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용인 고기리 시메온농원 캠핑장. 겨울캠핑을 나온 한 가족이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매거진 esc] 강추위 속 야외서 주말 보내는 오토캠핑 붐
야외활동이 부쩍 줄어드는 겨울. 특히 올겨울은 새해 벽두부터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기록적인 한파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불편함 무릅쓰고 웬 ‘얼어죽을’ 캠핑인가. 움직이기도 힘겨운 날씨에, 눈길 헤치고 언 땅에 텐트 치고 먹고 자는 일이 재미있을까?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 시메온농원 캠핑장에서 만난 겨울 오토캠핑족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아주 특별한 재미가 있죠.”
겨울캠핑족들이 텐트 안팎에서 들려준, ‘특별한 따뜻함’이 지배하는 겨울캠핑(동계캠핑) 이야기는 이렇게 요약된다.
“캠핑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여는 순간, 해맑은 공기가 우리 가족을 반깁니다. 텐트 치는 동안 아이들은 새 친구를 만나 눈사람 만들고 썰매 타며 눈밭에서 뒹굽니다. 거실텐트에 난로를 켜고 이너텐트(거실텐트 안에 치는 잠자리용 텐트)를 마무리한 뒤 아내와 뜨거운 차를 마시며 아이들을 지켜보지요. 화로대에 찌개를 끓여, 배고프다고 야단인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밖에 나와 모닥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난로에선 고구마가 익어가고 아이들은 이너텐트 안에서 재잘거립니다. 조용한 음악 곁들여 술 한잔 나누는 사이 밤이 깊어갑니다. 다음날 아침 텐트 문을 열 때, 운 좋으면 티 하나 없이 새하얀 세상을 만나지요. 잊지 못할 겁니다. 아쉬움 속에 텐트를 걷노라면 고드름을 따 들고 놀던 아이들이 보챕니다. 다음주에도 꼭 다시 오자고….”
친밀감·행복감 더해지는 겨울가족캠핑
한겨울 야외에서 텐트 치고 주말을 보내는 겨울 오토캠핑족이 늘고 있다. 국내에 오토캠핑 바람이 분 지 3~4년. 봄~가을 야외활동으로만 여겨지던 캠핑이 이제 4계절 전천후 야외 여가생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날 고기리 시메온농원 캠핑장은 50개 캠핑 사이트 중 절반이 넘는 20여개 사이트가 겨울 오토캠핑족들의 텐트로 메워졌다. 동호회에서 함께 나온 이들과 개별적으로 찾아온 캠핑꾼들이 절반가량. 대부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캠핑족이다.
‘리멤버 캠핑’. 이날 점심 무렵부터 시메온농원 캠핑장엔 국내 최대 온라인 캠핑 동호회인 네이버 카페 ‘캠핑퍼스트’(초보캠핑·초캠)의 초기 회원 13명의 가족이 차례로 모여들었다. 2007년 말 1회 정기캠핑을 함께 떠났던 회원 가족이 해마다 한번씩 겨울캠핑을 통해 ‘첫정’을 확인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우의도 다지는 자리다. 모두 카페를 통해 만났고, 서로 ‘닉네임’으로 부르며, 1년에 한두번 만나는 사이지만 이제 바깥지기(남편)들끼리는 물론, 안지기(아내)들과 아이들끼리도 스스럼없이 친해져 ‘따뜻한 겨울캠핑’을 즐긴다. 오랜만에 만난 바깥지기들이 한 텐트에 모여 ‘장비질’(캠핑장비 구입) 이야기에 빠져드는 동안, 안지기들은 따로 모여 커피와 간식을 나누며 아이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눈썰매 타고 눈싸움하며 뛰노는 아이들은 텔레비전도 게임도 휴대폰도 잊었다. 안지기·바깥지기들이 막걸리 한잔씩 들며 전해준 겨울캠핑의 장점들.
