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한사발 인센티브
[매거진 esc] 하이스코트 킹덤과 함께하는 영업맨 사연 공모전
내 우렁찬 목소리와 ‘무 다리’를 팔아 국민의 가계부를 사는 나는 통계청 조사원이다.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영업맨과 가계부 한 권이라도 더 걷어 통계를 내야 하는 이 일은 발품 팔아 먹고산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 직업은 월급이 얼마인지, 집은 전세인지, 오늘은 콩나물을 샀는지까지 속속들이 파헤치는 일이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주부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수첩은 곧 아줌마의 치부일지 모른다. 그 마음을 알기에 초인종을 누르며 “계세요”라고 외칠 땐 나랏일이기는 하지만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미안함은 온데간데없고 독기만 치솟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이었다. 삼복이 아니라 육복, 구복쯤 될 것 같은 더운 날, 신경질적으로 열리는 현관문(발품 팔아 먹고산 지 10년이라 이제 문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이 파악된다). 내 큰딸 또래의 새댁이 “방금 잠든 아이가 초인종 소리에 깼다”며 면박을 줬다. 마음이 상했다.
가끔 정이 뜨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조용한 마을의 어르신 댁을 방문할 때 일이다. 이럴 때 난 소시지를 먼저 챙긴다. 덤벼드는 시골 똥개 때문이다. 낯익을 때가 됐을 법한데 죽어라 짖어대는 것 보면 사람을 경계해서가 아니라 그리워서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개가 그 정도인데 사람은 오죽하랴. 개가 소시지를 게걸스럽게 먹을 즈음이면 내 고객이 나타난다. 항상 날 “통계청 선상님”이라 불러주시는 어르신은 밥솥에서 따뜻하게 데운 두유를 주신다. 그 두유는 꽁꽁 언 손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치인 마음마저 녹인다. 날 조사원이 아니라 외로운 늙은이의 말벗으로 대해주시는 정 많은 어르신.
조사에 응해 주신 대가로 드리는 답례품을 못 미더워 못 쓰시겠다며 낡은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 오시는 욕쟁이 할머니도 있다. 위풍당당한 풍채의 할머니가 등장하시면 조사원 중 맏언니인 나는 얼른 커피부터 탄다. 연륜으로 다져진 내 입담으로 한참 설득을 해야 주섬주섬 다시 보자기를 싼다. 이럴 때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얄미운 새댁 답례품이라도 빼 더 얹어 드리고 싶다.
할아버지의 밥솥 두유와 욕쟁이 할머니의 구수한 욕을 인센티브로 받고 일하는 난 내 마음의 통장에 차곡차곡 인센티브를 적립하러 오늘도 낡은 구두 또각이며 초인종을 누른다. 언젠가 구두점 사장님을 조사구로 둔 핑계로 구두 한 켤레 장만할 내일을 위하여.
이경훈/강원도 강릉시 교2동, 일러스트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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