑이한 흔적까지 꼼꼼히 찍는다. 강도는 피해 물품이 있었던 곳을 찍어야 하고, 화재는 발화점을 찾아 찍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수사요원들은 1년에 2~3번 신발가게로 출동을 한다. 신제품 신발들을 찍어서 자료로 남긴다. 범인의 족적을 발견했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신발 신제품 모두 찍어 족적 확인 자료로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 과학수사팀 정윤택(34) 경장은 자살사건인 경우 사진을 찍다 보면 타살로 확인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목을 맨 자살일 경우 V자가 나기 마련인데 자국이 수평이면 타살일 확률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변을 찍기도 했다. “범행 현장에서 대변을 보고 가는 범인이 있다. 범인들은 그렇게 하면 잡히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단다. 움직이는 피사체가 없어 쉬울 듯해 보이지만 어려움은 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김진수 경사는 “짧은 시간 중요한 사진을 모두 찍어야 한다. 혹시 빼놓는 것이 있을까” 하는 심적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재촬영은 없다. 이렇게 찍은 100~150장의 사진은 커다란 두 권의 앨범이 되어 한 권은 과학수사계에 보관하고, 한 권은 사건 해결 형사에게 넘긴다. 이들이 사용하는 카메라<30FB>필름 이야기도 재미있다. 초기엔 필름카메라와 흑백필름을 썼다. 경찰서마다 암실이 있어서 과학수사요원들이 직접 현상하고 인화를 했다. 90년대 넘어오면서 후지 컬러필름을 넣어 사용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렌즈는 50㎜ 단렌즈와 28~105㎜, 18~35㎜ 줌렌즈를 쓴다. 접사기능이 있는 렌즈다. 색도 중요하다. 피사체가 선명하게 나오게 하기 위해 갖가지 색 필터를 사용한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처럼 엽기적인 사건이 늘면서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학수사요원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전국에 약 750여명이 있다. 그중에서 강력사건이 많은 서울은 31개 일선 경찰서에 91명,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46명이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경우 사건이 터지면 현장팀 5명과 범죄분석팀 2명, 검시팀 2명이 출동한다. 이들의 수는 26명이다. 범죄분석팀과 검시팀은 유전공학 등을 전공한 일반인들 중에서 특채를 한 경찰들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현장팀이 한다. 3교대로 24시간 운영된다. 한번 맡은 사건은 감식이 끝날 때까지 다른 팀이 맡지 않는다. 24시간 꼬박 일하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매년 과학수사요원을 지원하는 경찰관들은 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벽에는 커다란 글씨가 붙어 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Every Crime leaves a Trace) 과학수사요원들은 그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난 추적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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