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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를 둘러싼 전쟁과 평화

등록 2010-07-14 17:52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아이는 콜라를 좋아한다. 마트에 가면 장난감보다 콜라를 먼저 챙긴다. 하지만 나는 콜라가 싫다. 누군가 콜라를 바르고 태닝을 하면 얼룩 없는 구릿빛 피부가 된다기에 바닷가에서 콜라를 바르고 누웠다 개미떼의 습격을 받은 후 더욱 콜라가 싫어졌다. 콜라를 사이에 둔 아이와 나의 신경전은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졌다. 승률만 놓고 본다면 나는 패배자였다. 노골적으로 아이 편에 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번만 사줘라’ 신공에 무릎을 꿇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간의 우격다짐 대신 고도의 심리전으로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 지금 배 아프지? 그거 다 콜라 마셔서 그런 거야. 뱃속에 벌레가 생겼거든.” “노할머니 주무실 때 이빨 빼서 물에 담가 놓는 거 봤지? 젊어서 콜라를 많이 드셔서 그렇게 됐대.” “모기에 물렸구나. 네가 콜라를 좋아하니까 살에서 단내가 풍기는 거야. 콜라만 끊으면 안 물릴 텐데.” “이런, 넘어졌구나. 콜라를 마셔서 힘이 약해진 거야.”

처음엔 아이도 나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듯했다. 마트에서 콜라를 집으려는 손이 곱아들고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에서 콜라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침만 꼴딱꼴딱 삼킬 뿐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승리를 자신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두고 지금껏 마트 한복판에서 꼴사납게 목청을 높인 게 후회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는 역전됐다.

“이모가 배 아프대. 콜라 마셔서 그런 거지?” “엄마, 모기 물렸네? 나 몰래 콜라 마셨어?” “박지성도 콜라 마셨나 봐. 왜 자꾸 넘어지지?”

더는 둘러댈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배가 아플 때마다, 모기에 물릴 때마다 계속해서 죄 없는 콜라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 콜라보다 더 위험하단 걸 고백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아이와 콜라 사이는 여전히 돈독하다. 나는 협박 대신 타협을 제안했다. 정해진 양을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 음용을 허락한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그걸 받아들였고, 우리 사이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달콤하고도 찜찜한 평화다.

강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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