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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를 집에 처음 소개하던 날. 엄마가 물었습니다. “대학은?” “○○대.” “군대는 다녀왔고?” “네.” “부모님은 살아 계시고?” “네.” 엄마의 3대 관문을 무사통과한 줄 알고 돌아서는 저희에게 “잠깐! 고향이 어디지?”
어째 너무 쉽게 간다 싶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저는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광주”라고 답했고, 엄마는 “설마 전라도 광주는 아니겠지?”라며 눈에 쌍심지를 켰습니다. “맞다”는 말에 엄마는 뒷목을 잡으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고 목청을 드높였습니다. 왜냐면 저희 집안이 ○○제과 과자는 절대 먹지 않고 전라도 쪽을 지날 때는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꼴통’ 경상도 집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즈음 ‘불혹’이 넘도록 결혼은커녕 연애 한번 안 한 삼촌이 어느날 여자를 데려오자, 가족들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을 잡더군요. 가족들은 그저 ‘여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마지않았습니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솔로인 여자 후배의 엄마는, 후배가 대학모임이나 동호회에라도 나갈라치면 “오늘 밤 12시 전에 들어올 생각은 애당초 마라”며 협박한다고 합니다.
내일모레면 마흔이자, 최근 생애 첫 연애를 시작한 제 친구는 남자친구가 집에 들르면 가족들 전부가 ‘제발 자고 가라’며 몽땅 어디론가 뺑소니를 친다고 합니다. 또 마흔을 코앞에 두고 극적으로 결혼에 성공한 여자 선배는 “부모님이 재취 자리가 아닌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말합니다.
모태솔로, 뭐 견디기만 어렵지 않다면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사람이 나의 연애와 나의 결혼을 축복해준다는 것! 외모도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어쩌면 성별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기다리십시오. 흐르는 세월은 무조건 그대들의 편일지니.
김아리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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