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읍 용두산 자락 언덕에서 만난 오징어덕장.
[매거진 esc] esc 워킹맵 18. 포항 구룡포와 일본인가옥 거리
포항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조선소·시장·일식가옥거리 거쳐 사라끝 방파제까지 5㎞
포항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조선소·시장·일식가옥거리 거쳐 사라끝 방파제까지 5㎞
포항 영일만을 감싼 호랑이 꼬리 아래쪽에 구룡포가 있다. 한겨울 과메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골목마다 집마다 과메기 덕장이 즐비하다. 호미곶에서 해맞이하고, 호랑이 꼬리 해안선 따라 돌며 바닷바람 즐긴 관광객들이 오며 가며 찬 소주에 과메기 쌈을 싼다. 지금 구룡포엔 대게·오징어도 지천이다. 먹을거리 못잖게 볼거리도 지천인데,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 열 마리 용이 승천하다 아홉 마리만 올라갔다 해서 구룡포다. 남은 한 마리 용처럼, 구룡포 거리는 포구를 감싸고 길게 굽이친다.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출발해 조선소·구룡포시장과 일식 가옥 거리 거쳐 사라끝 방파제까지 걷는다. 나흘이면 대형선 분해도 뚝딱 읍사무소 앞마당에, 작살로 고래를 쏘아 잡던 ‘고래총’① 두 개가 전시돼 있다. 구룡포는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되기까지 중요 포경기지 중 한 곳이었다. 포경기지의 명성도 고래 개체수 감소와 함께 사라지고 녹슨 작살포 두 개로 남았다. 용두산 쪽으로 길 건너 ‘바르게 살자’ 빗돌을 지나 병포삼거리에서 벚나무길로 내려간다. 봄이면 눈부신 꽃터널을 이룬다는 길이다. 병포리(병리)는 본디 자래(자라)골이다. 마을에 자라를 닮은 바위가 있어 자라골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잘못 해석해 자루 병(柄)자를 쓰는 병포(柄浦)가 됐다. 용두산 자락 수산물 가공공장 즐비한 언덕길을 오른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오징어 덕장②이 펼쳐진다. 매서운 바람 속에 오징어를 내거는 손길이 분주하다. 조릿대숲 지나 언덕길을 내려가면, 짙푸른 바다를 안고 돌아가는 구룡포항 자태가 일목요연하다. 내려서면 ‘배 공장’, 조선소③ 자리다. 지난해 마지막 목선을 만든 뒤 지금은 배 수리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영덕에서 깨진 뱃머리를 고치러 왔다는 광명호 배 주인이 무쇠난롯불을 쬐며 말했다. “여 기술자들이 실력이 아주 좋심더. 딴덴 인력도 모지래고.” 배를 수리하는 실무는 외국인 노동자들 차지다. 새로운 배가 태어나던 조선소 옆에, 낡은 배가 생애를 마치는 폐선장④이 있다. 거대한 배에서 뜯고 잘라낸 녹슨 살점들을 포클레인으로 끌어모아 옮겨 쌓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배는 선령 20여년 된 79t짜리 철선이죠. 한 척 해체하는 데 나흘이면 충분합니다.”(고은종·42·고물처리업체) 폐선장 옆 산 밑엔 배의 안전을 기원하며 용왕신에게 제를 올리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다. 막걸리통 몇 개 나뒹구는 낡은 사당 분위기가 폐선장을 닮았다. 언덕길로 올라 구룡포여중·고 입구 거쳐 마라톤 동호인 숙소인 ‘마징가 마라톤 쉼터’ 앞에서 오징어 트롤선 부두로 내려선다. 잡어 어판장⑤ 쪽으로 걷는다.
‘땡’ 소리와 함께 대게 경매가 시작됐다. 잡아온 대게를 바닥에 깔고 종을 쳐서 경매가 준비됐음을 알린다. 마이크를 든 경매사와 남모르게 옷으로 가린 채 입찰가를 표시하는 구매자들의 바쁜 손길·눈길도 잠시, 불과 몇 초마다 한 무더기씩 낙찰이 이뤄진다. 어판장 주변에서 박달대게 중급 1마리 4만~5만원, 속이 덜 찬 물게 작은것 1마리 4000~5000원. 오전 햇살 가득한 2층 노을다방 쪽으로 큰길을 건넌다. 58년째 복어탕을 끓인다는 함흥식당 지나 구룡포시장⑥ 골목으로 들어간다. 가자미든 게든 새우든 다 튀겨 준다는 원조튀김·오뎅집 지나면 40년째 한자리에서 소면·중면·우동 등 국수를 뽑아내고 있는 제일국수공장이 나타난다. 국수 다발을 한 움큼씩 집어 묶어내는 주인 이순화(72)씨의 손길이 날래다. 40년 전엔 이 골목에 국수공장이 아홉 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제일 늦게 시작한 제일국수만 남았다. 30년째 간판도 없이 물국수만 파는 할매국수집도, 40년 넘게 푸짐한 해물국수(일명 모리국수)를 팔아온 까꾸네 모리국수집도, 50년째 국수·찐빵을 파는 철규분식도 다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사다 쓴다. 4인분 한 묶음에 2000원.
50년 된 찐빵집 철규분식의 찐빵·단팥죽·국수. 구룡포초등학교 앞에 있다.
포항시 구룡포읍 구룡포중·종합고등학교 앞 길가에 선 사라말(사라끝)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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