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구름 위의 감자

등록 2010-01-20 21:13수정 2010-01-22 15:38

요리사 김신이 만든 <매시트포테이토>. 박미향 기자
요리사 김신이 만든 <매시트포테이토>.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배고픈 수습 요리사의 혀를 녹인 매시트포테이토
내가 감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맛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 주전부리를 쉽게 사 먹을 수 없었다. 가끔 종로 길거리에서 보던 토스트는 어린 식탐을 자극했다. 음식에 엄격했던 외할머니는 간식 투정을 할 때마다 감자를 쪄 주셨다.

일본 요리 유학 시절 처음 일했던 곳이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1990년대 초 ‘식당계의 격전장’이라 일컬어지던 도쿄의 가구라자카. 지금 많은 한국 블로거들이 “돌담길이 사랑스러워요”라며 “사진은 퍼가시면 안 되삼”이라고 찬사를 던지는 바로 그 예쁜 거리 구석에 ‘라비튀드’(L’habitude)라는 비스트로(편안한 분위기의 작은 식당)에 내가 있었다. 견습으로 불리는 접시닦이라 요리는커녕 프라이팬과 접시를 닦는 게 일의 전부였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열아홉 살 야마시타란 어린 친구가 말을 걸었다.

“기무상…고레, 다베테모 다이조부데스.”(김상, 이거 먹어도 돼요) 뭐라고? “한번 드셔 보세요”도 아니고 대뜸 “먹어도 된다”니…. 그가 내민 건 다름 아닌 으깬 감자(매시트포테이토)였다. 일본 주방은 인심이 박하다. 음식을 견습에게 주지도 않고 몰래 먹을 수도 없다. 항상 배고프던 나는 ‘소 안심이라도 맛보나’ 싶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건 감자!(기껏 으깬 감자 한 국자에 생색은) 그러나 먹고 싶지도 않던 으깬 감자가 나를 요리사로 만들어 줬다.

접시 닦던 손을 행주에 훔치고 한 줌 떠먹은 야마시타의 감자는 사르르 녹았다. 버터와 크림이 만든 부드러움은 검은 흙 속의 감자를 구름 위로 올려놓았다. “어떻게 만드는 거니?” 야마시타는 그러나 내 질문에 짐짓 모른다며, 오너 셰프가 만들었다고 말을 돌린다. 요리는 배우는 게 아니라 훔치는 것이라 했던가. 그날 밤 이후 나는 바쁜 저녁시간, 설거지통에 쌓인 손님 접시에 남은 으깬 감자와(워낙 맛있어 묻어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소스를 몰래 닦아 먹기 시작했다.(더럽지 않다. 배고픈 유학 생활의 일상이다!) 그 맛이 혀와 머리에 기억되기 시작됐다. 지겹던 설거지가 즐거웠다.

매시트포테이토를 유명하게 만든 건 프랑스의 요리사 조엘 로뷔숑이다. 1980년대에 포스트 누벨 퀴진의 기수로 영국의 고든 램지, 뉴욕의 에릭 리퍼트 등 다수의 스타 셰프를 양성한 이른바 ‘요리사의 요리사’. 25개의 <미슐랭 가이드> 별점 레스토랑을 보유한 조엘 로뷔숑의 음식 철학은 의외로 “심플리 프렌치”(simply French)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조리 방법을 추구한다. 인구 10만도 안 되는 시골에서 태어났기에 재료 본연의 맛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찍 깨달은 건 아닐까? 조엘 로뷔숑의 매시트포테이토를 당신도 만들 수 있느냐고? 당연히!

으깬 감자(Pommes de terre Puree)


◎ 재료 : 1㎏ 메이퀸 감자(이른바 남원감자), 250g 가염 버터(직방 1㎝ 정도로 깍둑썰기), ¾~1 ¼ 컵 우유(한번 끓인 후 보온), 꽃소금 약간.

◎ 만드는 법

1. 감자는 껍질째 30분 이상 삶거나 찐다. 뜨거울 때 감자 껍질을 벗긴다. 아주 뜨거운 상태여야 한다.

2. 감자를 2~3등분한 뒤에 라이서(감자 으깨는 조리도구)로 으깨어 내린다. 절대 차가워지면 안 된다.

3. 버터를 한 개씩 감자 퓌레에 넣어 잘 섞는다.

4. ¾ 컵 우유를 조금씩 넣으며 감자와 잘 섞이게 한다.

5. 소금으로 원하는 만큼 간을 하고, 짜면 남은 우유로 희석시킨다.

6. 다시 한번 고운 체에 걸러 더 부드럽고 윤기 있는 매시트포테이토를 만든다.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