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이름은 미스터 네스터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요리·청소·집 꾸미기까지 척척
자기만의 둥지 즐기면서 사는 독신남 이야기
요리·청소·집 꾸미기까지 척척
자기만의 둥지 즐기면서 사는 독신남 이야기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자취남에겐 올 추석이 또다시 악몽이었을까? 아들을 도시에 보낸 지방의 아버지, 어머니는 어김없이 걱정 가득한 전화를 했을 게다. “쌀은 안 떨어졌니?” “김치는 있어?” “우리 아들, 반찬 좀 보내줄까?” 그러나 부모의 걱정이 필요 없을 만큼 혼자서도 살림 잘하는 남자들이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결혼 못 하는 남자>에는 여자에는 관심 없고 일과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결못남’이 등장한다. 결못남처럼 혼자 사는 게 좋은 ‘미스터 네스터’(Mr. Nester)가 그들이다.
한국트렌드연구소가 펴낸 <핫 트렌드 2009>가 올해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미스터 네스터’를 꼽았다. 번역하면 ‘둥지 만드는 남자’인데 요리, 바느질, 청소 등 혼자서도 살림 잘하는 남자를 가리킨다. 둥지남은 여자가 대신 해주지 않아도 살림을 할 줄 아는 생활인이고, 경제 불황에 적응할 줄 아는 경제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는 2009년 불황 때문에 소비자들이 소품 가구, 가정 생활용품, 의류 등을 직접 제작하는 디아이와이(DIY·두 잇 유어셀프)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라 점쳤다. 직업과 나이가 다른 둥지남 3명의 살림살이를 엿보고 ‘생태보고서’를 작성했다. 남자들이 알아두면 좋은 디아이와이숍 정보,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둥지남 생존 조리법도 정리했다. 둥지남들의 둥지에는 퀴퀴한 총각 냄새 따위는 없었다.
아이쇼핑 즐기며 살림살이 센스 익혀
◎ 조사 일시 : 10월8일
◎ 조사 지점 : 서울 강남구 신사동
◎ 조사 대상 : 박성목 ‘장광효 카루소’ 브랜드매니저
◎ 결과 및 고찰
서식지 : 둥지남답게 거실, 방 3개, 부엌 등 서식지가 깔끔하다. 거실을 들어서면 곧바로 42인치 티브이와 오디오 세트가 보인다. 혼자서도 잘 놀기 위한 도구다. 브라운관 앞에는 재즈, 가요, 클래식 등 장르를 불문한 시디가 3000장 가까이 정리돼 있다. 시디도 흐트러뜨려 놓지 않고 일부는 방에 정리해놓고 자주 듣는 것을 거실에 두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심하게 튀지 않는 꽃꽂이 장식이 있다. 실제로 박성목 실장이 만든 건 아니고 선물받은 것이다. 텔레비전의 왼편에는 러닝머신이 있다. 매일 수영을 하고 저녁때 산책을 한다. 실제로 거실 러닝머신에서 뛰는 일은 많지 않다. 베란다에는 베이지색 차양이 있어 직사광선을 막아준다. 텔레비전 오른편에는 작은 탁자 위에 그동안 수집한 향수와 시계가 줄 맞춰 정리돼 있다.
침실은 숙면을 위해 차양을 쳐서 항상 어둡게 한다. 검은색과 흰색의 색감 조합도 신경 썼다. 침실은 서재로도 사용된다. 침대 머리맡에 3단짜리 큰 책장 두 개가 한쪽 면을 차지한다. 절반은 일과 관련된 패션잡지이고 절반은 그때그때 읽는 책이다. 패션, 마케팅책뿐 아니라 문학 계간지 <문학동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해당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가리지 않고 구입한다. “결국, 사두면 읽게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패션 전문가답게 현관 옆 방은 통째로 옷과 신발 등을 정리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슈트부터 청바지까지 세 개의 벽에 설치한 행어에 정리돼 있다. 그냥 바닥에 놓인 옷은 없다. 옷 밑으로 캐주얼 운동화가 줄지어 놓여 있다.
개수대에는 설거짓감이 없다. 샴페인잔, 레드와인잔 등 종류별로 와인잔이 찬장에 정리돼 있다. 가스레인지 옆에는 간단하게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드리퍼가 있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있는 탁자는 3년 전 디아이와이 가게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직접 조립한 가구다.
위생 관리 : 청소기는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돌린다. 서재나 수집품 위에 쌓인 먼지는 부정기적으로 걸레로 닦아준다. 빨래도 자주 해 속옷이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속옷, 수건, 가벼운 티셔츠는 세탁기에 돌리고 셔츠나 아끼는 옷은 집 근처 단골 빨래방에 맡긴다. 기계가 다림질을 하는 대신 셔츠 한 벌 드라이클리닝 가격이 900원이다.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와이셔츠의 경우 목에 낀 때를 확실히 없애기 위해 목 부분 때만 없애는 스프레이형 프리워시를 뿌려준다. 스킨 등 기초 화장품은 냉장고에 보관한다. 냉장고를 열자 음식보다 여러 종류의 스킨 소프트너, 옵티마이저 등 화장품이 정리돼 있는 걸 발견했다.
먹이 : 1971년생으로 고향을 떠나 패션모델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째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기본적인 찌개류는 물론 카레 등 둥지남의 기본 식단 조리법은 섭렵했다. 오랫동안 집에서 직접 해먹다 최근엔 쉬고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값싸고 괜찮은 밥집을 발견해 주말에는 고민 없이 그곳에서 밥을 해결한다. ‘새벽집’의 7000원짜리 육회 비빔밥과 ‘현대정육’ 김치찌개가 주말 주식이다. 평소엔 동물성 먹이를 좋아한다. 가장 가까운 할인매장 위치 확인은 둥지남의 필수다. 영동대교만 건너면 할인매장이 있다. 심심하면 차를 몰고 할인매장 곳곳을 어슬렁거리며 어떤 상품이 있는지 ‘아이쇼핑’하는 게 취미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볼 수 있다”는 실용적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트 즐겨도 주말에는 집에서 놀기
행태 : 평일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 약속이 있지만 주말에는 되도록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 만나는 여자친구와 가끔 외식을 하지만, 주로 집에서 논다. 대형 브라운관으로 영화를 보거나, 3000장에 달하는 시디, 장르 불문한 책들이 놀잇감이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그 남자 이름은 미스터 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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