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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농담 언어유희 골라 골라!

등록 2009-09-30 21:52수정 2009-10-03 22:25

지적농담 언어유희 골라 골라!
지적농담 언어유희 골라 골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빌 브라이슨에서 박민규까지 둘이 웃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웃기는 책 15선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가 대세라지만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는 사람도 있다. 말장난은 짜증나기만 하고 유반장이 스타킹 뒤집어쓰고 돼지머리 눌린 형상을 하고 있을 때가 세상 제일 웃긴다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웃음의 급소를 찾는 것이 자신에게 딱 맞는 작가와 책을 찾는 지름길. 정교하게 구축된 개그를 선호한다면 그래프 위쪽에 배치된 책들이, 순발력 좋은 수다에서 쾌감을 느끼는 이라면 그래프 아래쪽의 책들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이나 문학적 재미가 수반되는 책을 원한다면 왼쪽, 웃기는 와중에도 무언가 남는 것을 원한다면 오른쪽의 책들을 골라보자.

빌 브라이슨에서 박민규까지 둘이 웃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웃기는 책 15선.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포복절도할 상상력의 장르소설들

좀 황당무계해도 소설 속에서 아귀만 제대로 맞추면 되는 탓에 과학소설은 그 어떤 장르의 책들보다 유머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소설 팬들에게 유머의 본좌로 손꼽히는 이는 여성작가 코니 윌리스다.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유실된 성당을 복원하고자 21세기 - 1940년대 - 빅토리아 시대를 오가며 모험을 펼치는 시간여행물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는 가장 웃기는 과학소설을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 빅토리아 시대에 어긋난 인연으로 2차 대전의 결과가 바뀔 뻔했다는 식의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비롯하여 과학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에도 충실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740쪽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작가의 수다와 유머다.

지적인 유머의 결정체를 맛보고 싶다면 <솔라리스>를 지은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오멜라스)를 권한다. 어떠한 물건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주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가 말도 안 되는 기계들을 발명하면서 빚어지는 범은하계적 대소동을 담은 단편 연작집으로 ‘N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무엇이든 만드는 기계’, ‘전자 시인’ 등 기상천외한 물건들과 사건들이 펼쳐진다. 과학은 물론, 수학, 철학, 음악 등 각 분야의 지식들이 총동원되고 있지만 그토록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 없이 단지 설정만으로도 유쾌하게 낄낄거릴 수 있다.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이덴슬리벨)를 쓴 더글러스 애덤스는 아무리 봐도 스타니스와프 렘의 적자인 듯하다. 과학소설의 바탕에 판타지와 미스터리까지 결합한 이 작품에도 시작부터 ‘전자수도사’라는 존재가 말을 타고 등장한다.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중략)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같은 작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재미있게 읽었거나 관심은 있었지만 분량 때문에 포기했던 이라면 부담 없이 펴들어 보자.

새롭게 종말론이 창궐하는 세상을 유쾌하게 돌파하고 싶다면 <멋진 징조들>(ⓓ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을 추천한다. 제목 중 ‘징조’의 원어는 오멘(omen). 그러니까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공포영화 <오멘>의 패러디다. 적그리스도가 태어나고 바야흐로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을 앞둔 무렵, 지상의 천사 아지라파엘과 악마 크롤리는 아마겟돈에 불만을 품고 흉계를 꾸민다. 담배도 없고 영화라고는 <사운드 오브 뮤직>밖에 없는 천년왕국 따위 따분하기 짝이 없을 것이기 때문.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산악문학’이라는 장르에도 웃음의 거봉이 하나 솟아 있다. ‘럼두들’이라는 가상의 산을 등정하려는 이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럼두들 등반기>(ⓔ W. E. 보먼 지음, 김훈 옮김, 마운틴 북스)가 바로 그것.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식의 인간 한계 도전기 따위는 여기에 없다. 평균 이하의 군상들이 모여 쇼를 하는 이 엉뚱한 모험담은 글자 그대로 ‘산으로 간다.’

양키 센스의 진수를 보여주는 에세이들

당대의 웃기는 작가라고 하면 그를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21세기북스) 한 권으로 그는 한국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저술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때로는 시원시원하게, 때로는 배배 꼬아서 신랄하게 까대는 독설의 카타르시스가 그의 핵심적인 유머 스킬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자기 패러디(많은 경우 19금 농담이지만)가 곁들여지고,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글은 에세이로서 균형감각을 찾는다.

