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한겨레스럽지 않게 계속 긴장하란 말야”

등록 2010-05-19 18:40수정 2010-05-23 13:29

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왼쪽), 박찬일 요리사(가운데), 김형렬 호텔자바 이사(오른쪽).
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왼쪽), 박찬일 요리사(가운데), 김형렬 호텔자바 이사(오른쪽).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정석희·박찬일·김형렬 등 esc 대담자·필자들이 말하는 esc
“지난 3년 동안, esc 어땠나요?” 쿨하게 물었다. 아니, (테이블 아래 떨리는 다리를 꽉 잡고) 쿨한 척하면서 물었다.

발행 3돌을 맞아 esc에 관한 좌담회를 마련했다. 남 얘기 할 때는 그렇게 신났는데 막상 esc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들으려니 긴장되고 떨렸다. 신문이 자기 자신에 관한 평가 기사를 ‘대놓고’ 쓴다는 건 제법 민망한 일이다. 그렇지만 esc에 대한 정기점검을 통해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도 듣고,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는 그렇게 좋다는 비판도 들으면서 앞으로 더 재미있는 지면을 준비하고 싶은 욕심이 민망함을 앞섰다.

좌담회에는 esc 요리면에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연재를 하면서 요리면에 힘을 실어준 이탈리안 레스토랑 ‘누이누이’의 셰프인 박찬일(사진 가운데) 요리사와 엔터테인먼트면 방송 대담 ‘너 어제 그거 봤어’를 창간 초기부터 이번 개편까지 함께했던 정석희(왼쪽) 방송칼럼니스트, 지난 1월부터 여행면에 제목부터 도발적인 칼럼 ‘호텔에서 생긴 일’을 연재하는 김형렬(오른쪽) 호텔자바 이사가 함께했다.

정석희(이하 정) esc는 처음 시작할 때 품위 있는 척하지 않고 비(B)급을 지향하겠다고 했다. 그런 태도가 독자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태도와 시각으로 문화를 소개하니까 다른 느낌이었다. 재미있고 신선했다.

박찬일(이하 박) 창간호 1면이 만화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김형렬(이하 김) 만화가 들어갔던 창간호 1면 커버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였다. 재미와 관련된 항목이 주류문화라기보다 하위문화가 많았다. esc가 그런 하위문화를 다루고 응원해주면서 그런 문화가 주류로 올라왔다. esc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화적 코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한다. 사람들의 등을 긁어주는 구실을 해오지 않았나 싶다.

트렌드 미리 읽는 선구안 있어

2007년 5월17일치 esc 창간호 1면
2007년 5월17일치 esc 창간호 1면

esc는 다른 매체에 비해 진도가 빠르다. 문화에 관한 선행학습이랄까. 읽을 때는 ‘이런 게 있나’ 싶은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esc 커버스토리에서 나왔던 얘기가 유행이 된다. 문화를 미리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한겨레>스럽지’ 않은 트렌드를 발빠르게 많이 소개했다.

창간호가 나간 다음해 신년호에서 키워드 100개를 소개하는 특집을 했다. 그 키워드를 보면 지금도 유효한 것들이 많다. 선구안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포착되는 흐름은 20~30대의 개인중심적 자유주의다. 유럽에서는 예전에 뿌리를 박았다. 그런 흐름이 esc와 일치한다. 또 인터넷 개인 블로거나 모바일 기기와 결합되면서 이런 방향성이 잘 맞아들어갔다.

다른 매체의 경우 4인 가족을 중심으로 모든 동선과 문화를 설명한다. esc는 그렇지 않다. 여성중심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esc는 유명한 곳을 찾아가고 검증된 곳을 또 찾기보다 어떻게 찾아냈나 싶은 숨겨진 곳들을 찾아다닌다. 남종영 기자가 다뤘던 북극·남극·적도 여행기사 3부작은 한국 여행기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여행 전문지에서도 안 하는 기획을 시도했다. 또 그 안에 환경이라는 관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 관련 저널리즘이 있다면 변곡점이 될 수 있을 만한 기획과 기사였다.

