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삼통삼겹살찜(롯데 자이언츠)
[esc] 포스트시즌 뛰는 삼성·롯데·SK·기아 선수들, 뭘 먹고 그렇게 잘 뛸까
지난 9월30일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 경기가 열린 부산 사직야구장은 뜨거웠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은 플레이오프 직행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날 선수식에도 따끈한 곰탕이 예외 없이 나왔다. 롯데 양승호 감독이 농담처럼 던진 말을 영양사 오율(28)씨가 찰떡처럼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감독님이 두산은 곰탕을 먹고 잡고 엘지(쥐)는 쥐포를 먹고 잡자 하셨어요.” 이날 롯데는 6 대 3으로 승리했다.
오씨는 2007년부터 홈구장 선수식을 책임졌다.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서 가족처럼 챙기는 이의 손길은 승리를 이끄는 작은 디딤돌이다. “공필성 코치님은 선수들보다 국을 두배는 더 드세요. 식으면 아예 안 드시기 때문에 오시기 전에 뜨겁게 해놔요.” 전준우 선수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 오이를 뺀 전준우 선수용 샌드위치가 항상 따로 준비된다. 메뉴 선택에는 선수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카레가 나갈 때는 뭐가 있어야지? 부추하고 겉절이야.” 카레를 매우 좋아하는 김사율 선수가 웃으면서 던진 말을 오씨는 그대로 반영한다.
영양사의 자상한 손길이 선수식의 디저트라면 주식에는 몇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야구는 레슬링, 육상, 수영 등과 함께 파워스포츠에 속한다. 파워스포츠는 짧은 시간에 많은 신체 활동량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시합 중에 강한 신체 활동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근육의 빠른 수축이 경기 성적을 좌우한다. 한마디로 몸의 에너지가 짧은 시간에 빠르게 소비되는 운동이라는 소리다. 단백질이 포함된 고에너지식이 필요하다. 지방은 피하고 소화에 무리가 없는 고단백질, 고탄수화물, 고열량 음식이 식단에 오른다. 씨제이프레시웨이 윤정리 영양사는 “성인 남성 하루 권장 섭취량은 2500㎉인데 축구선수는 4500㎉를 섭취하고 야구선수는 그보다 높은 약 5000㎉를 섭취한다”고 말했다. 길게는 3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기에서 강한 집중력이 필수적이고,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기본이다. 고열량식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다.
그래서 야구선수 식단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오리고기 등. 한 상차림에 2~3가지 고기 요리가 등장한다. 당질을 많이 함유한 면류도 단골메뉴다. 윤씨는 “자극이 적고 소화가 잘되고 포만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극적인 탄산음료 대신 매실, 토마토 등의 생과일주스나 미숫가루 등이 제공된다. 가짓수도 많다. 10~12가지다. 선수들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식사를 마치고 경기 중에는 간식을 먹는다. 간식도 열량 보충에 도움이 되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음식이다. 감자, 달걀, 도너츠, 바나나, 김밥 등이 제공된다. 바로 소비될 수 있는 당질류의 식품들이다. 홈구장 선수식은 특정 급식업체나 외식업체에 맡기고, 원정경기는 대부분 묵는 호텔의 뷔페식으로 해결한다.
열량 높은 고기 필수, 소화 잘되는 면류는 단골메뉴
2011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4개 구단의 식단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작은 차이가 있다.
정규리그 1위 삼성라이온즈→ ‘삼성라이온즈 볼 파크’(경산훈련장)의 영양사 안현정(38)씨가 먹을거리를 책임진다. 식단은 화려한 요리경연장처럼 다채롭다. 간사이양파어묵구이, 애느타리나물, 잉글리시머핀, 실파팽이달걀국, 홍게크레볼튀김, 오코노미야키, 페이스트리, 쇠고기곤약장조림, 전복이 들어간 삼계탕 등. 안씨는 수제 햄버거를 만들고 족발이나 녹즙도 직접 만든다. 외식이 드문 선수들을 위해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 내기도 한다. 경기 2시간 전에 먹는 선수식(중간식)은 올해 초부터 대구 일식집 미가도의 주인 김도연(44)씨가 맡았다. 이전에는 대구의 한 호텔 뷔페식이었다. “화려한 호텔식보다는 집에서 밥 한 끼 먹는 분위기를 내려고 했어요.” 미가도는 40년간 가족 경영을 해온 일식집이고 김씨는 20년 경력의 일식요리사다. 곰탕, 육개장, 스파게티, 일본식 덮밥요리, 장어구이 등이 상차림에 등장한다. 야구팬이기도 한 김씨는 “갈비를 한 짝 가져와 운동장에서 직접 불 피워 구워낸 적도” 있다.
