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슬기와 민의 ‘리스트 마니아’
백마스킹(backmasking)이라는 녹음 기술이 있다. 정상적인 재생 방향과 반대로 소리를 녹음하는 기법이다. 이렇게 녹음된 구절은, 올바로 재생하면 뜻 없는 소리로 들리지만, 거꾸로 틀면 유령처럼 나타난다. 대중음악에서는 1960년대에 비틀스가 이 기술로 음향효과를 실험했다. 80년대 미국에서는, 백마스킹이 악마의 메시지를 전파한다며 기독교 단체가 음반을 불태우는 등 시위를 벌였고, 몇몇 주에서는 백마스킹을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등이 백마스킹 논란을 일으켰다. 역재생이 불가능한 시디(CD)가 등장하며 그런 논쟁도 수그러들었지만, 간단한 소프트웨어로 디지털 음원을 역재생할 수 있는 요즘, 백마스킹은 새로운 관심거리가 될 만하다.
백마스킹 메시지는 실제로 악마를 예찬하거나 음란한 욕설을 하는 예가 많다. 그러나 몇몇은 백마스킹 기술과 그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의식하며 나름대로 흥미로운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폴은 죽었어.”- 비틀스, <너무 피곤해>(1968). 1960년대 말,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발표된 여러 비틀스 노래를 거꾸로 틀면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결국 헛소문으로 판명났지만, 현재 폴 매카트니가 얼굴만 닮은 가짜라고 믿는 이는 여전히 많다.
“뒷마당에 앵무새를 묻었어. 앗, 너 음반을 거꾸로 틀고 있구나. 조심해, 전축 바늘이 망가질지도 몰라.”- 비피프티투스(B-52’s), <당신의 정신을 통한 우회로> (1986). 백마스킹 메시지의 ‘비밀’은 별게 아니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닭똥과 닭죽은 구별할 수 있다.”- 제이 가일스 밴드, <앤초비는 넣지 말아 주세요>(1980). 그럼, 닭똥집은?
“순쇠고기 패티 두 장과 스페셜 소스, 상추, 치즈, 피클, 양파에 참깨 뿌린 빵까지.”- 엘세븐(L7), <검은 옷을 입은 소년들>(2000).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 이야기다.
“스탠리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 같은 분서갱유 지지자를 위해.”- 로저 워터스, <완벽한 의미>(1992). 여기에서 ‘스탠리’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을 가리킨다. 그 전에 워터스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온 숨소리를 음반에 쓰게 해달라고 큐브릭에게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신들의 미신적이고 편협한 편집증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터헤드, <악몽/꿈꾸는 시간>(1991). 이 메시지는 이른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대중음악을 집요하게 문제 삼던 미국의 사설 검열 단체 ‘학부모 음악 연구소’(PMRC)를 겨냥했다.
“사랑해요, 산타! 크리스마스 왕자님…”- 사운드가든, <665>(1988). 백마스킹과 ‘사탄’ 메시지 논쟁을 패러디한 게 분명하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신다. 전화드려.”- 프란츠 퍼디넌드, <마이클>(2004). 흔한 백마스킹 메시지와 달리 긍정적인 내용을 담으려 했다.
“와, 너 정말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구나.”- 위어드 알 양커빅, <나는 래리를 기억해>(1996).
최슬기·최성민/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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