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리키’의 오랑우탄이 새끼를 안은 채 여행객 사이로 내려와 손을 내밀고 있다.
[매거진 esc] ‘위기의 동물’ 시리즈
②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오랑우탄을 만나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주인공 ‘시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오랑우탄 ‘모리스’다. 원작 소설인 1963년 작 <혹성탈출>에서도 오랑우탄은 체제 수호의 상징인 성직자와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 속 오랑우탄은 오히려 인간에게 쫓기는 몸이다. 지구상에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두 곳뿐. 오랑우탄은 말레이어로 ‘숲 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냥 ‘우탄’(Hutan)이라고 부른다. 보르네오섬에서 오랑우탄은 오랫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지만, 수십년 동안 이어진 벌목 탓에 이제는 ‘멸종 위기종’이 됐다. 와 트래블러스맵은 아시아의 멸종 위기 동물을 찾아 떠나는 두 번째 공정여행으로 보르네오섬 오랑우탄을 만나고 왔다. 여행엔 트래블러스맵 여행기획자 서선미(27)씨, 그리고 젊은 여행자 4명이 함께했다.
굽이굽이 강 거슬러오르는 ‘야생 크루즈’
보르네오섬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브루나이 세 나라 영토로 나뉘어 있다. 섬 북쪽 말레이시아의 유명 휴양지 ‘코타키나발루’ 말고는 대부분 지역이 일반 여행자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섬 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보르네오섬을 ‘칼리만탄’이라 부른다. 여행의 시작점은 칼리만탄의 중남부 도시 팡칼란분. 여기서 오랑우탄 서식지인 탄중푸팅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쿠마이항에서 이곳 주민들의 수상 교통수단인 ‘클로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4일 오전 쿠마이항에 2층짜리 작은 배인 클로톡 ‘가루다호’가 도착했다. 1층엔 작은 선실과 엔진실이 붙어 있는 주방, 작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탁 트인 2층에는 여행객들이 머무는 객실이 있다. 객실은 낮에는 식당 겸 전망대로, 밤에는 잠을 청하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소박하다 못해 누추해 보이는 배였지만, 여행 내내 ‘야생 크루즈’의 매력을 발산했다.
배가 느릿느릿 여정을 시작했다. 가루다호를 품은 세코녜르강은 탄중푸팅 국립공원과 벌목이 한창 진행중인 정부 국유지의 경계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탄중푸팅 국립공원을 제외한 칼리만탄섬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다국적 회사들에 팜 오일과 목재 생산을 위해 임대하고 있다. 공장 터를 확보하기 위해 화전을 일구는 탓에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오랑우탄이 줄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사는 이들은 벌목 과정에서 밀렵꾼들 손에 희생돼 왔다. ‘복을 가져온다’는 미신 때문에 어린 오랑우탄은 여행자 등을 통해 ‘물건’처럼 팔리기도 한다.
“오오오오오호~!” 눈앞에 오랑우탄이… 사흘 동안의 여정에서 가루다호는 세 곳에 정박했다. 그곳에서 각각 30분~1시간 남짓의 오랑우탄 탐방 트레킹에 나섰다. 항해 첫날 도착한 곳은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가 있는 ‘탄중 하라판’. 산책로를 따라 들어서니 오후 먹이 시간을 맞춰 나온 오랑우탄 ‘야니’(26)가 길 한가운데에서 일행을 맞이했다. 국립공원 안 오랑우탄의 상당수는 하루 두번 ‘오랑우탄 재단’ 직원들이 주는 바나나와 우유를 먹으러 모여든다. 제인 구달(침팬지 연구), 다이앤 포시(고릴라 연구)와 함께 세계 3대 영장류 학자로 불리는 비루테 갈디카스 박사가, 지난 1971년 밀렵꾼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오랑우탄을 구조해 보호활동을 해 온 뒤로 오랑우탄은 인간의 도움 손길에 익숙해졌다. 당시 재단 사람들 손에서 자란 오랑우탄들은 야생으로 돌아가 새끼도 낳았지만,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 아직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이들을 야생에 살지만 덜 길든 ‘세미 와일드’라고 부른다.