과거 <순풍 산부인과>나 최근의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김병욱 피디의 시니컬한 시트콤을 좋아한다면 <코듀로이 재킷과 청바지, 그리고 가족스캔들>(ⓖ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박중서 옮김, 시공사)을 권한다. 미국의 에세이스트이자 극작가인 저자의 가족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데, 독특하면서도 자기 욕망에 집착하는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들은 간혹 우스꽝스럽다 못해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만큼 민망한 상황을 낳기도 한다.

뒤통수를 강타하는 허허실실 일본 에세이들

막무가내 의사 이라부(<공중그네>, <인 더 풀>)의 처방에 배꼽을 잡았던 독자라면 (그리고 야구팬이라면) 최근에 국내 출간된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 에세이 <야구장 습격사건>(ⓗ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동아일보사)을 놓치지 말자. ‘유명작가의 야구장 견문록’이라고 해서 선수들 인터뷰 같은 것도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순수한 야구팬의 입장에서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의 전지훈련장이나 일본 각지의 야구장을 놀러 다닌 이야기를 쓴 여행기에 가깝다. 야구 이야기만큼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음식,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온갖 불평불만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명품 중독자, 홈쇼핑 중독자들의 삶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카무라 우사기의 칼럼집 <나는 명품이 좋다>(ⓘ 나카무라 우사기 지음, 안수경 옮김, 사과나무)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주민세도 체납한 주제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샤넬 재킷만큼은 사야 하는 그녀의 못 말리는 명품 중독증 에피소드와 함께, 홈쇼핑에서 판매하고 있는 각종 자질구레한 제품들의 사용기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치밀한 분석과 검토보다는 일반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풀어내는 수다형 후기가 공감을 낳는 지점. 뿌리고 슥슥 문지르기만 해도 묵은 때와 얼룩이 사라진다는 기적의 제거제 광고를 보면 솔깃하는 독자들, 그리고 샤넬에서 만든 우산이 얼마나 비실용적인가를 알고 싶은 독자들은 그녀의 구매 경험담에 귀 기울여 볼 일.

홈쇼핑 제품이 아니라 일본 베스트셀러들에 대한 확실한 평가가 궁금하다면 <취미는 독서>(ⓙ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성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가차 없는 리뷰를 참고하자. 문예평론가인 저자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40여권을 읽고 명쾌하게 정리한 책으로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오토타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을 비롯하여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까지 도마에 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간명한 정리 한 구절. “인상에 남는 건 지면에서 몇 센티미터씩 떠있는 것 같은 인물만 나온다는 점. 등장인물들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섞어가며 잘도 떠든다는 점.”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이긴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하루키식으로 능청스러운 유머, 그 끝을 느껴보고 싶다면 좀처럼 저자가 철학과 교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에세이 <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쓰치야 겐지 지음, 송재영 옮김, 토담미디어)을 권한다. 교수라는 권위와 자신의 책에 대한 자부심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출발하는 저자의 비굴한 자세부터 독자들을 무장해제시킨다. “나도 마음이 끌리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일이 있다. 마음이 끌릴 때가 다른 사람이 한턱낼 때랑 일치하고 있지만 이것도 단지 우연일 뿐이다”라는 식. 지식인의 재수 없지 않은 매력이란 이런 것이다.

물보다 빨리 흡수되는 한국의 유머

아무리 해외의 유머들이 난다 긴다 해도 역시 우리 배꼽에는 우리의 개그가 그만이다. 먼저, 문단이 강철로 된 무지개 같았던 8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독자들의 입가 주름들을 급속도로 팽창시켰던 작가 성석제가 작년에 발표한 에세이집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부터 펼쳐보자. 저자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관련 자료와 자전적인 이야기까지 곁들여 풍부하게 해설한 책으로 시계, 헌책, 음반, 음식, 자연 등 이 땅 위의 사물들을 닥치는 대로 필름과 지면에 담았다는 점에서 가히 ‘성석제의 한국 박물지’라 일컬을 만하다. 작가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어휘들은 여전히 경쾌하다.

80~90년대에 성석제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박민규가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카스테라>의 중독성 강한 조크를 잊지 못한다면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문학사상)에 수록된 단편 <龍龍龍龍>을 냉큼 찾아 읽자. 작가가 최초로 도전한 퓨전 무협소설로, 21세기까지 생존해 있는 무림 4룡의 이야기가 소녀시대의 노랫말에 리믹스되어 펼쳐진다.

<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이룸)과 <타워>(ⓞ 배명훈 지음, 오멜라스)는 한국 유머문학의 뉴웨이브다. 배명훈이 서구 과학소설의 굳건한 틀 안에서 동시대 한국의 정서를 담은 고품격 유머를 구사한다면, 박상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언어 유희로 독자들의 허파에 폭풍을 예고한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321@empa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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