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통 프랑스 빵집 ‘폴’의 크루아상과 바게트 등(왼쪽 사진) 2. 독일 빵집 ‘악소’의 대표적인 빵들(오른쪽 위) 3. 독일의 대표적인 간식 빵인 프레첼(오른쪽 아래)
[매거진 esc] 정통 독일빵·프랑스빵·일본빵을 파는 베이커리들
한국에 빵이 들어온 지도 벌써 120년이다. 구한말 한국 최초의 호텔을 선보이기도 했던 독일인 손탁이 정동구락부에서 빵과 커피로 고종의 심란한 마음을 위로했던 것으로부터 역사는 시작된다. 해방과 함께 문을 연 고려당, 태극당, 뉴욕제과는 제과점의 전성시대를 주도했고, 1970~80년대 삼립식품·샤니·기린의 경쟁은 값싼 빵을 대량공급해 보름달빵과 호빵 등을 ‘국민 간식’으로 자리잡게 했다. 지금은 파리바게뜨·크라운베이커리·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들의 군웅할거 시대. 동네 빵집들을 몰아내고 전국 구석구석까지 들어온 이들은 빵 맛의 표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더 많은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보단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빵집이 늘고 있다. 정통 독일 빵과 프랑스 빵, 일본 빵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유혹하는 곳을 소개한다.
◎ 독일 빵 맛 그대로 ‘악소’
‘악소’에 들어서면 세가지 점에 놀라게 된다. 첫째는 목소리만 들으면 독일인으로 착각할 만큼 놀라운 허상회 사장의 유창한 독일어 실력이다. 허 사장은 건축을 공부하러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독일 빵의 매력에 빠져 제빵까지 공부하고 돌아왔다. 둘째는 ‘한국에 이렇게 많은 독일인이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독일인 손님들의 행렬이다. 사장을 인터뷰하는 40여분 동안 독일인 10여명이 다녀갔다. 셋째는 거칠고 딱딱할 것이라는 독일 빵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빵의 속살이 촉촉하고 부드럽다는 점이다.
원래는 덕성여대 앞에 문을 열었다가 재한 독일인들의 요청으로 2005년 한남동으로 자리를 옮긴 악소는 독일어로 ‘아 그렇구나’라는 뜻의 감탄사다. 독일에서 빵은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공깃밥’. 밥에 기름이나 설탕을 넣지 않듯이, 독일 빵에도 기름이나 설탕이 가미되지 않는다. 또 밥에 반찬을 곁들여 먹듯이 독일 빵은 치즈나 햄, 살라미 등을 곁들여 먹는다. 하지만 맛있는 ‘밥’은 맨밥으로도 감칠맛이 있듯, 독일 빵도 처음엔 밋밋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오는 게 특장이다.
“어떤 빵이 가장 맛있어요?”라는 질문이 가장 곤혹스럽다는 허 사장. 그건 마치 “어떤 밥이 가장 맛있어요?”라는 질문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흰쌀밥을 좋아할 수도 있고 보리밥 또는 잡곡밥을 선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좋아하는 곡물 취향에 따라 흰밀빵, 호밀빵, 잡곡빵 등을 골라 먹으면 된다는 뜻.
빵이 간식이기 때문에 달콤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선입관이 있는 한국에서 밥처럼 담백한 빵으로 승부를 본다는 건 사업적으로 위험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사장의 철학은 흔들림이 없다. “독일 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을 변형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한국인들에게 빵을 하나 더 팔기보단 독일 문화의 일부로서 독일 빵을 설명해주는 데 더 열정적이다. 한마디로 사업가라기보단 독일 문화 전령사에 가깝다. 독일 대사관이나 문화관이 행사를 열 때면 허 사장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격대는 크기에 따라 1000~7000원. 빵에 햄이나 치즈를 골라서 끼워먹을 경우 2400~4300원. 위치는 한남대교 북단 리첸시아 건물 1층. 평일 운영시간은 아침 8시~오후 6시. 토요일·공휴일은 아침 8시~오후 3시. 일요일은 휴무. 주차 가능. (02)794-1142. ◎ 120년 전통 프랑스 빵의 대명사 ‘폴’
파리의 고급 카페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폴에 들어서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국인들마저도 프랑스인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난다. 샹들리에부터 벽지·테이블·컵·메뉴판까지 프랑스에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폴은 1889년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가족사업으로 시작해 현재 25개국에 450여곳의 매장을 두고 있는 유서 깊은 빵집이다. 일본에도 매장이 20곳 있고 중국에도 5곳이 성업중이다. 사업차 프랑스를 자주 찾았다 ‘폴’의 빵 맛에 반해 한국 사업권을 따낸 이헌재 대표는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 1호점을 냈다.