이튿날 여정은 오랑우탄이 먹이를 먹으러 모이는 ‘폰독 탕구이’를 거쳐 갈디카스 박사의 연구시설이 남아 있는 ‘캠프 리키’로 이어졌다. 지금은 갈디카스 박사가 칼리만탄 깊숙이 연구공간을 옮겼지만, 캠프 리키는 국립공원 가운데서 오랑우탄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오오오오호~!” 먹이를 주러 온 직원들이 소리를 내자 여행객들을 둘러싼 나무가 부스럭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공원 안 오랑우탄 중 서열 1위인 ‘톰’이 여행객들 무리의 뒤편으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400㎏이 넘는 거구다. 나이는 서른 살. 거대한 오랑우탄을 눈앞에서 마주한 일행들은 혼비백산 놀라 흩어졌다. 그러나 새끼를 업은 어미 오랑우탄은 나무에서 내려와 여행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톰이 볼세라, 바나나를 한입 가득 물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오랑우탄도 있었다. 숲 속에서 펼쳐진 한편의 ‘야생 활극’에 여행객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함께 온 안효민(30·직장인)씨는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말 색다른 경험”이라고 말했다.
운치 있는 강물 위 밤 풍경은 덤
“썬! 빈탕! 빈탕!(인도네시아어로 별)”
배 위에서의 마지막 밤, 클로톡의 요리사 미라가 밤하늘을 가리키며 여행기획자 서선미씨를 불렀다. 첫날 밤 구름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별이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다시 쿠마이항으로 향하는 가루다호는 반딧불이의 파란 불빛들이 가득한 강 둔치에 멈춰섰다. 배 안에서 만든 인도네시아 현지식인 나시고렝(볶음국수)과 이칸고렝(생선튀김)으로 저녁을 마친 젊은 여행자들은 배의 뒤쪽 갑판에 모여 앉았다. 말없이 홍차를 마시며 낯선 남반부의 별자리 세계로 빠져들었다. 새소리와 벌레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긴꼬리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건, 야생 크루즈가 주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사흘 동안의 항해를 끝내고 뭍으로 돌아온 일행은 팡칼란분 시내의 ‘에스엠케이1(SMK1) 직업고등학교’에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현지 청소년들은 대부분 여행업 종사자를 꿈꾸고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공정여행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 학교에 파르마 나무를 심었다.
나흘 동안의 보르네오섬 여행은 많이 배우고 겪은 풍성한 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 일행과 달리, 영국·스페인 등 유럽 휴가객 대부분은 ‘공정여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지 않고 이곳을 찾고 있었다. 여행 내내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빼면, 뭔가 공익적인 측면을 기대하기에는 모자란 점도 있다. 벌목으로 밀려온 토사가 세코녜르강 절반을 흙탕물로 덮고 있어,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하는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국립공원의 한해 방문객이 1000명을 넘으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입장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의 여행에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남아 호화 리조트 수영장에서 맞는 휴가에서 얻을 수 없는 ‘나도 지구인이구나’라는 생각과 ‘환경에 대한 짧은 고민’,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고생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는 것!
칼리만틴(인도네시아)=글·사진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sc·트래블러스맵 공동기획
여행객 안효민씨가 ‘폰독 탕구이’의 숲 속에서 나무 줄기를 잡고 타잔 흉내를 내는 모습.
“오오오오오호~!” 눈앞에 오랑우탄이… 사흘 동안의 여정에서 가루다호는 세 곳에 정박했다. 그곳에서 각각 30분~1시간 남짓의 오랑우탄 탐방 트레킹에 나섰다. 항해 첫날 도착한 곳은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가 있는 ‘탄중 하라판’. 산책로를 따라 들어서니 오후 먹이 시간을 맞춰 나온 오랑우탄 ‘야니’(26)가 길 한가운데에서 일행을 맞이했다. 국립공원 안 오랑우탄의 상당수는 하루 두번 ‘오랑우탄 재단’ 직원들이 주는 바나나와 우유를 먹으러 모여든다. 제인 구달(침팬지 연구), 다이앤 포시(고릴라 연구)와 함께 세계 3대 영장류 학자로 불리는 비루테 갈디카스 박사가, 지난 1971년 밀렵꾼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오랑우탄을 구조해 보호활동을 해 온 뒤로 오랑우탄은 인간의 도움 손길에 익숙해졌다. 당시 재단 사람들 손에서 자란 오랑우탄들은 야생으로 돌아가 새끼도 낳았지만,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해 아직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이들을 야생에 살지만 덜 길든 ‘세미 와일드’라고 부른다.
탄중푸팅 국립공원에서 서열 1위 오랑우탄인 ‘톰’.
여행객을 태우고 세코녜르강을 지나가는 클로톡.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child/2024/0427/53_17141809656088_20240424503672.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