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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지는 비행접시의 통쾌함

등록 2010-03-17 19:47수정 2010-03-17 20:22

경기도종합사격장 클레이사격 트랩 사대에서 한 여성 사수가 떠오르는 접시(피전)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경기도종합사격장 클레이사격 트랩 사대에서 한 여성 사수가 떠오르는 접시(피전)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1초도 안되는 순간에 시속 40km의 물체를 맞혀야 하는 클레이사격을 해 보니…
경기도종합사격장 아메리칸 트랩. 사격조끼를 입고 헤드폰식 귀마개를 찬다. 받아든 3.7㎏짜리 일본제 미로쿠 트랩용 산탄총 ‘12게이지 상하쌍대’가 생각보다 묵직하다. 7과 2분의 1호 탄알 300여개가 들어찬, 길이 7㎝의 플라스틱 원통형 실탄 25발을 받아 조끼 왼쪽 주머니에 넣고, 유리벽 안 사대로 들어선다. 안전관리팀 코치가 ‘총구는 전방’ 등 주의사항을 일러준 뒤 말했다.

폭발음·화약냄새와 함께 어깨에 강한 충격

클레이사격용 실탄. 안에 300~400개의 작은 탄알이 들어 있다.
클레이사격용 실탄. 안에 300~400개의 작은 탄알이 들어 있다.

“자, 허리를 약간 숙이고 어깨에 개머리판을 붙이고 얼굴을 대세요. 총신 끝이 보이죠? 접시가 날면 따라가다 총신과 접시가 수평을 이룰 때 당기는 겁니다.”

사격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아’ 하는 소리를 내면, 코치가 손에 든 버튼을 눌러 피전을 날린다. 사대 15m 앞 땅속엔 오렌지색 피전이 차곡차곡 쌓인 방출기가 설치돼 있다. 피전은 시속 40여㎞ 속도로 튕겨 나가 총구 겨냥 방향으로 30~40m를 비행한 뒤 떨어진다. 느려 보이지만, 사거리 내에서 쏠 수 있는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는다. 꺼덕대는 총구를 진정시킨다. ‘쏘아라. 쏘으리로다.’ 몸을 총으로 객관화시켜 표현한 이상의 시 ‘총구’가 느껴진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귀마개를 통해서도 강력한 폭발음이 들려오고, 화약 냄새와 함께 어깨에 강한 충격이 느껴진다.

두 눈 뜨고(클레이사격에선 한 눈을 감지 않는다) 쏘는 총인데, 지름 11㎝의 접시는 탄알 300여개가 형성한 30㎝ 넓이의 탄 그물을 벗어나 유유히 비행하다 떨어진다. 코치는 “안정된 자세가 첫째, 정확한 조준이 둘째”라고 조언했다. 둘쨋발도 빗나가자 그는 자세·조준 얘기를 접었다. “감으로 쏴보라”고 주문한다.

셋째, 넷째, 다섯째 모두 적중. 초록색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오렌지색 접시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다. 군대 시절 사격과는 또다른, 묘한 통쾌감이 느껴진다. 2발씩 장전해 쏜 뒤 총을 척 꺾으면, 자욱한 연기와 함께 탄피들이 멋들어지게 튀어나온다. 25발 중 겨우 13발을 맞혔다. 코치가 “첫 사격에 그 정도면 수준급”이라며 엄지를 추켜올려 준다.

◎ 클레이사격, 피전, 접시

클레이사격, 피전, 접시
클레이사격, 피전, 접시

클레이사격은 영국 귀족의 호사스런 사격 게임에서 유래했다. 1856년 헌팅필드라는 이가 새장에 비둘기(피전)를 가뒀다가 문을 열어 날리면 쏘아 맞히는 게임을 고안했다고 한다. 비난 여론이 일자 표적을 유리알로 대체했다가 1880년 미국에서 진흙을 빚어 만든 표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클레이사격이란 이름이 여기서 비롯했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전세계로 번져나갔다.

오늘날 사용되는 표적은 점토를 구워 만든 지름 11㎝, 높이 2.5㎝, 무게 105g의 둥근 접시 모양으로, 이름은 여전히 피전으로 통용된다. 색상은 오렌지색·흰색·검은색 세 가지. 80년대까지 흰색 피전을 많이 썼으나, 요즘엔 선명성이 뛰어난 형광 오렌지색을 주로 쓴다. 사막 지역 사격장에선 하늘을 배경으로 쏘기 때문에 검은색 피전을 쓴다고 한다.

클레이사격 사대 총기보관대에 진열해 놓은 산탄총들.
클레이사격 사대 총기보관대에 진열해 놓은 산탄총들.

달아나는 오리와 날아가는 비둘기를 상상하며

◎ 산탄총, 실탄

클레이사격용 총은 대부분 ‘상하쌍대’(총신이 상하로 두개인 산탄총)를 쓴다. 트랩용 총은 총신이 30인치, 스키트용은 이보다 짧은 28인치 정도의 총을 사용한다. 총신이 길면 사거리가 길다. 선수들은 대부분 유명한 이탈리아제 페라치·베레타 총을 사용하는데, 아메리칸 트랩에선 일본제 미로쿠나 벨기에제 브로닝을 갖춰놓고 있다. 총값은 선수용 신형의 경우 800만~1000여만원에 이르고, 미로쿠·브로닝은 300만~400만원대 정도다.