2위 롯데 자이언츠→ 풀무원 이시엠디(ECMD)가 식단을 책임진다. 여기 소속인 영양사 오율씨는 이벤트를 자주 벌인다. 지난 9월에는 찌그러진 냄비를 구해 멸치, 김치, 달걀부침, 김 가루 등을 섞어 ‘추억의 도시락’을 만들고, 중식의 날에는 홍등을 걸고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채 음식을 제공했다. “다음날 원정경기를 위해 밤새 달릴 때는 갈비탕, 육개장 등 탕류를 제공해요.” 그의 식단에는 해물찜닭, 냄비라면, 브로콜리당근볶음, 섞박지, 카르보나라스파게티 등이 오른다. 오씨가 손대지 않는 음식도 있다. 메추리알과 미역, 도토리묵은 ‘알 까고’(볼이 빠져 실책한다) ‘미끄러지고’ ‘묵사발 된다’(진다)는 속설 때문에 선수들이 싫어한다. 그의 수첩에는 경기 결과와 그날 준비한 메뉴의 연관성이 꼼꼼히 적혀 있다. ‘이대호, 박기혁 선수: 오징어튀김 맛있다고 좋아함’이라고 적은 지난 5월24일 수첩에는 ‘삼성 대 롯데 전 승’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수도권 원정경기 때는 ‘가나안출장뷔페’가 음식을 맡는다.
알 까고 미끄러지는 메추리알·미역은 금기식품
3위 에스케이 와이번스→ 씨제이프레시웨이가 10여년 전부터 맡고 있다. 오미애(33) 영양사가 담당한다. “경기 전에는 나물같이 섬유소가 많은 음식이나 튀김류는 내지 않아요. 선수들이 중화요리를 좋아해서 자주 나가고 붉은 살 생선보다는 흰 살 생선 요리를 합니다.” 오씨는 다양한 요리법을 활용해 다채로운 식단을 만든다. 치킨가스와 닭볶음탕이 한 식탁에 등장하는 식이다. “이만수 감독님은 한자리에서 밥도 없이 조기를 5마리 이상 드시기도 해요.” 오미애 영양사 이전에 식단을 담당했던 함종숙씨는 “소탈하고 자상했던” 이만수 감독을 조기와 함께 기억한다. 열량 소비가 타자보다 많은 투수에게는 경기 2~3일 전부터 고단백, 고탄수화물 식사를 권한다. 10년간 에스케이 와이번스 선수식도 변화가 있었다. 자극적인 음식이나 튀김류 등의 음식이 줄고 영양이 높은 국들로 바뀌었다. 맑은국이나 토장국 대신 설렁탕, 곰탕, 쇠고기뭇국 등이 식단에 올랐다. 여전히 고열량, 고단백, 고탄수화물 음식이지만 피로 회복에 좋은 생채소나 과일의 비중이 높아졌다. 오씨는 “최근 대장암으로 숨진 최동원 선수 때문에 채소 등의 식단을 요구하는 코치님들도 있다”고 전했다.
4위 기아 타이거즈→ 광주에 있는 본진일식의 나명진(38) 사장이 선수식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2군 선수들 식단만 맡았는데 한번 맛본 1군 선수들의 호평으로 5년 전부터 모두 맡게 되었어요.” 5개 업체의 음식이 선수들의 혀를 사로잡고자 경합을 벌였다. 그는 나주가 고향인 전라도 토박이다. 선수들의 식단에는 그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전라도 김치와 고향 나주에서 농사지은 쌀밥이 등장한다. 본진일식에는 20여년 경력의 양식과 일식 셰프가 있다. 오리탕은 단골메뉴다. “이종범·서재응·김상훈 선수 등 광주가 고향인 선수들이 좋아해요.” 면 요리도 전라도식으로 나온다. 다른 지역에서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 콩국수에는 설탕이 들어간다. 그의 식단에는 코다리조림, 고등어조림, 해삼탕, 안동찜닭, 칠리소스를 얹은 도라지튀김, 조기탕수육 등이 오른다. 야간경기를 마치고 원정경기를 위해 떠나는 선수들에게 감자탕, 오리탕 등의 영양식들이 제공된다. 그는 단골손님의 부탁으로 선수들의 사인볼을 받아주기도 한다. 한 해 동안 나씨는 사인볼용 공을 사는 데 70만~80만원씩 쓴다고 한다. 그 역시 선수들과의 소통이 맛을 내는 가장 큰 양념이라고 여긴다. “푹 익은 김치, 시골풍의 소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종범 선수가 ‘뭐 좀 가져다주지’ 하면 바로죠. 오이를 안 먹는 이용규 선수를 위해 조심하는 편이고 죽은 절대 안 만들어요. 경기에서 죽 쑤면 안 되잖아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우동해산물무침. 면류는 단골 메뉴(기아 타이거즈)
문학경기장에서 경기 전 식사를 하는 에스케이 와이번스 사람들.
갈치조림(기아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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