“여름캠핑에 비해 겨울캠핑은 가족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친밀감·행복감이 훨씬 더해지지요.” 가을하늘(닉네임) / “우선 한적해서 좋고요.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집니다. 마음도 차분해지고.” 근두운 / “아내와 난롯가에 앉아 나누는 차 한잔, 술 한잔이 다 각별한 맛이죠. 추위를 몹시 타던 아내도 아이들도 캠핑만 나서면 추운 줄 몰라요.” 끈적한 / “사회성이 부족했던 아이들도 성격이 활발해지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바람과 검 / “우리 아인 감기도 안 걸리고 투정도 줄었죠. 이젠 추위도 안 탑니다.” 현주사랑 / “겨울캠핑에선 특히 진한 추억이 남아요. 이 텐트를 추억과 함께 아이들에게 물려줄 작정입니다.” 포비
겨울캠핑의 ‘따뜻한 행복’을 즐기는 이들은 대체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 유치원~중학생 정도의 자녀를 둔 세대다. 국내 캠핑 바람을 이끌어가는 층이다. 이들 중엔 ‘핵가족 캠핑’ 틀을 벗고, 텐트·코펠·버너만으로 즐기던 ‘옛날식 야영’의 추억을 간직한 부모를 모시고 캠핑을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날 캠핑장엔 3대가 함께 온 캠핑가족 두 팀도 각각 텐트를 쳤다. 1년에 10회 안팎의 캠핑을 즐긴다는 엄정식(37)씨는 아내와 7살·3살 두 아이, 칠순의 부모, 매형 가족 등 9명에 이르는 대가족을 이끌고 왔다. “탁 트이고 공기 맑은 곳에 텐트 치고 함께 지내면 온 가족이 다 흐뭇해합니다.” 이들은 텐트 두 동을 친 뒤, 그 사이에 화로대를 설치하고 숯불을 피웠다. 아들·사위 가족을 따라 두번째 겨울캠핑에 나섰다는 엄영호(72)씨가 “요거(캠핑) 정말 재미있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옛날엔 장비도 없고 교통도 불편해 겨울에 텐트를 친다는 건 생각도 못했죠. 지금은 여건이 좀 좋아요? 춥고 불편하고 고생길 같아도, 일단 나와 보면 몸도 마음도 아주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엄씨는 “특히 이렇게 추운 날 뜨거운 물에 데워 마시는 따끈한 청주 한잔 하는 재미에 아내와 함께 캠핑을 따라온다”며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사위 김재헌(45)씨가 끼어들었다. “전 아들과 함께 음식 만드는 재미로 오죠.” 그는 이날 아들 성훈(15)군과 함께 온가족 저녁식사로 중국식 국수를 만들었고, 설거지도 함께 해치웠다. 해가 저물자 눈밭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저마다 가족이 기다리는 훈훈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창마다 환한 불빛과 함께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이 흘러나와 캠핑장 분위기는 한결 아늑하고 따뜻해졌다. 도란도란 정담 흐르는 따스한 분위기 오토캠핑 인구의 급증( 2009년 6월25일치 커버스토리 ‘별이 쏟아지는 캠핑하러 가요’ 참조)은 2007년 9월 문 연, 캠핑퍼스트의 회원 증가 추이를 보면 한눈에 드러난다. 그해 말 300여명이던 이 동호회 회원은 이듬해인 2008년 말 2만명을 넘어섰고, 본격적으로 캠핑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09년 8만명으로 급증했다. 2010년 말 현재 회원 수는 13만여명에 이른다. 캠핑퍼스트에 버금가는 회원 수를 자랑하는 다음의 캠핑 카페 ‘캠핑하는 사람들’(캠사)이나 ‘캠핑랜드’도 회원이 짧은 기간에 급증하기는 마찬가지. 캠핑퍼스트 카페지기 이동환씨가 말했다. “처음엔 연 4회씩 정캠(회원들의 정기 캠핑)을 떠났지만, 요즘엔 참가자가 급증해 행사진행 부담이 커져 봄·가을 연 2회로 줄였습니다.” 보통 2000명을 훌쩍 넘어서는 정캠 참가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이 인원을 한자리에 수용할 수 있는 캠핑장도 몇 안 되기 때문이다.(20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곳은 덕유산 국립공원, 설악산 ‘C야영장’, 영동 송우리 야영장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캠핑 바람은 자연스럽게 ‘캠핑의 휴지기’로 치던 겨울철로 이어졌다. 