실탄은 종목에 따라 들어가는 납탄알 수가 달라진다. 트랩용 실탄엔 300~330개, 스키트용엔 400개 정도의 좁쌀알만한 탄알이 들어간다. 탄알이 굵을수록 사거리는 길어진다. 실제 수렵의 경우 꿩·오리 사냥엔 100~150알, 고라니 사냥엔 12~15알, 멧돼지 사냥엔 9~12알이 들어간 실탄을 쓴다고 한다.

산탄총, 실탄
산탄총, 실탄

탄피는 재사용하지 않고 전량 폐기처분한다. 재활용 과정에서 사고 발생이 잦고, 개인 재활용을 막기 위한 조처다. 사격장 전방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납탄을 사용하는 데 따른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총알이 시멘트벽에 부딪혀 떨어지면 한데 모아 수시로 수거작업을 벌인다고 한다.

◎ 트랩, 더블트랩, 스키트, 아메리칸 트랩

클레이사격 경기는 트랩과 더블트랩, 스키트로 나뉜다. 트랩은 15m 전방 땅속 방출기에서 솟아오르는 접시를 쏘아 맞히는 경기다. 전방 45도 각도 안에서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시속 80~90㎞)로 접시가 튀어나오므로 정신집중이 특히 필요한 종목이다. 약 70m를 날아가는 동안 한발로 맞히지 못하면 재사격을 할 수 있다. 더블트랩은 전방에서 약간 느린 속도로 떠오르는 두 개의 접시를 맞히는 경기.

총을 꺾어 한번에 두발씩 장전한다.
총을 꺾어 한번에 두발씩 장전한다.

스키트는 사대 양쪽에 설치된 지상의 시설(하우스)에서 튀어나와 가로질러 날아가는 접시를, 8개 포지션을 이동하면서 쏘아 맞힌다. 트랩은 겨냥하고 있다가 쏘지만, 스키트는 개머리판을 허리에 내리고 있다가 접시를 본 뒤 총을 겨눠 맞혀야 하므로 특히 순발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경기도종합사격장 최현주 안전관리팀장은 “트랩은 날아올라 전방으로 달아나는 오리를, 스키트는 좌우에서 날아가는 비둘기를 잡는 사냥을 상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메리칸 트랩은 미국에서 개발된 초보자용 클레이사격이다. 접시를 좌우로 띄우지 않고, 정면(0도) 방향으로 고정시켜 느리게(시속 40㎞) 날린다. 최 팀장은 “날 잡아잡수 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천천히 날아가는 오리 격이지만, 초보자들로선 이걸 맞히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엔 20~40대가 동호회 주축 이뤄

◎ 초보자, 아마추어대회

아메리칸 트랩(A사대)에서 충분히 기량을 닦은 뒤 트랩이나 스키트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종목을 골라 집중 연습하면 각종 대회를 통해 선수로 진출할 수도 있다.

인터넷 클레이사격 동호회나 지역별로 있는 전국생활체육사격연합회 등에 가입하면 동호인들과 정보를 얻으며 함께 활동할 수 있다. 단체로 사격장을 이용하면 할인 혜택도 따른다. 클레이사격이 호화 취미로 인식되던 예전엔 40~50대 동호인들이 많았으나, 대중화하면서 요즘엔 20~40대가 동호회의 주축을 이룬다.

클레이사격 트랩 사대.
클레이사격 트랩 사대.

인터넷동호회 프리헌터 운영자 ‘히든’(41)은 “최근엔 20대 초반의 남녀 회원 가입이 느는 추세”라며 “번개 때는 10라운드(1라운드 25발) 이상을 돌 정도로 사격에 푹 빠진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흔히 사격 수준에 따라 B급에서부터 AAA급까지 등급을 매긴다. B급은 초보자, A급은 25발 중 15~20발을 맞히는 수준, AA급은 20발 이상 수준으로 아마추어 최상위 등급이다. AAA급은 전·현직 국가대표급 수준으로, 25발 중 평균 24~25발 적중을 유지하는 등급이다.

2008년 일본 나리타대회 스키트 부문에서 개인전 3위에 올랐다는, 클레이사격 동호회 화랑클럽 회원 최무송(60)씨가 말했다.

“웬만큼 집중력·민첩성을 갖춘 분이라면 집중훈련을 통해 아마추어대회 입상을 노려볼 수 있어요. 개인총기를 허가받아 구입한다면, 해마다 돌아가며 개방되는 수렵 허가지역에서 야생조류 포획도 가능하고요.”

해마다 전국생활체육사격연합회 주최의 아마추어사격대회가 10차례가량 열린다. 오는 3월27~28일 경기도종합사격장에선 1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올해 첫 대회인 서울시사격연합회장기대회가 벌어진다. 클레이사격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람하며 사격 상식도 배울 수 있는 자리다. 대회 중에도 일반인용 아메리칸 트랩 이용이 가능하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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