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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꼭 네모반듯해야 한다고?

등록 2011-04-28 10:38수정 2011-04-28 10:44

카림 라시드의 ‘미스터 노’.
카림 라시드의 ‘미스터 노’.
외국 유명 디자이너들의 ‘책 없어도 좋은’ 명작들
의기양양하게 두 팔 벌려 만세를 부르는 아이처럼 명랑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지금 막 부모 몰래 한 건 해낸 장난꾸러기를 닮기도 했다. “내가 디자인한 책장에 책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을 이끈 주역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대표작인 ‘칼톤 책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유머감각 넘치는 책장은 1981년, 그러니까 그가 60살이 넘어 디자인한 것으로 딱딱하고 기능적인 모더니즘 디자인에 반기를 든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디자인 역사책에 반드시 등장하는 명작이다.

론 아라드의 ‘책벌레’(론 아라드의 작품 누리집).
론 아라드의 ‘책벌레’(론 아라드의 작품 누리집).
반면 인테리어 잡지나 화보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이 책장은 산업디자인과 건축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론 아라드(Ron Arad)의 것이다. 그 생김에 걸맞게 ‘책벌레’(Bookworm)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차갑고 딱딱한 금속으로 솜씨 좋게 부드러운 곡선의 책장을 만들어냈다. 원하는 대로 구부릴 수 있는 시리즈도 나온다. 책장이 꼭 모범생처럼 네모반듯한 직선이란 법은 없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론 아라드에게 유명세와 그에 합당한 돈도 벌어주었으니 참 기특한 녀석이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형제 디자이너 로낭과 에르완 부룰레크(Ronan & Erwan Bouroullec)의 ‘구름’(Cloud)은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제품으로 블록처럼 원하는 만큼 쌓아 올릴 수 있는 구조물이다. 처음부터 어떻게 활용하라고 딱히 용도를 정해주지 않은 작품이라, 그저 원하는 대로 높게 쌓아 칸막이로 활용하거나 책을 꽂거나 장식장으로 사용해도 된다. 물론 그 자체로도 조각처럼 충분히 근사하다.

에토레 소트사스의 ‘칼톤’(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누리집)
에토레 소트사스의 ‘칼톤’(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누리집)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현대카드의 브이브이아이피(VVIP) 카드 ‘더 블랙’부터 단돈 1000원만 내면 마실 수 있는 생수병까지 디자인한 카림 라시드(Karim Rashid)가 국내 출판사 열린책들의 책장을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열린책들에서 기획한 20세기 현대문학 전집 ‘미스터 노(Mr.Know) 세계문학’을 위한 책장이 바로 그것. 카림 라시드는 지식의 나무를 상징하는 자신의 책장에 ‘미스터 노’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고, 출판사는 원래 이 시리즈에 ‘20세기 세계문학’ ‘20세기 신고전’이라는 이름을 달려고 했으나 그의 책장 디자인을 본 뒤 과감히 책장의 이름인 ‘미스터 노’를 전집 제목으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광택 나는 알록달록한 캔디 컬러가 단박에 눈길을 끄는 이 책장은 열린책들이 작은 사이즈로 제작한 책 100권 정도를 꽂을 수 있다. 서재에 두면 왠지 책도 잘 읽힐 것 같고, 폼도 날 것 같은 디자인이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재치 있는 책장 덕에 거기 꽂힌 책들에 손이 한 번 더 간다면, 책을 좀 많이 꽂지 못해도 충분히 용서할 수 있을 법하다.

전은경 월간 <디자인> 편집장
박미향 기자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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