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3년이면 ○○한다’ 공모전 수상작 발표
esc 3년, ‘3년 사연’과 놀다
전병구/경기도 의정부시 2등 토목쟁이 3년이면 남자 된다 | 저는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토목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원서 넣고 아빠한테 “니가 무슨 토목공학과에 다니냐”며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고 많이 혼났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니 신입생 50여명 중 여자는 딱 6명. 개교 이래 가장 많은 여학생이 입학했다며 교수님들이 무지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1학년 때는 놀기에 바빴고 전공수업이 없어 그저 학교가 좋았습니다. 2학년 때는 아저씨 같은 복학생들이 대거 등장해 칙칙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받았죠. 군인 말투에서 못 벗어난 선배들 덕분에 여자인 저도 질문을 할 때면 “교수님 질문있지 말입니다. 이래서 말입니다. 저래서 말입니다. 이렇습니까?”라며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사용하고, “안녕하세요?” 대신 “안녕하십니까?”를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3·4학년 때는 여자 동기 6명 중 4명이 과생활을 포기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저와 또 한명의 친구만이 어떻게든 토목공학과에서 살아남으려고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 복사해서 돌리고, 시험기간 요점정리해서 돌리고, 선배들에게 밥 사먹였습니다. 그 결과, 당당히 토목기사를 따고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토목회사에 취직했죠. 남자들에게 체력적으로 지지 않으려고 매번 야근을 했더니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고, 회식 때마다 같이 술을 마셨더니 배에 타이어를 끼게 됐고, 일하면서 같은 언어를 쓰다 보니 입에서는 자연스레 ‘시베리아에 잣 같은 놈아’라는 말이 나오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 일이 생깁니다. 과 동기 여자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여자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둘이 동시에 외친 말이 “우와~ 저 여자 가슴 크다”였습니다. 서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보았지요. 우리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몸매를 보면서 가슴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목쟁이를 3년 하다 보니 남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5로 시작한다며 웃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는 남자들 사이에 있는 저를 보고 부럽다, 희소성으로 가치가 있다고들 얘기하지만 이 속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저는 점점 남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다소곳하고 차분한 여자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흑. 최윤정/강원도 춘천시 2등 처가살이 3년이면 장모님과 방귀 튼다 | 무남독녀와 장남, 결혼 당사자들도 그렇지만 양가 가족들 역시 원치 않는 조합이죠. 그런 부조합으로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 오랜 교제 기간 때문인지 큰 반대는 없었습니다. 장모님만 두고 분가하기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소위 ‘처가살이’를 시작했죠. 출발은 어색함 그 자체였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관계로 밤늦게 퇴근하면 장모님이 깨실까 까치발로 들어가야 하고, 아침에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봐야 했죠. 다 큰 사내를 들인 장모님 처지는 오죽했을까요. 옷을 편하게 입지도 못하고 방귀도 제때 뀌지 못해 속이 더부룩하다며 아내에게 하소연을 하셨나봅니다. 처가살이 선배 격인 친구가 저를 불쌍한 눈으로 보면서 “네가 3년 동안 처가살이 하고도 장모님이 좋다고 하면 대인배다”라고 하더군요. 타인이던 관계가 가족이 되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장모님께서 가게 일이 바빠 몸이 피곤한 저를 데리고 찜질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이 누워 있는 저의 손과 발을 손수 주물러 주시는 겁니다. 눈물이 핑 돌면서 ‘아, 장모님도 어머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보니 청바지 한 벌과 운동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장모님이 저를 위해 사놓으신 걸 보고 난감하면서도 성의를 봐서 입어야지 했는데, 이게 웬걸요. 바지며 운동화며 너무 잘 어울리는 겁니다. 장모님의 배려에 감동한 저는 틈이 날 때마다 장모님의 수다와 하소연을 들으면서 맞장구를 쳐드렸고 그 관계가 발전해 쉬는 날이면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이제는 가게를 비우지 못해 친구와 술자리를 못하는 제게 유일한 술친구가 되셨네요. 하루는 저와 아내, 장모님 이렇게 셋이서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경쾌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장모님, 시원하세요?” 저의 한마디에 거실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보통 부부끼리 언제 방귀 텄냐고 하던데 저는 장모님과 방귀를 텄습니다. 친구가 말한 3년이 지났습니다. 제 앞에서 편하게 방귀를 뀌시는 장모님은 제게 어머니 못지않게 편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늘 배려하고 챙겨주시는 장모님, 사랑합니다. 그런데요…, 다 좋은데 제 얼굴 향해서는 좀 자제해주세요! 최창서/서울시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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