겨울캠핑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난 시기는 2009년 말부터다. 이씨는 “겨울을 앞두고 카페 중고품 장터의 난로·침낭 등 겨울 캠핑장비 거래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초캠 카페 중고품 장터가 철을 가리지 않고 붐비게 되면서, 2010년 4월부터는 아예 별도 카페 ‘초캠장터’(회원 7만여명)로 분리해 운영중이다. 국내외에서 여러해 동안 겨울캠핑을 경험해온 김산환씨는 “미국·캐나다 등에선 설경이 압권인 겨울철 캠핑이 대중화된 지 오래”라며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도 야외활동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캠핑이 겨울 여가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캠핑 전문가들은 겨울캠핑이 여름캠핑과는 다른 각별한 정취를 안겨주지만, 지나치게 특별한 체험으로 인식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겨울캠핑 안 해보고 캠핑을 논하지 마라’는 식으로 ‘오버’하는 경우다. 김산환씨는 “혹한기 겨울캠핑 체험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며 “겨울캠핑을 극기훈련이나 ‘고난의 행군’쯤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될수록 편안하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즐겨야, 캠핑 활동의 최대·최고 덕목인 ‘가족간 화목’을 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야외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오순도순 둘러앉으면 추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진다.
겨울캠핑의 ‘따뜻한 행복’을 즐기는 이들은 대체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 유치원~중학생 정도의 자녀를 둔 세대다. 국내 캠핑 바람을 이끌어가는 층이다. 이들 중엔 ‘핵가족 캠핑’ 틀을 벗고, 텐트·코펠·버너만으로 즐기던 ‘옛날식 야영’의 추억을 간직한 부모를 모시고 캠핑을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날 캠핑장엔 3대가 함께 온 캠핑가족 두 팀도 각각 텐트를 쳤다. 1년에 10회 안팎의 캠핑을 즐긴다는 엄정식(37)씨는 아내와 7살·3살 두 아이, 칠순의 부모, 매형 가족 등 9명에 이르는 대가족을 이끌고 왔다. “탁 트이고 공기 맑은 곳에 텐트 치고 함께 지내면 온 가족이 다 흐뭇해합니다.” 이들은 텐트 두 동을 친 뒤, 그 사이에 화로대를 설치하고 숯불을 피웠다. 아들·사위 가족을 따라 두번째 겨울캠핑에 나섰다는 엄영호(72)씨가 “요거(캠핑) 정말 재미있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옛날엔 장비도 없고 교통도 불편해 겨울에 텐트를 친다는 건 생각도 못했죠. 지금은 여건이 좀 좋아요? 춥고 불편하고 고생길 같아도, 일단 나와 보면 몸도 마음도 아주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엄씨는 “특히 이렇게 추운 날 뜨거운 물에 데워 마시는 따끈한 청주 한잔 하는 재미에 아내와 함께 캠핑을 따라온다”며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사위 김재헌(45)씨가 끼어들었다. “전 아들과 함께 음식 만드는 재미로 오죠.” 그는 이날 아들 성훈(15)군과 함께 온가족 저녁식사로 중국식 국수를 만들었고, 설거지도 함께 해치웠다. 해가 저물자 눈밭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저마다 가족이 기다리는 훈훈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창마다 환한 불빛과 함께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이 흘러나와 캠핑장 분위기는 한결 아늑하고 따뜻해졌다. 도란도란 정담 흐르는 따스한 분위기 오토캠핑 인구의 급증(
어른들이 거실텐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너텐트는 아이들 차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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