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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아가씨 부탁도 못하겠어

등록 2009-09-09 18:46수정 2009-09-10 06:57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돈이 너무 많아서 고민인 공주? 돈이 너무 없어서 고생인 머슴? 전래동화에 나올 것 같은 이 캐릭터가 아직도 회자된다면 그건 ‘돈’ 또는 ‘사랑’의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 윤은혜의 컴백으로 화제가 된 <아가씨를 부탁해> (한국방송)가 아직은 예상을 뒤집어엎는 신선한 구도에 들어서지 못한 가운데,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아가씨를 부탁해>를 들여다봤다.

설정으로 주장만 할뿐, 캐릭터 밀도 떨어지는 ‘아가씨를 부탁해’
윤은혜 발음 탓하기 전에 허술한 대본, 엉성한 연출부터 점검하길

최지은(이하 최) <아가씨를 부탁해>는 한국방송의 상당한 기대작이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에이급 스타 반열에 오른 윤은혜의 컴백작이었다. 윤은혜가 갖고 있는 인지도나 스타성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지만 막상 이 작품의 정보는 부족했던 것 같다. 제목이 <레이디 캐슬>이었다가 바뀌었는데 기획 기간에 비해서 구체적인 준비 일정이 짧았다. 주인공 강혜나(윤은혜 분)라는 인물은 한국의 패리스 힐튼,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같은 성격을 가진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가 임팩트를 주려면 무엇보다 비주얼적인 효과가 중요한데 그 효과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저택이나 미남 집사, 고급 차 등의 설정은 있었는데 그걸 보여주는 방식이 새롭지 않았다.

〈아가씨를 부탁해〉 한국방송 제공
〈아가씨를 부탁해〉 한국방송 제공

부자라고 외치면 다 부자로 보이나


백은하(이하 백) 부자들의 디테일이 빠진 느낌이었다. 강혜나가 아무리 유명 디자이너의 고급 옷을 입고 있어도 절대 럭셔리해 보이지 않았다. 극중 집사인 서동찬(윤상현)과 아가씨 강혜나의 관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봐야 하는 게 빈부 격차와 계급 격차인데 이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은 거다. 인권 변호사인 이태윤(정일우), 서동찬, 강혜나, 여의주(문채원)는 성 역할이나 계급 역할이 상하층 계급의 남녀로 딱딱 찢어진 듯 꼭짓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각각의 차이가 안 느껴졌다. 이것 때문에 드라마의 재미나 긴장감이 덜한 것 같다.

근래 한국 드라마에선 재벌이 특히 많이 나온다. <꽃남>에서 <아가씨를 부탁해>로 이어지는 재벌과 서민의 사랑이 약간의 판타지를 두고 계속 등장했다. 그런데 이걸 만드는 제작진이 현실의 빈부 격차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을 하고 있나 의심스럽다. 이 인물은 원래 부자니까 부자고, 저 인물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니까 그렇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내면적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내면적 고민이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강혜나가 이태윤에게 충격을 받고 나서 술 먹고 엉엉 울며 “내가 부자인 게 죄야!! 돈 많은 게 죄야?”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죄는 아니고, 사실 너무 부럽지(웃음). 그런데 이 장면으로, 강혜나가 겪고 있는 갈등을 ‘이렇게 보여줬으니까 됐지?’ 하고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물도 이렇게 고민하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하는 방식이랄까.

드라마에는 집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집사라는 설정에 대해서 비판했던 많은 사람들이 ‘왜색이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게 문제의 핵심은 아닌 것 같다. 빈부 격차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아가씨가 “넌 나의 집사니까”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것 외에는 집사와 아가씨의 관계가 밀도 있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급과 빈부 차이를 그렸던 드라마 중에선 <발리에서 생긴 일>이 새로운 지점을 남겼던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빈부 격차가 남녀 관계의 헤게모니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사랑이라는 특별한 관계에서는 빈부의 헤게모니를 뛰어넘는, 누가 서로를 더 강렬하게 바라는가에 대한 관계의 헤게모니가 있지 않나. <발리에서 생긴 일>은 그 관계의 헤게모니가 역으로 상충할 때 얼마나 재밌어지는가를 보여줬다. 만약 서동찬이 가난하지만 아가씨의 마음을 얻는다는 식의 역전이 있다면 훨씬 입체감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각자의 계급에 맞게 없는 자는 계속 가난하고, 있는 자는 계속 있는 식으로 순탄하게 흘러간다.

빈약한 이야기 안에서도 윤상현의 열연은 돋보인다. 노련한 연기가 이 드라마의 가장 좋은 대목인 것 같다. 서동찬이라는 인물은 전직 제비였고 5천만원 빚을 진 뒤, 부잣집 아가씨인 혜나를 꼬셔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한데 기본적으로 착한 성품을 갖고 있는 이 인물이 남의 돈을 ‘등쳐먹으려’ 한다는 설정이 잘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또 캐릭터와 사건을 분리해서 보면 서동찬이란 인물은 입체감도 있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교회에서 간증하는 신이나 윤은혜를 바라보는 장면도 좋았다. 이 작품이 잘 안되더라도 윤상현의 커리어에는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 않다.

