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척이다! 낚싯대를 들어올리는 순간 자리돔이 매달려 있었다. 자리돔은 유난히 반짝였다. 따스한 9월의 햇살이 낚시꾼의 환한 웃음을 따라 자리돔을 비추고 있었다. 이병학 기자가 추자도 북서쪽에 위치한 직구도에서 올린 쾌거였다. 추자항에서 20분 넘게 달려 도착한 무인도다. 낚시꾼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무인도 낚시다. 뾰족한 바위를 가파르게 딛고서 낚싯대를 조심스럽게 던지고 있노라면 파도처럼 희열이 몰려든다.
esc팀 낚시 천국으로 총출동
산 넘고 물 건너 추자도를 가다
산 넘고 물 건너 추자도를 가다
여름의 끝자락이 화끈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햇살은 섬을 통째로 구워삶을 기세로 타올랐다. 9월 중순, 제아무리 열렬하게 끓어오르던 여름도 물러서야 할 때이건만. 이글거리는 태양빛은 순식간에 살결을 그을리고 있었으나, 푸른 하늘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로 시선을 눈 깜짝할 새 빨아들였다. 사필귀정. 여름의 미련은 푸르른 가을과 함께 사라져가리라. 추자도의 가을은 짙푸르게 무한확장해가는 하늘빛 속에서 그렇게 오고 있었다.
만선의 염원을 안고 esc팀 기자들이 배에 올랐다. 추자항을 간단히 벗어났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옅은 해무에, 쏜살같이 달려드는 바닷바람에 세간의 염려들이 녹아나는 듯, 날아가는 듯. 바다 위 둥둥 떠 있는 바위섬들은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닷물결이 반짝반짝 빛났다. 촐싹이며 생명을 즐기는 멸치떼의 유영이다. 물살은 멸치들의 대이동 위에서 얄팍하게 튀어올랐고, 날쌘 갈매기들은 이런 장관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접근 비행에 나선다. 멸치떼에서 시선을 돌린다. 끝없는 바다를 속시원히 가로지르는데 저 앞에 짐승 한 마리가 눈앞을 막아선다. 커다란 거북이가 길쭉하게 몸을 뻗었다. 이름하여 직구도(直龜島). 돌거북이 옆구리 어느 한켠에 배를 대고 등짝에 오른다. 월척의 꿈이 이뤄질 현장이다.
낚싯대를 멋들어지게 뽑아들고 이얍! 힘차게 던진다. 미끼 냄새를 맡은 물고기들이 몰려든다. 투명한 물결 속으로 물고기떼의 집결을 목격하는 찰나, 톡톡톡 입질이 온다. 무지개무늬 선연한 용치놀래기판이다. 미끈한 용치놀래기들 사이로 잘고 굵은 돌돔·볼락·자리돔·쥐치들도 질 수 없다는 듯 미끼 쟁탈전에 나선다. 가을은 물고기도 식욕을 돋우는 계절인가.
낚시꾼들의 이상향, 추자도의 가을은 바다와 함께, 바람과 함께 오고 있었다. 심야의 포구를 휘황히 밝힌 조기잡이배의 집어등 물결에도, 집집마다 퍼져나가는 구수한 굴비 굽는 냄새에도, 새벽녘 일출을 기다리며 파도를 가르는 삼치잡이배들의 군무 속에도 가을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올레꾼들의 부지런한 발걸음에도, 그물에서 조기 떼어내는 섬 아낙네들의 바쁜 손길에도 여기저기 가을이 묻어났다. 고기 낚으러 왔다 가을을 낚은 셈. 가을 낚으려다 가을에 낚인 꼴.
추자도=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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