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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집어던지고 책 쓰기 나선 까닭은?

등록 2011-10-06 15:19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모임방에서 열린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입문반 수업 모습.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모임방에서 열린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입문반 수업 모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변화 꿈꾸는 사람들, ‘나만의 이야기’ 술술 풀어내려 모였다

“이 부분에서는 단독자로서의 여자의 모습을 좀더 강조했으면 해요.”

“제1장은 (A4지) 7~8매보다 좀더 짧아도 될 것 같은데요?”

지난달 21일. 북적거리는 서울 홍대 거리 한켠 모임공간에 6명의 여성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이하 글통삶)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있는 수강생들. 여섯 여성 중 한 명은 한명석(53·왼쪽 사진)씨다. 13년 동안 운영하던 보습학원을 그만두고 쉰살 넘어 <늦지 않았다>(2009년)라는 책을 펴낸 한씨가 이들의 첫 책 쓰기를 돕고 있다. 이미 1년 넘게 한씨의 수업을 듣고 있는 수강생들은 ‘여자, 마흔’을 주제로 함께 책을 써 올해 말 출간하려 한다. 주부·프로그래머·회사원 등 수강생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지난 몇 달 동안 토론을 하며 책의 내용을 채워나간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는 이번달 출판사에 제안하려는 예비 원고 작성과 목차 확정을 위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명석(53)씨
한명석(53)씨
많은 이들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막연함과 막막함을 무릅쓰고 책 쓰기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홀로 글쓰기 과정을 거쳐 책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에는 이 수업처럼 책 쓰기의 ‘방법론’을 설명해주는 강연을 찾아 나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수업에서는 글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출간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등을 배운다. 지난 3월까지 출판사를 다니면서 책과 비교적 가깝게 생활했다는 김난희(39)씨도 ‘글통삶’ 강의를 들으며 책 쓰기의 막막함을 걷어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쉬운 글쓰기만 했는데, 강의에서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글에 호응하고 격려하다 보니 글쓰기에 점점 욕심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막연하고 막막한 글쓰기 넘어서려 머리 맞대

가장 널리 알려진 책 쓰기 강좌로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과정이 있다. 1년 단위로 연구원을 선발해 무료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 해 동안 책 50권을 읽어 서평을 쓰고, 칼럼 50개를 쓰면서 ‘어떤 책을 쓸지’ 고민한다. 7년 동안 운영하면서 수십명의 다양한 저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다양한 책을 낸 명로진(45)씨가 운영하는 ‘심산스쿨’의 ‘인디라이터’반도 첫 책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강의다. 명씨는 “평균 20~30대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지만 대학교수, 목사, 고3 학생 등 다양한 이들이 모인다”며 “내 경험이면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스페셜리스트+제너럴리스트’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첫 책 쓰기에 뛰어드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강의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유명한 작가가 되기보다는, 책을 통해 지친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했다. 글통삶 강의실에서 만난 정경화(43)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였다. “인생 2막을 생각하면서, 지금을 집중적 휴식기로 정했어요. 약국을 접고, 다른 약국에 3일만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직장을 옮겨서 인문학 강연을 들었어요. 지금은 아예 일을 쉬고 있죠. 어떤 내용을 쓸지는 모르지만,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애 첫 책이 새로운 꿈을 향한 도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방송국 안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김재용(53)씨는 건강이 나빠져 일을 접으면서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을 다시 꺼내든 경우다. “그동안 일에 치여서 못 했던 것에 도전을 하니 삶이 풍요로워지더라고요. 돈 많이 벌고 쓸 때와는 전혀 다른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집필 과정에서 돌아보는 삶…생각 정리하고 상처 치유되고

이들은 책 쓰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유명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안정된 생활을 해온 유재경(39)씨도 지난해 14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책 쓰기를 하고 있다. “직장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실력 말고 다른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육아도 버거워지고요. 재충전이 절실해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저 스스로에게 1년 동안의 ‘안식년’을 선물했죠.” 현재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인정받고 싶은 자의 휴식’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려 한다. 이 주제는 그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저 스스로가 성공지향적이고 출세지향적이던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휴식을 잘 모르죠. 쉴 때도 뭔가 잘하려는 강박을 갖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휴식을 해야 하는지를 써보려고요. 실은 저도 아직 그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그는 본격적인 책 쓰기에 앞서 글쓰기 과정을 통해 불명확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글통삶 수강생들이 강의 도중 웃음 짓고 있다.
글통삶 수강생들이 강의 도중 웃음 짓고 있다.
익숙한 것을 놓아가면서까지 많은 이들이 책 쓰기에 몰입하는 것은 글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명석씨는 “사고, 정리, 불만 등 모든 언어가 글이기 때문에 자기다운 삶, 독자적인 삶의 기점이 글쓰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자의 힘도 영향을 미친다. 명로진씨는 “책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은 표현 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문자의 힘을 믿으며 인쇄가 된 자기의 글로 인생의 한 부분을 정리하고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첫 책을 내고자 하는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첫 책 쓰기의 진입 장벽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서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인 구본형(56)씨는 “앞으로는 개인이 중요 소셜 미디어 통로가 되면서, 지식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의 동일하게 되고 그 한계와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완성도 가장 높고 어려운 자기 의사 표현의 결정체인 책을 향한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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