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맨의 접히는 선풍기(왼쪽) vs 국산 1호 선풍기인 금성사의 ‘D-301’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세상이 덥다. 그래도 이런 무더위엔 시름을 거짓말처럼 씻겨내 주는 한순간이 있다. 바로 선풍기 앞에 앉아 있을 때다. 에어컨에 밀려 철 지난 퇴물로 인식되는 선풍기지만 여름이면 베란다에서 변함없이 먼지 쌓인 이 물건을 꺼내 놓는다. 에어컨처럼 좀 ‘있어 보이진’ 않아도 자신의 작동 원리를 숨김없이 밖으로 다 내보이는, 순진하고 엉뚱해 보이는 매력이 여전하다. 선풍기는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동그란 몸통 얼굴에 버튼이 달려 있는 받침대까지 형태는 별볼일없이 단순하다. 하지만 기억해보면 색상도 날개의 크기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린 시절엔 까칠까칠한 선풍기 망 속으로 손가락이 빨려 들어갈까 무섭기도 했지만 언뜻 보면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눈사람의 형상을 닮은 듯 친근하게도 느껴졌다. 반면 교실이나 사무실 천장에 매달려 세상의 더위를 다 잡아먹을 듯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내던 선풍기를 떠올려보라. 그의 날개는 정말이지 에스에프(SF) 영화에 나오는 소품처럼 초현실적이었다. 지금은 방 하나에 한 대가 있을 정도로 흔한 일상용품이 됐지만 1960년도에야 국산 1호 선풍기가 최초로 등장했다. 선풍기를 그려 보라면 바로 이렇게 그려낼 만큼, 우리 이미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정답 같은’ 디자인이었다. 쇠파이프를 둘둘 휘게 해 원형 몸통을 만들었고 서늘한 푸른색의 플라스틱 나선형 팬(fan)이 세 방향으로 뻗어 있다. 스탠드, 전동기, 날개, 보호망 같은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췄지만 없는 것도 많다. 끄고 켤 수 있는 똑딱이 스위치 하나가 간소하게 박혀 있을 뿐 바람의 세기와 속도, 예약, 높이와 방향을 세분화한 장치가 없었다. 손잡이도 마땅치 않아 이동시키기도 쉽지 않았으니 선풍기 앞으로 사람들이 이동해야 했다. 그렇다고 섬세한 디자인의 흔적이 없는 건 아니다. 붉은색도 노란색도 아닌, 푸른색 날개를 선택한 데서 한여름 선풍기는 시원한 이미지로 만들고 말겠다는 디자이너의 선택이 보인다. 당대엔 획기적이었던 금성사의 ‘D-301’은 1년 만에 단명했지만 자체 개발한 모터는 남아 무수한 선풍기 후예들의 몸통에 활용됐다. 디자인 또한 끝없이 영감을 줬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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