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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도 염치도 없는 최강 민폐녀 등장

등록 2009-08-26 17:47수정 2009-09-01 15:19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패션잡지 <스타일>의 편집장 박기자(김혜수)는 턱을 한껏 세우고 도도하게 ‘엣지’라는 말을 짧고 높게 내뱉는다. 패션업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주말 드라마가 트렌드를 보여주겠다고 시동을 걸었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스타일>(에스비에스)을 집중 분석했다.

스타일은 없고 한물간 유행들만 나열하는 주말드라마 ‘스타일’
평면적 인물들 사이로 독야청청 버텨가는 김혜수가 안쓰럽구나

백은하(이하 백) <스타일>은 표절시비 등의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기대감이 큰 만큼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21세기 패션의 정수에 있는 패션 잡지사를 배경으로 오종록 감독이 어떻게 연출해낼까 기대감이 있었다. 백영옥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무엇보다 드라마에 잘 안 나오는 김혜수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같은 편집장 역할을 한다니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뚜껑 열고 보니 명백히 90년대 스타일이었다.

‘엣지 있다’ 좀 철 지난 말이거든


주말드라마 〈스타일〉
주말드라마 〈스타일〉
최지은(이하 최) 패션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패션잡지에 대한 드라마인데 패션잡지 세계가 제대로 그려지는 건지 미심쩍다. 9월 패션지 기획기사들은 <스타일>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그나마 비슷한 부분은 뭔지를 다뤘다. 패션지 에디터들 할 말 많겠지만 시청자들도 할 말 많다.

드라마에서 원하는 게 리얼리티 자체는 아니다. 패션잡지 에디터들의 생활과 얼마나 유사하냐 아니냐를 갖고 좋은 드라마다 아니다를 평할 수는 없다. 한데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 류시원의 헤어와 패션은 <프로포즈>나 <순수> 같은 90년대 드라마에서 한 발자국도 앞서 나가지 않았다. 여심을 흔드는 미남 요리사로 나오는데 옷뿐 아니라 연기 톤도 아쉽다.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악녀에 비해, 김혜수의 캐릭터가 단선적인 데서 입체적으로 변하긴 했다. 그만큼 이서정(이지아)의 캐릭터도 입체감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90년대 드라마보다 훨씬 매력 없는 민폐녀가 됐다.

처음부터 ‘왜 이래’라고 생각했던 게 이서정 캐릭터였다. 이제껏 캔디도, 신데렐라도 많이 봤지만, 1년 반 일해도 여전히 일 못 하고 징징대는 캐릭터는 직장생활 하는 사람 누구나 싫어하는 인물이다. 툭하면 옷 잃어버리고 남자에게 눈 팔려 있다가 모델에게 상처 내고, 고민에 대한 어떤 성찰도 없다. 김민준(이용우)이란 남자는 또 왜 이 여자에게 굳이 같이 집에서 살자고 하는 건지 감정의 변화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줄거리만 앞으로 간다. 사고를 치고, 루머가 터지고, 회사 계약이 위험해지고, 사건들만 있는 채로 그냥 막 굴러가는 것 같다.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뻔한 설정들이 반복된다. 캐릭터들은 질투나 동경, 혹은 관심과 미움 같은 것들을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내면서 표현하고 있는데 모든 감정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출처가 없다. 김혜수가 극 중 ‘엣지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 이건 좀 철 지난 표현인데 <스타일>에선 마치 굉장한 신조어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제작진이 패션계를 이해하고 있다기보다는, 업계에 대한 피상적인 이미지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스타일>은 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세트에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플롯을 갖다 끄집어 놓은 듯하다. 실제로는 1999년도 패션쇼를 보는 것 같고.


패션잡지사를 배경으로 일과 사랑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주말드라마 〈스타일〉.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패션잡지사를 배경으로 일과 사랑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주말드라마 〈스타일〉.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멜로인지 트렌드인지. 잡지 에디터들 나올 때는 시트콤 같다. 에디터 캐릭터들은 패션계 사람들의 작은 부분을 극대화시켜 놓고 희화화해 만든 것 같다. 전체 극과 어울리지도 않고, 겉돌고 있다. 한쪽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나오고, 이서정은 혼자 맥 빠져 있고, 누구는 또 기습키스 하니까, 이런 부조화 속의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 이후 오랜만이다.(웃음)

21세기의 트렌디한 패션 스타일에 대한 드라마 만들려 했다면, 이서정 캐릭터가 더 신선했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서정이 굉장한 속물이지만 패션지 에디터로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살아남고자 한다면 이 인물이 왜 넙죽넙죽 남들이 주는 선물을 받는지 설명될 텐데, 그닥 정의롭지도 않고 속물스럽지도 않다. <스타일>에선 박기자와 이서정의 팽팽한 지점을 보여주는 게 포인트다. <선덕여왕>에선 미실과 덕만의 목표가 다르고, 각각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두 인물의 대결 구도가 흥미롭다. 여기선 박기자에게 상실된 무엇이 이서정에게 발견되지도 않고, 대결도 흥미롭지 않다. 류시원은 <결정 맛 대 맛>에 나왔던 그 모습 같고. 모든 캐릭터가 애매한 상태로 어정쩡한 관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설마 퀴어 코드까지?

