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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살살 녹아든 토끼가죽

등록 2011-11-24 14:32

[매거진 esc] 사랑은 맛을 타고
겨울철 아궁이에서 구워 먹던 내 유년의 군것질거리 중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별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토끼 가죽 구이다. 까까머리를 한 마을 형들은 산골에 눈 덮이는 농한기가 찾아오면 한참 벼르던 산토끼를 집중적으로 잡으러 다녔다. 어쩌다 노루가 잡힐 때는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 피를 받아 먹으려고 바가지를 들고 죽 서 있었다.

다른 계절과 달리 한겨울에는 농사일을 거들지 않아도 되었기에, 거추장스럽기만 한 공부 외에는 할 게 없었던 마을 형들은 알 수 없는 냄새와 세월의 때로 누렇게 찌들어 있는 골방에 처박혀 이상한 짓이나 해대다 좀이 쑤실 때마다 잡으러 나섰다. 밭으로 내려온 산토끼의 행적을 쫓다가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는 우리 조무래기들과는 달랐다. 시답잖게 껄렁대면서도 산짐승들을 잘 잡아왔다. 잡아먹고 남은 가죽은 처마 밑에 걸어둬 겨울 한파에 꾸덕꾸덕 잘 말렸다가 내다팔아 짭짤한 용돈을 마련하곤 했다. 그래서 토끼 가죽을 먹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놀고 있던 나는 말려놓은 토끼 가죽을 굽고 있다는 말을 듣고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친구들과 함께 그 형네 정지(부엌)에 들어갔다. 그러곤 아궁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생경한 광경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시골 농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연장을 이용해 마을 형은 불에 구워진 토끼 가죽을 긁어대고 있었다. 누린내를 풍기며 새까맣게 타 눌어붙어 있는 털들의 잔해를 박박 긁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르르 몰려들어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듯 신기하게 바라보는 코흘리개 마을 조무래기들을 같잖은 듯 쳐다보던 그 형이 이내 팰 듯한 거친 표정을 내보였다.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는 우리들을 보더니, 먹기 좋게 한 점 잘라낸 뒤 내 입에만 쏙 넣어주고는 귀찮다는 듯 정지에서 매정하게 내쫓아 버렸다. 빨리 안 사라졌다가는 몇 대 얻어터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 우리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쳐야 했다.

쫓겨나와 마을 허리춤에 위치한 공터에 모였다. 입이 궁한 조무래기들 속에서 나는 혼자만 얻어먹었다는 자부심에 환한 미소를 한 채 우쭐대고 있었다. 조막만한 손으로 많이도 잡아 구워 먹었던 쫄깃한 개구리 뒷다리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 어떤 것보다 맛있게 느껴졌던 토끼 가죽 구이 맛이 어떤 맛인지 나이 든 지금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그 맛과 어우러진 그리운 풍경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동화/경기도 광명시 철산2동

● 주제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


● 분량 200자 원고지 8장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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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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