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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파마머리가 어때서?

등록 2010-05-19 17:12

아줌마파마
아줌마파마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아줌마파마 vs 올림머리




어렸을 때 꿈에 아빠가 나왔는데 보통때와 모습이 사뭇 달랐다. “나 머리 스타일 바꿨어”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아빠의 머리가 파마로 변해 있었다. <둘리> 마이콜보다 더 뽀글뽀글 풍성한 것이 딱 아줌마파마(아래)였다. 꿈이었지만 충격이었다. 분홍 보자기라도 씌워서 새로운 파마머리를 세상으로부터 숨겨야 한다, 아빠의 지휘력은 땅에 추락했다, 남들은 우습겠지만 나에겐 슬픈 일이라고 낙담하며 꿈에서 깼다. 그때 아빠의 지휘력이야 “집에 올 때 간식 사올까, 비행기를 태워줄까?” 정도였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파마를 한 남자는 지도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게다가 그이가 검찰총장이라면? 개인의 스타일은 국가 권위를 주제로 하는 ‘파마머리론’으로까지 번진다. 지난주엔 김준규 검찰총장의 곱슬머리가 문제였다. 일간지 1면에 ‘파마머리’라는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좋게 봐서 ‘강마에’ 정도였기에 망정이지, 아줌마파마였다면 큰일 날 뻔했다.

파마나 (논)하고 있으니 검찰 권위가 우스워진다는 소란에는 파마머리에 대한 편견이 숨어 있다. 파마머리가 어때서? 유럽 왕실의 일부 왕자들도 태생적 곱슬과 파마를 겸하고 있는데? 파마라고 모두 다 같은 파마는 아니다. 미스코리아 파마처럼 과시용 펌도 있지만 아줌마파마는 특히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머리카락에 힘을 빳빳하게 줘서 파마가 잘 풀리지 않게 오래가도록 하는 이 경제적인 파마는 라면 면발을 닮았다. 미장원 현장에선 머리통에 딱 달라붙은 채 탱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마발은 면발 불어나듯 풀어지며 효력을 잃는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음식 라면이 그렇듯, 아줌마파마는 다시 말면 된다.

올림머리
올림머리

아줌마파마 정반대편의 이미지를 이 사진에서 본다. 미술작가 송상희의 작품 <영부인 에이(A)>(오른쪽)는 한 여인의 자태를 담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정된 올림머리는 영부인 육영수씨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이 올림머리는 트레머리 전통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변하지 않는 권위와 단아함의 표상이다. 올림머리는 공이 많이 들어가지만, 인공적인 파마의 기술을 빌려 지지고 볶은 흔적이 전면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아줌마파마와 올림머리는 중년여성에게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확연히 다르다. 이 땅에서 아줌마파마가 뒷모습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집단 쌍둥이들처럼 거리를 채운다면 올림머리는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다. 1963년 9월19일치 <동아일보>는 육영수씨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다. “바깥분보다 훤칠한 키, 그녀가 좋아한다는 연분홍 마직 치마저고리, 점잖은 시뇽헤어스타일, 서른여덟치고는 훨씬 젊어 보이는 육영수 여사.” 올림머리의 한 갈래인 시뇽(Chignon) 스타일은 30대 후반의 여성을 자애로운 국모로 스타일링했다. 점잖은 올림머리를 머리에 얹고 보여줄 수 있는 국모의 행동은 우아할밖에.

‘헤어스타일 바꾸기’는 한 사회로 들어가기다. 아줌마파마를 사랑하는 아나운서나 곱슬머리 검찰총장을, 사회는 견디지 못하는 척한다. 헤어스타일은 괴력의 디자인이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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