사실 이서정과 박기자의 차이를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하긴 한다. 서우진도 이서정에게 끌리고, 이서정의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을 움직인 이들이 패션 화보를 찍게 된다. 총리가 사진을 찍게 된 것도 이서정 아버지가 양복을 꿰매온 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총리가 화보를 찍겠다고 한 거다. 이걸 보면서 저 정도에 마음이 움직이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라마는 이렇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김민준(이용우)이 서우진을 유혹하는 전개로 퀴어 코드까지 넣는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 되면 막가자는 거다. 김혜수 혼자 안 웃기고 있는데 이렇게 진지할 수 있구나 싶다. 이게 이 드라마의 유일한 힘 같다. 박기자 혼자만 힘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그 직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제작진이 오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패션지에서 일하는 남자 에디터에 대해서도 엄청난 스테레오 타입을 갖고 비호감적인 캐릭터를 생산해낸다거나, 웃자고 만든 캐릭터들이 너무 많다. 캐릭터들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는 데 비해서 박기자의 역할은 너무 진지하다. 과거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어떤 열망이 있고 마지막 목표는 무엇인지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 않은 채 그 인물의 만행들만 보여주고 있다.


패션잡지사를 배경으로 일과 사랑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주말드라마 〈스타일〉.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패션잡지사를 배경으로 일과 사랑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주말드라마 〈스타일〉.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미묘한 막장성을 띠고 있어서, ‘왜 저래’ 하면서 보게 되는 건 있지만 캐릭터나 스토리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게 무너져 있다. 대사가 재밌다는 느낌은 있다. 대사에 있어서만은 공을 들인 것 같다. 김혜수는 왜 기습키스를 했으며 하룻밤을 자고도 왜 원수가 됐는지 상황은 이해 못했는데, 대사는 들린다.

문제는 이서정이라는 인물의 목표가 안 보인다는 거다. 뭐가 되겠다~가 없는 캐릭터인데, 그렇다면 왜 지금 여기서 삽질을 하고 있는지 설명이 안 된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에디터 3년 재수했다는 인물이 왜 패션 에디터가 되려고 하는 걸까? 패션지 안에서 인물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정확한 이해가 없다. 잡지사에 포토그래퍼가 한 명인 것도 이상하고. 요즘엔 지미추 슈즈 정도는 신어줘야 한다는 걸 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배워 늘어놓은 듯한 코스튬 플레이 같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건 박기자가 이서정을 안 좋아하는 이유 정도다. 어설픈 순수함이랄까. 난 글을 쓰고 싶은데, 현실에 때 묻는 게 싫다는 입장? 자신은 망가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결국 그 모든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이서정을 편집장이 좋아할 리 없다.

능력이 없는데, 염치도 없는 캐릭터라서 어디에서 미덕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오종록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피아노>에는 향수나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스타일>에서는 이서정이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를 비롯해 어디 하나 오 감독의 손길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공간이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안 준다. 잡지사 공간도 너무 비현실적이고, 공간이 캐릭터를 가지는 방식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던 오종록 감독의 장기는 다 어디로 갔나. <스타일>에도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캐릭터나 공간을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박기자님 시상식 가셨쎄요~

옷이라도 볼 게 있으면 좋겠다. 박기자의 옷이 볼만한데 완전 풀 착장으로 차려입고 나와서 시상식 가줘야 하는 상태다. 지금 현재의 스타일리시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서정 옷은 나한테 입으라고 해도 안 입을 것 같은 정도다.

방향성과 스타일이 동시에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 엣지~ 있네

박기자(김혜수)

“지금 드라마가 그렇게 잘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걸 그녀도 알 텐데, 흔들림 없이 고군분투하는 연기에 박수를. 이 드라마에서 엣지를 책임지고 있는 김혜수마저 없었으면 이 드라마 완전 표류했을 것 같아.”(최지은)

손명희(나영희)

“김혜수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엣지 있게!’보다도 나영희의 ‘예쁘게~’라는 말이 더 엣지 있어 보인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캐릭터를 참 귀엽게 만드는 능력을 높이 산다.”(백은하)

■ 엣지라곤 찾아볼 수 없네

잡지 <스타일>의 에디터들

“모든 일에 간섭하고 흥분하고, 실질적으로 뭘 할지 모르는 실없는 동료들을 보는 것 같다. 머리가 텅텅 빈 성형미인, 여자 같은 혹은 게이스러운 남자, 히스테릭한 선배까지. 다들 농담 한번 하려고 등장한 것 같다.”(백은하)

서우진(류시원)

“서우진에겐 젠틀하고 부드럽지만 패션지에서 잘 쓰는 단어인 ‘치명적인 매력’ 같은 게 있어야 한다. 한데 매가리 없고 가끔 독설 퍼붓는 걸 보면 차라리 중후한 매력이라도 있었음~ 싶다. 무리한 패션 감각을 요구하는 건 아닌데 굳이 왜 소매를 걷는 걸까.”(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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