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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가 뭐기에

등록 2010-12-02 14:35

[매거진 esc] 탁정언의 ‘관계를 푸는 언어의 기술’
“내가 뭐랬어?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야?” 한창 권력(?)이 막강했을 때, 이렇게 말로 아랫사람들을 몰아붙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의 권력에 압도당한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표정을 짓고는 했다. 내가, 나를, 나의, 나에 의해, 나를 위해… 말을 할 때마다 ‘나’로 시작했다. ‘내’가 없으면 절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던 거다. 그래서였을까? 인간관계는 한마디로 꽝이었고 실망과 낙망, 절망의 늪에서 헤매고 살았다.

윗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자. 상사는 부하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또 부모는 자식에게 ‘내’ 생각을 강조하고 ‘나’의 말을 들을 것을 강요할 때면 꼭 ‘나’라는 말뚝을 박고 시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혹시 조금이라도 권력을 쥔 입장이라면, 말을 할 때 ‘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한번 테스트해보라. 그런데 아랫사람을 말로 설득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아마 권력을 이용해서 압도하는 ‘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설득당하는 표정만 지었다 뿐이지 속으로는 마음에 상처를 새겼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관계에 있는 부하, 후배, 자식은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다 뒤통수를 때릴 기회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진짜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지나간 유행가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말끝마다 ‘나’를 넣어 ‘내’ 생각과 ‘내’ 입장을 강요할 수 있을까? ‘나’란 그때그때의 입장, 기분, 감정, 생각일지도 모른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느끼는 통합적인 자아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신뢰할 만한 주장(신경심리학자 릭 핸슨)도 있으니 말할 때 ‘나’에 너무 목을 걸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대화중에 ‘나’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심장병에 걸릴 위험성까지 높아진다(심리학자 래리 셔비츠)고 하니 정말 ‘나’를 소중히 하고 싶다면 조심할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말을 할 때 의식적으로 ‘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자 주변의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들과의 관계였다. 사춘기 아들 녀석이 아빠와 대화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탁정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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