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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최상의 전략일 수도

등록 2010-10-07 14:52수정 2010-11-25 15:10

[매거진 esc] 탁정언의 ‘말의 씨’
“내 인생 최대의 실수는 널 만난 거야!”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는 광고 카피처럼 날이 선 한마디로 역시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아버지의 입을 바라보았고 동시에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그렇게 멋지게 심한 말까지는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의지를 벗어나 제멋대로 말이 나왔을 뿐이었으리라. 곧 어머니의 무자비한 대반격이 시작되었으니. 젊어서부터 한번 붙었다 하면 동네를 떠나가게 만들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부부싸움은 언제나 말이 씨가 되었다.

평화가 찾아왔을 때 아버지의 변은 늘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였다. 정말 내 생각, 내 의지와 달리 그 어떤 한마디가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걸까? 어렸을 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철저히 부정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콘셉트를 정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일을 직업으로 경험과 노하우에 공부를 더해보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말은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두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인해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위기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하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말의 전략이란, 곧 최적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그 길로 향하는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언어의 구사를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략에 대한 ‘의도적 알아차림’이다. 즉, 말을 할 때마다 관계의 목표를 의도적으로 자각하고 각성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짜낸 전략이 머릿속에 있다 해도 우리 인간은 언제나 잡념에 빠져들어 방심을 하고, 유혹에 넘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분위기에 휩싸여 스스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해 결정적 실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를 설파하고 다니는 입장에서… “어? 나이에 비해서 얼굴이 삭았네!” 아… 나는 어떻게 아끼는 아내에게 그다지도 무서운 한마디를 던질 수 있었단 말인가? 말하기 전략을 그렇게 완벽하게 수립해놓고도 말이다. 한마디 말이 씨가 된 서먹한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선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과 정성,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아차림’을 놓치게 된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일 것이다.

탁정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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