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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공이 없다면 사표를 써라

등록 2010-05-26 19:38수정 2010-10-29 10:54

[매거진 esc] 60년대 고교야구 시절부터 월드컵까지 한국 스포츠사진의 역사
1965년 동대문운동장, 고교 야구의 열기가 뜨겁다. 응원소리는 드높고 그라운드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때 ‘딱’ 소리와 함께 야구공이 저 멀리 외야로 날아간다. ‘찰칵 찰칵’ 셔터소리가 포수의 등 뒤에서 터져 나온다. “안 되겠는데” 탄식소리가 다시 이어진다.

당시 신아일보 사진기자였던 김동준(71살)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 들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외야로 날아간 공을 잡아내는 야구선수의 폼은 그야말로 한 장의 멋진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의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왜냐? 그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는 50㎜ 표준렌즈였기 때문이다.

표준렌즈로 찍은 외야의 풍경은 땅콩만한 공과 흐릿하게 움직이는 선수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진이었다. 스포츠사진으로서 가치가 없다. 만약 300㎜ 이상의 망원렌즈로 찍었다면 프레임 안에 머리만한 공과 공을 잡기 위해 유연하게 움직이는 선수의 몸짓이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망원렌즈는 스포츠사진에서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60년대 경기장을 누비는 장렌즈라고는 기껏해야 70㎜가 고작이었다. 우리의 스포츠사진의 현실이었다.

슛이 터지기 전에 미리 골대에 초점 맞춰둬야

스포츠사진은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 때문에 다른 어떤 사진보다 큰 감동을 준다. 하지만 접근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애호가가 사진을 찍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현재 스포츠사진을 찍는 이들은 언론사의 사진기자, 구단의 홍보담당자, 숫자는 적지만 스포츠에이전시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사진가 정도다.

이들이 끌고 온 스포츠사진은 한국의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재미있는 역사를 만들었다.

“60년대에는 축구도 50㎜ 표준렌즈로 찍었지요. 골대 뒤에서 공이 들어오는 장면만 찍었어요. 야구는 주로 홈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찍었어요. 70년대 넘어오면서 서서히 언론사에 망원렌즈가 보급되면서 상황은 많이 나아졌어요”라고 김동준씨가 말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60년대 사진기자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슛이 터지기 전에 골대에 미리 초점을 맞춰두거나 동선이 적은 골키퍼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농구장에서는 림(골바구니의 대)에, 배구장에서는 네트에 미리 초점을 맞춰두기도 했다.


당시는 모터드라이브가 장착되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데 지금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한 장을 찍고 필름을 드르륵 다시 감아야 했다. 빠르게 변하는 경기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모터드라이브를 부착할 수 있는 카메라가 사진기자들에게 지급이 되었다. 기능이 향상된 장비들도 속속 등장했다. 80~200㎜ 줌렌즈, 300㎜, 500㎜ 망원렌즈 등. 스포츠사진은 이전보다 훨씬 멋진 장면으로 채워졌다. 90년대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스포츠사진도 한동안 흑백필름으로 찍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사진기자들이 이고지고 다니는 장비는 엄청났다. 카메라장비와 흑백필름 현상액, 3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흑백사진확대기까지. 경기가 끝나면 부랴부랴 임시로 만든 암실에 들어가서 현상과 인화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사진 안에 공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없다면 사표 쓸 각오까지 했어야 했다. 야간경기 때는 더 마음을 더 졸여야 했다. 스포츠사진은 동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사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속셔터로 사진을 찍는다. 몇 천 분의 1초로 찍어야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어떤 ‘한 순간’을 콕 잡아낼 수 있다. 야간경기장은 빛이 적어서 고속셔터를 찍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증감현상법(필름감도에 맞는 화학현상시간보다 더 늘려서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 유용하게 쓰였다.

스포츠지 창간되면서 컬러시대 열려

1985년 이후 스포츠서울 등 스포츠전문지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스포츠사진의 컬러시대가 열렸다. 82년 프로야구, 83년 프로축구 등 대부분의 운동경기가 ‘프로’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스포츠사진도 다양해졌다. 90년대 디지털카메라의 보급도 스포츠사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앵글에 축구공이 있는지 없는지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해진 전송장비들은 속보경쟁을 부추겼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굵직한 스포츠행사를 전후로 고급기종의 카메라들이 속속 출시되기도 했다. 캐논의 고급 기종 ‘EOS-1D Mark IV’는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지난해 12월에 출시되었다. 니콘의 고급 기종 ‘D3S’도 지난해 10월 출시되었다. 스포츠사진은 카메라의 기능이 중요한 분야다. 고급 기종에 있는 연사기능(8~10장 연속적으로 찍히는 기능)은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빨리 움직이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1초도 놓치지 않고 담을 수 있다.

아무리 카메라의 기능이 중요한 스포츠사진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진 찍는 이의 실력이 최고의 사진을 만든다. 김동준씨는 “어디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경기장입니다. 이때쯤 골이 터지지 않을까, 박지성이 공을 몰고 오면 이쯤에서 슛 하겠지라고 예측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스포츠평론가 수준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 선수마다 다른 행동반경을 연구하는 것은 훌륭한 스포츠사진을 찍는 데 필수조건이다. 경기의 흐름도 읽어내야 한다. 신문에 실리는 스포츠사진 중에 도대체 어떻게 찍었지 궁금해지는 사진들이 더러 있다. 도저히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높은 농구골대 위에서 셔터를 눌러야만 가능한 사진들 같은 것이다. 무선릴리스를 이용한 사진들이다. 좀 더 역동적이고 화려한 스포츠사진을 찍기 위한 방법이다.

다음달 11일 개막하는 월드컵을 화려한 스포츠사진과 함께 하는 것도 경기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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