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만난 순수한 소녀’(제갈다정)
제4회 ‘다음작가 주니어 사진페스티벌’ 참가 학생들의 작품세계
발랄하다. 독특하다. 용감하다. 신선하다. 제4회 ‘다음작가 주니어 사진페스티벌’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의 사진이 주는 느낌들이다. 이들은 팍팍한 입시 환경에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에는 이들의 솔직한 소망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예술의 시작은 ‘나’에게서 비롯되는 법이다. 청소년기에 가졌던 관심이 직업이 되기도 한다. 14살 무렵부터 붓을 들었던 화가 이중섭처럼 이들의 시선이 몇 십 년 뒤 사진계의 시선이 될지 모른다.
‘다음작가 주니어 사진페스티벌’은 ‘박건희문화재단’이 2007년부터 매년 사진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여는 청소년 사진페스티벌이다. 온라인 사진공모전을 통해 100명의 학생들을 선발한다. 이 학생들은 사진캠프, 작품집 발간, 사진전 등의 활동에 참여한다. 학생 1명에게는 ‘다음작가주니어’상이, 9명에게는 ‘우수상’이 주어진다. 올해 4회째를 맞는 ‘다음작가 주니어 사진페스티벌’은 지난 6월 응모한 417명 중 100명을 선정해서 7월 한 달간 사진캠프를 열었다. 사진가 박현두, 김옥선, 박형근, 방병상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이 강사로 참여했다.
4:1 경쟁률 뚫고 캠프 참여한 ‘젊은 사진가들’
올해 우수상을 받은 이우고등학교 3학년 이진영의 ‘Eye Series’는 독특하다. 속눈썹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가 하면, 눈동자 안에 흐트러진 나뭇가지가 있다. 섬세한 동공의 질감이 달 표면처럼 그려져 있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눈에 반영된 세상, 눈에 보이는 세상을 다시 돌아보고 때론 눈에 반영된 모습에서, 제 자신이 보면서도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려 했다고 적었다. 2년 전부터 호기심 삼아 100㎜ 매크로렌즈를 이용해서 자신의 눈을 찍기 시작했다. 노출이 부족할 때는 삼각대를 이용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사진기를 잡고 주로 하늘을 찍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구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몇 시간이고 구름을 찍었다.
대안학교에 진학한 뒤 사진에 흥미를 더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우중학교 시절, 특성화수업에서 사진을 선택했다. 그는 ‘이거라면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오조, 난다, 강재욱 등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주말마다 인사동 거리를 헤매며 전시를 보러 다녔다. 2002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진일기는 지금 수십 권이 넘는다. 평소 국·영·수보다는 컴퓨터나 정보화 과목이 더 재미있었던 이진영은 2008년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사진가 김아타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사진으로도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영 학생은 지금 예술대학에 진학하려고 준비중이다.
우수상을 수상한 학생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마치 피터 팬의 세상을 그린 것 같은 제갈다정(순천청암고등학교 3학년)의 사진은 귀엽고 몽환적이다. 그는 “학업에 쫓겨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꿈속에서 소녀를 만나 행복을 느끼는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 친구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 위에 비눗방울 모양을 합성했다. 최대한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내용을 프레임에 넣고 싶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순천대에서 주최하는 사진공모전에 “생각 없이 낸 사진이” 장려상을 받으면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그는 현재 순천대학교 사진학과에 합격한 상태다.
백지연(동안고등학교 3학년)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그는 옷들을 모아 친구들에게 입히고 어둡고 닫힌 공간에서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은 화장을 한 채 딱딱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 화장이나 옷은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닫힌 공간은 간섭받고 싶지 않은 바람을 표현하고자 선택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오빠가 찍은 흑백사진에 감동을 받았다. “페스티벌에서 상도 타고 하니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에게 칭찬도 들었어요”라며 뿌듯해했다.
어두운 공원을 배경으로 흰 천을 쓴 사람을 찍은 김인숙(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의 사진은 외롭고 쓸쓸하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혼자 생각하기 좋아했던 자신을 표현했다. 반 친구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춰 흰색을 더 환하게 표현했다. “생각이 반짝”한다는 말이 생각나서다. “가정환경이 어려워졌을 때” 자신을 지켜준 것이 사진이라고 김인숙 학생은 말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그도 사진가의 꿈을 꾸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10대만의 상상력
우수상은 못 받았어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사진을 찍은 참가 학생들도 있다. 도경석(성광고등학교 3학년)은 용감했다. 수영장, 지하철, 상가 등에 책상과 의자, 스탠드를 설치하고 공부하는 친구를 찍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소품으로 쓴 책상에 셀카를 찍기도 하고 도경석 학생의 사진촬영 장면을 찍기도 했다.
이상민(중동고등학교 2학년)은 고등학생다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햄버거, 담배, 당구, 술 등 유혹당하기 쉬운 대상 안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광화문, 코엑스 등지에 태극기를 펼쳐놓고 장노출 사진을 찍고 있다. “애국심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아무도 태극기를 밟지 않는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일주일 밥상을 꾸준히 찍은 이해강(안법고등학교 3학년)은 “나는 이러고 살고 있다”고 외치고 싶어서 찍은 사진들이란다.
안성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는 3년 동안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웠다. 한달 동안 하루에 3번씩 전교생이 급식을 먹는 식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김현정(청주 일신여자고등학교 2학년)의 사진은 조금 심각하다. 도시의 풍경을 모델의 얼굴에 붙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각각 다른 사연으로 사진을 찍는다. 소망하는 바도 다르다. 하지만 꿈과 고민은 닮았다. 우리 시대 고등학생의 자화상들이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 제공 박건희문화재단
‘out of school’(도경석)
‘일탈’(백지연)
‘Eye Series’(이진영)
‘청소년의 덫’(이상민)
어두운 공원을 배경으로 흰 천을 쓴 사람을 찍은 김인숙(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의 사진은 외롭고 쓸쓸하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혼자 생각하기 좋아했던 자신을 표현했다. 반 친구의 얼굴에 손전등을 비춰 흰색을 더 환하게 표현했다. “생각이 반짝”한다는 말이 생각나서다. “가정환경이 어려워졌을 때” 자신을 지켜준 것이 사진이라고 김인숙 학생은 말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그도 사진가의 꿈을 꾸고 있다.
‘Capitalism’(김현정)
‘Think about’(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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