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3면에 등장한 두 취업준비생의 전통시장 체험기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태양은 없다>였을까요? 정확히 어떤 영화와 포개지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스산하면서도 활기 넘치고, 애잔하면서도 유쾌한 청춘영화의 두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잘빠진, 하지만 조금은 아직 몸에 착 붙지 않는 정장을 입고 직장 초년생으로 사무실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두꺼운 영어책을 펴고 도서관에 파묻혀 있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여자친구와 달달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것이 어울려 보일 듯한 이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허름한 시장통에서 닭똥집 튀김에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고, 시장 어귀 할머니에게서 귤이 든 검은 봉지를 받아 쥐는 모습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말입니다.
이렇듯 일견 어색한 관계이지만 전통시장과 취업준비생은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데 손님이 별로 없다”는 시장상인들의 하소연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고 스펙 쌓아 봤자 오라는 기업은 별로 없잖아”라는 청년들의 한탄은 묘한 대구를 이룹니다. 그래도 이 짧은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입니다. 도서관에 파묻혀 살던 청년들은 시장의 기운에서 활력을 얻었고, 청년들에게 귤봉지를 쥐여준 할머니는 중장년층 이상만 즐비하던 거리에서 작은 희망을 봤을 테니까요.
9개월간의 휴직과 1년 동안의 경제부 생활을 마치고 김진철 전 팀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규칙적인 삶의 리듬에 툭툭 엇박자를 충동질하면서 활력소를 제공하는 게 의 본분인데 점점 유쾌한 농담을 하기 어려워지는 시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로를 근심하는 청년들이 미래를 불안해하는 전통시장에서 생기를 되찾았듯이, 아무리 하수상한 시절이라도 와 독자들이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은 널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잘해보자구요!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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