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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시다가 받은 임금님 밥상

등록 2010-06-09 21:15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나는 1966년 봄 어느 날 평화시장 내 삼양사 시다로 입사를 했다. 그때 내 나이는 12살. 나는 꿈에 부풀었다. 재봉틀 기술자만 되면 삼일빌딩도 살 수 있다는 커다란 꿈을 안고 하루 14~16시간 노동도 마다않고 열심히 견습생활을 했다. 삼양사에 취직하기 전에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메리야스를 만드는 공장에 갔었는데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봉틀 기술자가 되기까지 버티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첫달 봉급은 700원이었다. 물론 조금씩 올라서 1200원까지 받기도 했지만 그 돈으로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너무 부족했다.

1969년 구정 명절을 집에서 보내고 첫출근하는 날이었다. 평화시장의 공장들은 명절이 끝나면 대부분 봄 상품을 준비한다. 사장들은 원단과 샘플을 구입해 재단사와 공장장에게 준다. 재단사는 샘플 한 장을 만들어 다시 가게의 사장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에 각 공장에는 재단사가 한명씩 있었다. 재단사는 99.9%가 남성들이었다. 규모가 작은 공장은 재단사가 공장장을 겸직하기도 했다. 공장장은 미싱사들에게 샘플 한 장을 만들게 하고 미싱사들은 이걸 만들고 나면 퇴근을 한다. 미싱사들은 시다들에게 “야 재봉틀 청소 깨끗이 해야 한다”고 말하며 퇴근한다. 시다들은 미싱사가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를 마쳐야 한다. 재봉틀의 바늘 있는 곳을 드라이버로 열어서 안에 있는 먼지를 빼고 기름도 칠하고 옷을 만들 때 기름이 배어나오지 않게 조각천으로 닦아내야 했다. 재봉틀 청소가 완료되면 다음에는 재봉틀 판과 의자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리미도 바닥이 잘 나가도록 양초로 기름칠을 해야 한다. 당시엔 할 일이 없어도 재단사나 공장장이 퇴근하라고 말하기 전에는 퇴근할 수가 없었다.

그날 동료인 친구는 나에게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평화시장에서 약 1시간을 걸어 돈암동 꼭대기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갔다. 친구 어머니는 명절에 먹고 남은 만두와 떡, 나물과 콩자반, 멸치볶음 등으로 차린 상을 내오셨다. 이것은 내 생일에도 받아보지 못한 밥상이었다. 임금님 밥상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마치 임금님 밥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때 배불리 먹었던 인연으로 나는 40년 넘게 그 친구뿐 아니라 친구 어머니와도 관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는 지난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다. 친구 어머니는 편안한 세상에 다시 환생하실 것으로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신순애/서울 중랑구 묵2동


‘esc’가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과 독자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주 한분을 뽑아 유기농쌀·홍삼액 등 20만원 상당의 한살림 상품 등을 드립니다. 자세한 응모 요령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 게시판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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