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기자가 체온기로 신종 플루에 걸린 큰딸(수아· 맨 오른쪽)과 작은딸(아란·가운데)의 귓속 온도를 재고 있다. 체온이 37.8도 이상이고 기침, 콧물, 재채기 등의 증상이 1개 이상 나타나면 신종 플루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즉시 가까운 병·의원에 가야 한다. 부모가 수시로 자녀의 체온을 측정하고, 호흡기 증상 유무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 신종 플루의 감염과 확산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건강2.0] 두 아이 엄마 김미영 기자의 ‘생생 퇴치기’
두 아이 가정, 빠른 격리조처 필수
‘확진’ 아이 마음 껴안기도 큰 치료
두 아이 가정, 빠른 격리조처 필수
‘확진’ 아이 마음 껴안기도 큰 치료
신종 플루에 대한 불안감이 공포를 넘어 집단 광기 수준입니다. 바이러스 자체보다 ‘두려움’의 확산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습니다. 매년 계절독감 사망률에 비하면 64명(고위험군 53명·사망률 0.04% 미만)의 사망자를 낸 신종 플루는 그나마 양호한 편인데도 말입니다.
혹시 우리 스스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저 역시 5살(54개월), 2살(11개월) 된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이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타미플루 복용하면 끝’이라고 하지만, 부모 맘이 어디 그런가요?
제 자녀가 초등학생 이상만 되어도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프면 아프다 호소하고, 타미플루도 곧잘 먹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기들은 다릅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의 강도를 표현하지 못한 채 울고, 떼를 씁니다. 밥도 분유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안아 달라 보챕니다. 심지어 타미플루 먹기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발을 동동 굴려 보신 적 없으세요? 전 그랬거든요. 그래서 써봤습니다. 영·유아 신종 플루 퇴치기입니다.
38.9도 비상!…“확진되었습니다 ”
11월3일(화)
“따르릉~” 늦은 밤, 전화벨이 울렸다. 첫째 딸 수아의 유치원 선생님이다. “오늘 낮 원생 한 명이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그동안 신종 플루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다. “설마 했는데…” 그게 ‘내 집 불’이 되고만 순간이다. 이번 주말까지 수아를 유치원에 안 보내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집에서 수아를 돌보기로 했다.
11월6일(금)
잠에서 깬 수아의 두 볼이 벌겋다. 귓속 온도를 재보니, 38.9도다. 이런! 비상이다. 서둘러 남편을 깨웠다. “수아가 열이 나네. 근처 거점병원에 데려가줘! 난 출근해야 해. 미안!” 콧물과 함께 발열 증상이 있는 수아는 신종 플루 확진검사(RT-PCR)(①) 후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 진료비가 총 14만5000원인데, 이중 검사료만 13만2500원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7만7000원을 제외한 7만2500원을 냈다. 허걱, 보건소에서 공짜로 신종 플루 확진검사를 안 해주나?(②) 돈 없는 사람만 낭패다!
회사에 상황을 알렸다. 퇴근 뒤 둘째 딸 아란이를 친정집으로 피신(?)시켰다. 수아의 격리 치료를 위해서다. 나와 아란이는 친정에, 남편이 집에서 수아의 격리 치료를 전담키로 했다. 수아는 이날 저녁부터 타미플루를 복용했다. 잘 넘기고, 밥도 잘 먹고, 평소처럼 잘 논다고 한다.
11월7일(토)
열이 그대로다. 37.5~39도 사이다. 밤새 남편은 수아의 이마에 물수건을 대주었다. 지친 남편이 아침 일찍 물었다. “해열제 먹일까?”(③) “글쎄…. 한 번은 괜찮겠지?”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오전부터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휴우.
“아빠, 나 신종플루 걸려서 죽어?”
11월8일(일)
“아빠, 나 죽어?” 수아가 대뜸 남편에게 물었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죽어?” “수아 신종 플루 걸려서 이제 죽어. 그리고 아빠랑 엄마, 이제 수아랑 뽀뽀하지 마.” 남편은 당시 뒤통수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심어줬던 것을 반성했다.
수아는 이날 오전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수아는 “내가 아프니까 엄마와 아란이가 집에 안 온다”며 펑펑 울기까지 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④) 아란이를 친정집에 놔둔 채 혼자 서울로 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11월10일(화)
“언니, 아란이가 어젯밤부터 기침을 심하게 해.” 동생의 전화다. 새벽 6시. 괜히 짜증이 솟았다. 출근하자마자 부모님께 전화해 “당장 인근의 거점병원에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아란이는 열이 없다. 대신 기침과 콧물이 있다. 신종 플루의 10~20% 정도가 발열 증상 없이 온다고 하니 안심 불가! 의사는 타미플루를 처방해줬다. 신종 플루 확진검사도 했다. 발열 증상이 없었기 때문일까? 전액 본인부담금으로 청구돼 진료비가 15만5000원이다.(⑤) 아란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친정까지 신종플루가 퍼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날 저녁부터 아란이도 타미플루를 복용하기 시작했다.(⑥)
11월11일(수)
걱정이다. 아란이가 타미플루를 못 삼킨다. 울다가 30분 전에 먹은 분유까지 모조리 토해냈다. 부작용 때문일까?(⑦) 두차례 더 시도했으나, 역시나 곧바로 구토. 결국 타미플루를 먹이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 토하면 어쩌지?(⑧) 약을 먹일 다른 방법은 없을까?(⑨)’ 다행히 저녁 타미플루 복용은 성공!
11월12일(목)
아란이는 신종 플루 음성이다. 한시름 놓았다. “지금까지 3번 토했고, 3번 타미플루를 먹였는데 어떻게 할까요?” 의사는 “더 이상 타미플루를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5일치 다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⑩) 아란이의 타미플루 복용을 중지시켰다.
11월13일(금)
수아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유치원에 보낼 계획이다. 타미플루를 다 복용했고, 호흡기 증상도 거의 없다.(⑪) 아란이는 오늘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일주일 동안 남편은 수아의 격리치료 일지를 남겼다. 시간마다 체온, 컨디션, 섭취한 음식, 행동과 말 등을 충실히 기록했다. 이 때문에 중증(⑫) 여부 판단이 쉬웠던 것 같다.
신종 플루 예방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우리 딸들도 맞아야 하나?(⑬) 신종 플루 관련 궁금증이 생겼을 때 절대 자의적으로 판단해 처치하면 곤란하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588-3790)는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도움말: 질병관리본부 질병관리과 이한성(감염내과 의사·연구원),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동수 교수
첫째딸 확진…둘째딸 격리…‘신종플루 10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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