폴의 원칙은 ‘100% 유기농 밀가루, 7시간 천연발효, 충분한 제조시간’이다. 인공적인 이스트를 쓰지 않고 밀가루 등 대부분의 식재료는 프랑스 본사의 전용 유기농 농장에서 공수해 쓴다. 전세계의 폴 매장은 인테리어부터 식재료, 레시피까지 동일해야 한다는 계약 원칙 때문이다.
대표적인 빵은 역시 바게트와 크루아상.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천연발효를 한 덕분에 곡물 맛과 향이 강하고 질감이 묵직하고 쫄깃쫄깃하다. 빵 외에 크레페·오믈렛 등 식사류도 판다. 조만간 압구정동과 서래마을에도 2·3호점을 낼 계획이다.
가격대는 빵은 3000~4000원대, 식사는 6000~1만9800원. 위치는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1층. 추석·설날 등 명절 연휴를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밤 10시까지 운영. 주차 가능. (02)2070-3000.
◎ 일본 빵이란 없다 ‘미루카레’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왔다가 빵집을 운영하게 된 일본인 사장 다카미 가나코는 다섯살 꼬마 때부터 슈크림을 만들었다는 제빵 실력만큼 한국어 실력도 뛰어나다. “한국 빵은 빵집마다 특징도 없고 다들 메뉴가 비슷해 실망했다”는 그에게 일본 빵의 정의는 “다양성”이다. 그래서 “일본 빵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빵집마다 맛도 특징도 메뉴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미루카레’의 빵을 ‘일본 빵’으로 정의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이 빵집의 특징은 사장이 먹고 싶은 빵 혹은 가족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빵을 만드는 것. “상업적으로 팔리는 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제가 먹고 싶은 빵을 만들어요. 그래서 방부제를 쓰지 않죠. 제가 먹는 거니까. 그래서 메뉴도 매일 달라요.” 하루는 녹차멜론빵, 하루는 딸기멜론빵, 하루는 메이플멜론빵, 이런 식이다.
일본 빵집이라는 닫힌 정의에 반대했지만, 그래도 일본 색을 감출 수 없는 메뉴들이 있다. 녹차멜론빵은 달콤쌉쌀하게 밴 녹차 맛이 일미다. ‘앙꼬’로 카레를 넣은 ‘카레 프랑스’는 밥 대신 간단한 요기도 될 수 있다. ‘명란젓’을 넣은 ‘명란젓 프랑스’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메뉴. ‘비리다’는 반응부터 ‘감칠맛이 난다’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가격대는 빵은 1800~2000원, 쿠키는 2500~3000원. 위치는 홍대 앞. 평일 오전 10시~저녁 8시. 일·월요일은 휴무. (02)3143-7077.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독일 빵 맛 그대로 ‘악소’
가격대는 크기에 따라 1000~7000원. 빵에 햄이나 치즈를 골라서 끼워먹을 경우 2400~4300원. 위치는 한남대교 북단 리첸시아 건물 1층. 평일 운영시간은 아침 8시~오후 6시. 토요일·공휴일은 아침 8시~오후 3시. 일요일은 휴무. 주차 가능. (02)794-1142. ◎ 120년 전통 프랑스 빵의 대명사 ‘폴’
120년 전통 프랑스 빵의 대명사 ‘폴’
일본 빵이란 없다 ‘미루카레’
일본인이 운영하는 ‘미루카레’의 녹차멜론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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