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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닿지 않은 산맥이 없어라

등록 2010-07-07 19:29수정 2010-07-11 14:55

에베레스트 남서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백두대간부터 에베레스트까지 자연을 앵글에 담는 사진가 이한구
알베르 카뮈가 알제리에서 유년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방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의 태양이 눈부셔서 살인을 했다고 말한다. 카뮈의 유년을 비춘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이 소설의 재료가 되었다.

예술가에게 유년의 기억은 평생 그를 지탱해주는 자양분이다. 사진가 이한구(41)씨도 비슷하다.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자연에 대한 향수는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는 두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여주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산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 미루나무가 친구가 되어 손짓했다. 개울가의 졸졸 물 흐르는 소리는 그에게 자장가였다. 하루에 두 번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신작로를 달렸다. 행여 서울에 사는 아버지가 그 버스에서 내릴까 싶어 ‘어린 한구’는 모래바람 속을 달렸다. 그가 “과 잡지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을 좋아하고 우리 전통문화나 시골 풍경”에 자석처럼 이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광양.
광양.

대학땐 텐트와 카메라 들고 전국일주

고등학교 때부터 그의 책장에는 사진가 세바스치앙 사우가두(브라질)와 최민식의 사진집이 꽂혀 있었다.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사진학과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책장 속에 숨어 있다. 그는 “사진학과를 다니면서도 수업은 빼먹고 청산도, 구례, 하동, 섬진강 일대를 텐트와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불량학생”이었지만 그의 사진작업 노트에는 우리 산천초목과 주름진 농부들의 손마디가 소박하게 자리잡았다.

그의 시선은 잡지 <사람과 산>에 입사하면서 더 확장되었다. 백두대간, 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낙동강의 남쪽), 한북정맥(한강의 북쪽)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맥이 없었다. 7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닌 마을이 2000곳이 넘는다.

마을로 향하는 그의 차에는 늘 소주 됫병과 “정육점에서 끊은 괴기 덩어리”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114’에 전화를 걸어 이장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그곳을 찾아갔다. 처음 하는 일이 소주와 ‘괴기’를 푸는 일이었다. 밤새 마을 사람들과 정담을 나눈 뒤에 “형님, 동생”이 되어서야 카메라를 들었다.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
청계천.
청계천.
청계천.
청계천.

96년도부터는 다큐멘터리 사진그룹 ‘사진집단 사실’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김문호, 노익상, 이석필 등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사진가들이 그와 함께했다. ‘사진집단 사실’을 통해 발표한 사진은 80년대 말부터 찍은 청계천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시각은 카메라에 드러났다. 그가 찍은 군대 사진은 대담하고 간결하다. 강한 흑백의 선들은 보는이의 심장을 세게 두드린다.

최근 그는 다시 산을 찾고 있다. 우리네 산야를 벗어나 더 큰 자연을 품에 안았다. 오랫동안 산을 찍은 그만의 노하우를 살려 톈산산맥의 한텡그리(Khan-Tengri, 중국 이름 한텅거리·7010m)나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을 등반하고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눈으로 덮인 산은 경외감 자체다. “잡지에서 일할 때 우리 산만 다녔죠. 해외 등반을 하고 싶은 소망이 늘 제게 있었어요.” 그는 자신을 “사진가이기도 하지만 등반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산악인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되죠”라고 말한다.

산을 찍는 사진가는 특별한 산악인이다.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장 늦게 출발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고, 틈틈이 거대한 산의 외경스러움도 찍어야 한다. 산악인들보다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 셔터를 누를 준비도 해야 한다. 옆 봉우리에 올라가서 가파른 벽을 오르는 그들을 생생하게 담기도 한다.

그의 장비는 산악인들 것보다 더 무겁다. 등반 장비에는 무거운 카메라가 포함된다. 아무리 무거워도 셰르파(원정을 돕는 짐꾼)에게 짐을 맡기지 않는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산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위장된 평화-군대.
위장된 평화-군대.
위장된 평화-군대.
위장된 평화-군대.

서촌에 사진 갤러리 ‘류가헌’ 만들어

한텡그리는 2004년, 2006년 두 번이나 도전했다. “기상 악화로 고지를 100m 남겨두고 내려오기도 했어요.” 그는 그곳에서 동료를 잃었다. 2007년에는 박영석 원정대와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반했다. 이때 그는 이곳에서 동료 산악인 오희준, 이현준씨를 잃었다. 산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산사람의 삶이 그의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이듬해 박영석 원정대와 그곳을 또 올랐다. 그의 산사진은 우람하고 애잔하다. 산과 그곳을 찾던 이들은 닮았다.

사진가 이한구(41)
사진가 이한구(41)

순한 짐승의 눈빛을 뿜어내는 그는 최근 광화문 서촌(경복궁 서쪽 한옥밀집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서촌을 설명하는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사진 위주 갤러리 ‘류가헌’이 그가 만든 공간이다. 버려졌던 우리 한옥을 꼼꼼하게 다듬고 어루만져 아담한 자연이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진을 전시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전시 공간을 차라리 내가 만들어 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시간의 뒤편’(안홍범 사진전), ‘강강강강, 사진가들 강으로 가다’(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4대강을 다룬 사진전), ‘이상엽의 이상한 숲 DMZ’ 등을 기획해서 전시했다. 그는 앞으로 혜초가 쓴 것으로 알려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따라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 제공 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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