윤상현의 연기 자체는 <내조의 여왕>에서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 드라마에선 유난히 자기 페이스를 지키면서 고군분투하는 듯 보인다. 첫 방송 후 윤은혜의 발음 논란이 인터넷상을 달궜다. 단순히 어린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고 있다거나 누구 약발 떨어졌다는 식의 문제가 핵심은 아니다. 전적으로 드라마의 기본을 짜는 작가 혹은 연출의 문제다.

드라마는 실패해도 윤상현은 남을 것

대한민국 최고 상류층 여성과 전직 제비 출신 집사의 사랑을 그리는 <아가씨를 부탁해>.  한국방송 제공
대한민국 최고 상류층 여성과 전직 제비 출신 집사의 사랑을 그리는 <아가씨를 부탁해>. 한국방송 제공
부잣집 딸처럼 기품 있는 분위기의 문채원도 지금은 서민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하고, 작업복 같은 점프슈트를 걸치고 나온다. 그게 전략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끔 ‘저렇게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을 수가 있나’ 싶어 깜짝 놀란다. 문채원도 그의 연기 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여의주라는 캐릭터는 직장을 구해야 하는 서민 가정의 20대 여성인데 어떤 때는 괄괄하다가 서동찬 앞에서는 수줍어하다가, 회사에선 아가씨와 맞짱 뜨는 불같은 구석도 있다. 각각의 요소가 한 캐릭터에 잘 조화되지 않았다.

처음 드라마의 기획 자체에는 재밌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고, 여자 구준표가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나 싶었다. 성 역할만 바꾼 <꽃남>의 아류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재벌과 서민을 판타지스럽게 다룬 <꽃남>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면 그 비슷한 다른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한데 뚜껑 열고 보니까 포장은 같은데 내용물이 부실해 아쉬웠다. <꽃남>의 이민호와 윤은혜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윤은혜를 두고 연기가 전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와는 다른, 도도하고 오만한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빠르고 카랑카랑한 말투가 중요한데 누군가를 정말 천하다고 생각하는 말투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천한 것들!”이라고 말은 하는데, 귀하게 자라온 사람의 고급스러움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이태윤 앞에 있을 때 나오는 주눅 든 말투가 괜찮고, 안하무인 강혜나로서 말할 때는 윤은혜도 아가씨도 없다.

윤은혜의 스타일링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다소 산만하다고 해야 하나? <스타일>의 김혜수가 완벽주의자인 까다로운 성격을 그의 스타일에 반영한다면, 강혜나는 오히려 그동안 화보에서 봤던 ‘윤은혜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이네~’ 정도로 보였다.

<돌아온 일지매> 이후 연기 면에서 일정 부분 성장한 정일우도 뭔가 제대로 보여주기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올바른 캐릭터가 왜 강혜나 아가씨의 적극적인 대시에 갑자기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지 설명이 없다. 서동찬도 한때 제비로서 여성을 쥐락펴락하다 갑자기 순정의 아이콘이 된 이유도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가씨를 부탁해>는 로맨틱 드라마의 매뉴얼을 보여준다. 집사로 아가씨 집에 들어가고 티격태격하고, 변호사 만나고 기습키스도 다 했다. 하지만 세부항목 없이 큰 장들만 계속 듬성듬성 펼쳐진다. 조연들 역할도 불분명하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집사들이 누구는 주차장에 있다든지 서빙한다든지 역할이 있을 법한데 우르르 움직인다.

마치 전투신의 병사들 같다. <꽃남>의 경우엔 버릴 것과 취할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중요한 것에 집중했던 것 같다.

판타지도 그 안에 잘 직조된 세상 있어야

예로 소이정이나 지후 선배 집에는 어떠한 도우미도 없었다. 오직 구준표만이 옷 입을 때 옷 가져다주는 이들이 돋보였을 뿐.

강혜나의 집에선 왜 집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설까. 그런 집이면 안전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판타지가 판타지다우려면 그 안의 세상이 잘 직조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현실을 잊고 판타지에 풍덩 들어갈 수 있다. 아직은 이 <아가씨를 부탁해>를 집사에게도, 아무한테도 부탁할 수 없을 것 같다.

■ 이 와중에 매력 있는 남자

윤상현(서동찬 역) | “대본에선 빠져 있었을 것 같은 감정을 윤상현의 눈이 전달해준다. 윤상현의 물기 촉촉한 눈 때문에,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남자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구나~라는 게 느껴진다. 척박한 드라마에 던져 놓으니까 더 빛나는 듯!”(백은하)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윤상현만의 독보적인 지점이 있다. 드라마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윤상현이 비굴하게 굴면서도 아가씨에게 달라붙을 때다. 아줌마들을 휘어잡으면서 간증하던 신에선, 사람들을 끌어당길 만하구나 싶었다.”(최지은)

■ 이 와중에도 매력 없는 남자

정일우(이태윤 역) | “부잣집 아들에 개념까지 있어서 인권 변호사인 이 남자. 매너도 있고 배려도 있고, 퍼펙트한 그를 이렇게 매력 없이 써냈다는 게 놀랍다. 기왕 인권 변호사라고 했으면 좀더 멋있고 리얼하게 그려보든가. 재벌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강혜나 그룹과의 갈등을 만든다든지!”(최지은)

“물같이 밍밍하다. 강직하고 확고한 사람이라고 해도 정말 이상한 여자를 좋아할 순 있다.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지. 오도 가도 못하는 답답한 성격으로 그려놓고 여자의 마음을 받게만 하는 방식이 안타깝다.”(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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