엔터테인먼트면에서는 보통 신문지상에서 다루지 않는, 그런데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얘기를 해왔다. 뻔하지 않고 재미있는 단어로 흥미로운 표현을 통해 엔터테인먼트를 얘기했다. ‘한동원의 적정관람료’ 같은 칼럼은 촌철살인의 미학이 있다.

‘너 어제 그거 봤어’는 뻔하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에서 의외의 재미나 생각할 거리를 찾아주곤 했다. 요리에 대한 접근 역시 esc는 달랐다. 요리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것에서 떠나, 사람들이 뭘 먹고 싶어하는지를 보여줬다.

다른 매체의 경우 셰프의 권위를 중심으로 요리 기사가 나온다. esc는 그런 게 없다. 친근하다. 사람 중심의 요리 기사였다.

요리 기사의 간을 잘 맞춘 셈이다. 서양요리에 대해서도 편한 태도로 다가갔다. 호텔 외국인 총주방장이 만든 멋진 요리 사진에 레시피를 싣기보다 간단하게 요리를 해서 파티를 하자는 식이었다. 요리에 관한 턱을 낮췄고 편한 밥상으로 셰프들을 끌고 나왔다. 먹는 문화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게 놀라웠다. 당황스러웠던 이들도 많았을 거다. 지금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소개하면서 블로그 등에 포스팅할 수 있는 취향과 충분히 연동될 수 있었다.

관계면의 상담 칼럼의 경우 읽는 재미가 있다.

글맛이 좋다. 이런 고민의 경우 이 상담가들이 어떻게 풀어내는지 구경하는 기분으로 읽는다. 그들의 사고가 흘러가는 과정을 보면서, ‘골 때리네’ 하면서 웃는다. 그 재미로 가볍게 본다.

커버스토리를 읽다 보면 즐기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트렌디한 것들을 접하면서 갖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긴다. 실제 기사에서 소개된 제품을 사러 간 적도 있다.

esc를 읽다 보면 창의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정도 고급 취향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esc의 특징 중 하나는 외부 필자들의 좋은 칼럼이 많다는 점이다.

다른 매체들은 보통 필자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런데 esc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늘 궁금하다. 필자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편집에 있어서는 공들인 티가 난다. 전면 만화나 일러스트는 다른 매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미지다.

전면 편집을 했을 때 그 직사각형의 편집이 얼마나 예쁘게 떨어지는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아름다우면서도 젊다는 느낌이다.

읽을거리가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갖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읽게 된다.

“한겨레스럽지 않게 계속 긴장하란 말야”
“한겨레스럽지 않게 계속 긴장하란 말야”

새로운 필자와 카테고리 발굴 지속해야

아쉬운 점이라면 나이가 많은 층에서 공감할 만한 기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젊은 층이 즐기는 문화와 나이든 층이 즐기는 문화가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나이 많은 연령층에는 소홀하지만, esc의 고정 독자층이 젊은 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esc 기사의 댓글 중에 ‘무슨 신문기사에 빵꾸똥꾸가 나오냐’는 걸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 써야 하는 말과 충돌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건 esc가 출발할 때부터 색깔이 그랬고, 그걸 이어왔으니까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지면이 줄었다는 거다. 구석구석까지 읽을거리가 가득했던 초기에 비해 지면에서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사진과 기사가 통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기존 주말섹션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게 esc의 숙제일 것 같다.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데 예전보다는 게으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초반에 화제를 모았던 유쾌한 의제 설정 같은 것들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축구로 치자면 리베로답게 뛰어갈 만한 보폭이 지금은 약하지 않나 싶다. 돈 없이도 이렇게 잘 놀 수 있구나, 이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구나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필자와 새로운 카테고리를 발굴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아내고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지면을 만들어나가면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esc는 문화를 선도한다는 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esc에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